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2

택틱스 오우거 PSP판 감상

슈퍼로봇대전A와 마장기신2를 번갈아 가면서 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소년 만화 같은 스토리가 와닿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생각 난 게 비장하고 묵직한 스토리의 택틱스 오우거였다.


택틱스 오우거는 오래 전에 슈퍼패미컴판으로 클리어한 적이 있다. 스토리가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 나는 건 배드엔딩을 봤는데, 굿엔딩을 위해 다시 하기에는 전투가 너무 길고 지겨워서 포기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굿엔딩을 보려고 다시 했다. 리메이크된 PSP판으로 했으나 첫 전투에서 진행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에뮬의 문제로 치부하고 다른 이식판을 찾았다. 음성이 들어간 새턴판과 일본 덕후가 만든 슈퍼패미컴판 개조롬 중에 고민했다. 새턴판으로 실행하려고 했더니 SSF 에뮬이 CD 이미지 파일을 지원 안 해서 가상드라이브 툴이 필요했고, 에뮬 성능도 뭔가 불안정해 보였다. 깔끔히 포기하고 슈퍼패미컴판을 할까 고민했다. 슈퍼패미컴판은 비공식 한글판이 있었는데, 개조 패치를 하니까 한글이 나오지 않았다. 개조롬으로 하려면 일본어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개조롬은 등장인물의 얼굴을 PSP판의 얼굴로 바꾸고 클래스 종류와 명중률 판정 등을 수정한 것 같다.

슈퍼패미컴용 한글판
PSP판에나 있던 신 캐릭터가 추가된 개조롬

개조롬이라고는 하지만, 옛날에 깬 슈퍼패미컴판을 또 하기엔 의욕이 나지 않아서 PSP판을 제대로 실행할 방법을 마지막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없는데 나만 안 된다면 에뮬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세이브 파일 폴더를 보니 게임 세이브 데이터 이외의 파일이 있어서 그 폴더를 지워봤다. 그러니 제대로 실행되었다! 실행하고 게임 내에서 데이터 인스톨을 누른 적이 있는데, 그 데이터가 말썽을 일으켰던 것이다. 실기가 아닌 에뮬에선 데이터 인스톨이 필요 없다.
그래서 PSP판으로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슈퍼패미컴판보다야 그래픽과 사운드가 낫다. 무엇보다 화면 비율이 4대3이 아니라 와이드라서 시원시원했고 글자 보기도 편했다.


택틱스 오우거는 룰이 복잡한 편이다. 슈퍼로봇대전이나 파이어엠블렘에 견주어 생소한 요소가 많다. 전투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난 스토리 감상이 목적이라 전투는 치트로 쉽게 넘겨버렸다. 옛날 슈퍼패미컴판에서도 전투를 꾸역꾸역 했기에 PSP판에서 또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처음부터 모든 수치를 최고로 하니 캐릭터를 키우는 재미와 전략성은 느낄 수 없었다. 클래스체인지가 있는데, 주인공은 클래스를 바꿔도 모습이 그대로라서 아쉬었다. 다른 캐릭터도 직업별 성별별로만 모습이 달라지고 공격 모습도 큰 차이가 없었다.


스토리는 기대대로 비장감이 있었다. 전쟁을 밝게 보여주지 않아서 좋았다. 몇몇 정치인의 야욕 탓에 힘 없는 시민들이 죽어간다. 주인공 쪽이 꼭 정의는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학살자도 될 수 있고, 아웃사이더도 될 수 있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스토리이다. 콘솔 게임 스토리치고는 꽤 하드보일드하다.


주인공의 누나 카츄아는 히로인 같은 역할인데, 성격이 까칠하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개성이 확실해서 존재감이 있었다. 카츄아는 주인공을 동생으로 보기보다는 연인으로 보는 것 같다. 그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가정용 게임이 아니었다면 주인공과 누나 사이에 무언가 더 넣었을 것 같다. 카츄아는 게임 속에서 돌변하는데, 그게 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카츄아의 심리를 더 보여줬다면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후반부엔 출생의 비밀, 마계 등 흔한 요소가 등장해서 조금 아쉽긴 했다.


슈퍼패미컴판을 했을 땐 주인공이 죽는 찝찝한 엔딩이었는데, 이번엔 C루트로 가서 해피 엔딩을 봤다. 깔끔한 엔딩이다. 전투를 치트로 넘겨서 하루 만에 끝을 볼 수가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즐기려면 세 번은 해야겠지만, 이걸로 만족한다.

택틱스 오우거는 8장으로 구성된 '오우거 배틀 사가' 시리즈 중 7장에 해당된다. 전설의 오우거 배틀(SFC)이 5장, 택틱스 오우거64(N64)가 6장이다. 1장부터 시작하지 않고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 건 스타워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택틱스 오우거에는 떡밥들이 꽤 있다. 살짝 언급되는 과거 이야기라든가 엔딩에서 후속작을 암시한다든가 이게 다가 아니란 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 게임을 만든 마츠노 야스미가 저작권을 가진 스퀘어에닉스를 떠났기 때문에 후속작은 기약이 없다.


다소 복잡하고 생소한 부분이 많아서 초보자들 접근이 쉬운 게임은 아니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 실험적이고 과감한 부분이 보여서 왜 명작으로 칭송받는지 충분히 느꼈다.

엔딩 본 날 - 2017.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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