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6

90년대 초 가장 충격적인 게임기 네오지오

1990년 5월호 마이컴에서 네오지오라는 게임기를 광고 지면으로 처음 봤습니다. 당시 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가 게임기 시장을 주도하던 시절이었고, 슈퍼패미컴이 그해 겨울 발매를 앞둔 시점이었죠.

슈퍼패미컴이 얼마나 대단한 스펙을 보여줄까 기대되던 시점에 이 네오지오가 나와버린 겁니다.

패미컴용 ASO vs 네오지오용 ASO 2

그 시절 가정용 게임기는 오락실 게임보다 그래픽, 음악, 처리 속도 면에서 한 차원 떨어졌습니다. 오락실 게임이 더 뛰어났지만, 집에서 동전 안 넣고 편안하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강점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네오지오는 오락실 아케이드 기판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서 오락실 수준의 게임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네오지오의 스펙은 16비트를 자랑하던 메가드라이브는 물론이고 곧 나올 슈퍼패미컴마저 가볍게 바르는 무시무시한 수준이었습니다.

16Mbit만 되어도 대용량 롬팩이라 느껴졌던 시절에 네오지오는 "100메가 쇼크!"라면서 게임롬팩을 홍보했으니 가정용 게임기로선 시대를 앞서간 게임기였습니다.

용산 전자상가를 다니다가 본 네오지오의 위용은 엄청났습니다. 롬팩 크기도 거대했고, 패드가 아닌 조이스틱이 기본인 점도 오락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었어요.

꿈의 게임기였지만, 본체 가격만 60만원이 넘고, 롬팩 하나에 최소 30만원이 넘는다는 소문을 듣고 정말 현실에선 손에 넣을 수 없는 꿈의 게임기라고 느꼈습니다. 게임기 1대조차 집에 들이는 게 힘들었던 그 1990년에 네오지오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형편이 넉넉한 집이었을 겁니다. 주변에도 네오지오를 갖고 있다는 친구는 학창 시절 내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 비싸서 팔리지도 않을 게임기를 SNK가 뭐하러 내놨을까 당시 생각했는데, 판매용보다는 대여용으로 마케팅할 목적이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일본은 몰라도 한국에서 네오지오 롬팩을 대여해주는 곳은 못 봤습니다.

일단 네오지오를 가진 사람이 극소수이니 대여 사업을 한다면 네오지오까지 대여해줘야 할 텐데, 업자들이 그런 비싼 리스크를 감수할 리가 없었죠. 반면, 패미컴 호환기종은 한국에 널리 보급되어 문방구에서까지 패미컴 롬팩을 돈 받고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초창기 내놓은 NAM1975, 매지션 로드 등이 오락실 수준의 품질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막 끌리는 게임들은 아니었어요. 킬러 타이틀이 없었죠. 게다가 단순히 쏘고 부수는 액션과 슈팅 게임에서 벗어나 RPG, SLG에 관심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액션 게임 일색인 네오지오는 가격을 빼고 봐도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죠. 아마 당시 저에게 네오지오 살 돈이 있었더라도 그 돈으로 슈퍼패미컴과 함께 롬팩을 잔뜩 사는 선택을 했으리라 봅니다.

일본에서도 대여 사업이 잘 안 되었고, 게임이 다양하지 못했던 네오지오는 고전하며 판매량을 늘리지 못했습니다. 스펙 우위만으론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또 한 번 보여준 사례지요.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PC엔진, 패미컴의 발밑에도 다다르지 못한 네오지오는 계속 고전하다가 1994년 네오지오CD 발매로 반전을 노렸습니다. 네오지오CD의 가격은 49800엔으로 여전히 비싸긴 했지만, 게임CD가 7000엔대 정도로 살 수 있는 범위였죠.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던 네오지오가 드디어 서민의 게임기로 거듭나려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인기가 높았던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 하오마루 지옥변>,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5>를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였습니다.

그해 겨울 일본에 있었는데, 아키하바라에 가면 네오지오CD로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 하오마루 지옥변>을 틀어둔 매장이 많았습니다. 일본 초등학생들이 많이 하더군요.

하지만, 격투 게임에 큰 관심이 없던 저는 네오지오CD를 살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슈퍼패미컴, 게임보이, 메가드라이브, PC엔진 게임 등이나 보러 다녔죠.

나중에 네오지오CD를 구입한 사람들 말로는 CD 로딩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악평이 많더군요. 안 사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관심에서 멀어진 네오지오였지만, 제 눈길을 다시 사로잡은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진설 사무라이 스피리츠 무사도열전>의 개발 소식이었죠. SNK의 대히트작 사무라이 스피리츠가 RPG가 되어서 나온다니!!! 1995년에 본 개발 중의 스샷도 슈퍼패미컴 RPG의 수준을 가볍게 앞서는 그래픽이었습니다.

저거 때문에 네오지오CD를 사야 하나 하고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곧 나올 것 같던 게임이 2년이 지나 1997년에나 나왔습니다. 그것도 네오지오CD뿐 아니라 플스1과 새턴으로도 나왔죠.

기대와 달리 로딩 오래 걸리고 RPG로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악평에 잊고 있다가 나중에 플스판으로 해봤는데, 큼지막한 캐릭터와 16비트 RPG들을 뛰어넘는 그래픽, 좋아하는 주인공을 골라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초반은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나 적 조우율이 너무 높고 전투 시작할 때마다 걸리는 로딩은 짜증을 유발했습니다. 그나마 새턴판보단 플스판 로딩이 덜 걸린다고 하더군요.

시스템이 별로면 스토리라도 좋았어야 했는데, 굴곡이 없고 캐릭터 간 갈등이나 이야기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이 좋은 컨텐츠로 요 정도 게임밖에 못 만든 SNK가 원망스럽더군요. 스퀘어에닉스 같은 곳이 만들었어야 했는데.... ㅋ

SNK의 격투 게임이 대히트했지만, 그것만으로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하기에는 다양성이 부족했죠.

결국 네오지오는 충격적인 데뷔만이 기억되고, 가정용으로서는 실패한 게임기로 종말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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