2023-07-03

메가CD vs PC엔진DUO - CD 게임기 전쟁의 시작

1991년 6월, 도쿄 국제 완구 박람회에서 두 CD-ROM 게임기가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세가의 메가CD와 NEC의 PC엔진DUO였죠.

메가CD는 6메가비트 램에 회전, 확대, 축소 기능을 탑재하여, 2메가비트 램에 8비트 CPU였던 PC엔진DUO를 성능에서 압도했습니다.
그러나 메가CD의 문제는 출시가가 49,800엔이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메가드라이브 본체 가격을 합하면, 70,000엔이 넘었습니다.

그 타이밍에 나온 PC엔진DUO는 PC엔진 본체+슈퍼CD-ROM²+시스템카드가 일체형으로 나왔는데도 가격이 59,800엔이었습니다. 메가드라이브+메가CD 가격보다 10,000엔 이상 싼 거죠(비싼데 싼 느낌).
슈퍼CD-ROM²를 따로 구입해야 했던 PC엔진팬들에겐 각각 사는 것보다 35,000엔은 싸다는 평가여서 PC엔진DUO는 일본에서 가격경쟁 우위를 점했습니다.

PC엔진DUO는 <이스Ⅰ・Ⅱ>, <드래곤 슬레이어 영웅전설>, <천사의 시> 같은 명작 RPG 타이틀들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고, 그때까지 닌텐도 게임기에만 참여했던 코나미가 <그라디우스 2>와 <사라만다>를 내면서 PC엔진 진영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죠.

반면, 메가CD는 메가드라이브 발매 때와는 달리 많은 서드파티가 참여 의사를 보였지만, 발매한 달에 나온 타이틀이 달랑 6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알려지기론 메가CD 발매 전에 개발 키트를 제작사들에게 주는 게 너무 늦었다고 합니다. 게임기만 빨리 내놓기 바빴지 게임 개발에는 속도를 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게임아츠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천하포무>가 CD 게임다운 대용량으로 코에이의 <노부나가의 야망>을 뛰어넘는 게임이 아니냐고 잠시 화제를 모았지만, 발매 초기엔 주로 액션 게임이 중심이었고, RPG는 지명도가 낮은 <행성 우드스탁>뿐이었습니다. 

메가CD의 동시 발매 게임들은 시간에 쫓겨 만들었는지 메가CD의 스펙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게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PC엔진 슈퍼CD-ROM² 게임보다 특별히 나은 점을 찾지 못했죠.
그래서 발매 직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메가CD는 1992년에 북미, 유럽과 남미에는 1993년, 한국에선 1992년에 발매했습니다. 당시 한국 표준가는 398,000원이었죠.
이 1992년은 메가드라이브에게 고난의 해였고, 그걸 상징하는 존재가 메가CD였습니다.

PC엔진DUO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반면, 메가CD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게임 타이틀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1992년 한 해, 일본에서 발매한 메가CD 게임은 고작 22개였습니다. 라이벌인 PC엔진 쪽은 CD-ROM²용 게임을 92개나 발매했죠.  이 92개라는 수는 CD-ROM²가 발매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발매된 CD-ROM²용 게임의 총수와 같았습니다. PC엔진 진영은 휴카드에서 슈퍼CD-ROM²로 이행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게다가 <천외마경2>, <스내처>, <은하 아가씨 전설 유나>, <드래곤 슬레이어 영웅전설2> 같은 화제작이 슈퍼CD-ROM²로 발매되자 게임 수가 부족한 메가CD는 가격 면에서도 타이틀 면에서도 PC엔진 듀오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세가는 일체형 모델인 원더메가를 1992년에 내놓지만, 80,000엔에 달하는 고가격이었습니다. 이는 메가드라이브와 기존의 메가CD를 합친 가격보다도 비쌌습니다. 따로 사는 것보다 일체형을 사는 게 득이라는 PC엔진DUO의 사례를 전혀 학습하지 못한 거죠.

그나마 <루나 더 실버스타>라는 걸작 RPG가 메가CD로 발매되었지만, 그 당시 메가CD의 보급대수는 일본에서 20만대에 그치고 있어서 게임의 판매 역시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92년, 북미에서 세가CD로 이름을 바꿔 출시했지만, 일본처럼 고가격과 타이틀 부족에 고전하며 존재감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1993년, 세가는 메가드라이브2를 12,800엔, 메가CD2를 29,800엔이라는 가격(합계 42,600엔)에 발매했지만, PC엔진이 DUO의 저가 모델 DUO-R을 39,800엔에 발매하는 바람에 역시 가격 경쟁에서 또 지고 말았습니다.

원더메가를 염가판으로 내놓는 게 좀더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발매 후 할만한 게임이 부족했던 메가CD는 1993년에 <파이널 파이트CD>, <유미미믹스>, <실피드>, <3X3아이즈>, <소닉CD> 등 화제작을 발매하며, 반전을 꾀했습니다.

PC엔진도 1993년엔 <악마성 드라큘라X>, <이스 4>,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천사의 시 2>, <포셋 아무르>, <천외마경 풍운 가부키전> 등 지명도와 다양성에서 뒤지지 않는 타이틀을 메가CD보다 많이 발매했습니다.

1994년 메가CD의 명작은 <루나 2 이터널 블루> 정도였으나 PC엔진엔 <바람의 전설 제나두>, 일본 게임사에 남을 타이틀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나오면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슈퍼패미컴이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에서 세가는 2인자 자리라도 노렸지만, 결과적으로 성능 우위였던 메가CD가 PC엔진CD-ROM²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한국 시장에서도 메가CD 게임보다는 PC엔진CD-ROM² 게임 선호도가 더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용산 매장에서도 PC엔진CD-ROM² 게임이 많이 보였죠.

메가CD는 전성기를 누리지 못한 채 1996년 1분기에 생산이 종료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세가가 더 미리미리 준비해서 <루나 더 실버스타>, <소닉CD> 같은 킬러 타이틀을 동시 발매했으면 주목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린 시절, 메가CD를 게임 잡지에서 처음 보고 그 위용에 감탄하며 "드디어 슈퍼패미컴에 밀리던 메가드라이브가 주도할 때가 왔다" 하고 두근두근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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