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학습 1989년 8월호를 보던 중에 만트라 광고를 처음 봤습니다. 광고 일러스트가 뭔가 고급스럽고 MSX2+도 취급한다는 것 때문에 기억에 남았죠.
하지만, 당시 MSX1 아이큐1000만 가지고 있던 저에겐 저기서 광고하는 것들이 그림의 떡일 뿐이었습니다. 혼자 저거 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 구매 놀이만 했습니다.
택배 시스템이 없었던 그 시절에 통신판매를 한다는 광고도 서울 외곽에 살던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뭐 살 순 없었지만요.
일단 광고상으론 다른 데보다 최신 기종을 더 많이 들여와서 취급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1989년 당시 게임 매장 광고엔 본체나 게임 가격이 표기 안 된 경우가 많았는데, 메가드라이브 본체와 롬팩 가격이 나와 있는 걸 보고, 얼마나 용돈을 모으면 저걸 살 수 있는지 계산하기도 했죠. 하나도 안 쓰고 1년 모아도 사기 힘들겠단 결론에 좌절했지만요. 그냥 구경만 할 뿐이었습니다.
메가드라이브 사면 팬클럽도 가입시켜준다니 뭔가 다른 곳과는 달라 보였어요.
1990년 5월호 만트라 광고에 개점 1주년 기념이라고 쓰여 있는 걸로 보아 만트라의 개점 시기는 1989년 5월로 추정됩니다.
이 광고도 뇌리에 박혔던 게 너무 갖고 싶었던 게임보이가 나와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린 주제에 전화해서 가격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10만원이 넘는다는 말에 실망했죠. 흑백이고 휴대용이라서 거치형보다 훨씬 싸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해서 더 그랬어요.
지면에 <만트라 프레스>라는 게 보였어요. 만트라에서 직접 발행한 소식지였죠. 소액환 1000원 동봉해서 편지로 보내면, 만트라 프레스를 보내준다는 글을 보고, 부모님 도움으로 우체국 가서 소액환 1000원을 보내는 경험을 난생처음 해봤습니다.
열흘쯤 기다리니 기다리고 기다렸던 만트라 프레스가 도착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 잡지 기사를 대충 번역해서 조악한 품질로 인쇄한 얇은 소식지였는데, 거기서 소개하는 기종이나 게임들은 다른 잡지들보다 자세히 나왔길래 집중해서 봤습니다.
엄청난 위용의 FM타운즈, X68000 같은 일본산 컴퓨터를 보고 제 IQ1000이 너무 초라해보였어요.
여기서 드래곤 퀘스트 4 소개글을 봤는데 일러스트도 멋지고 일본 최고의 게임이라고 하길래 너무 해보고 싶었습니다. 살 수도 없는 것들을 보기만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어디 스캔본이라도 있으면 다시 읽고 싶네요.
여하튼 만트라는 비교적 세련된 광고와 함께 그 시절 흔하지 않은 자체 소식지 발행으로 어린 제 눈에도 다른 매장보다 고급스러워 보였어요.
그렇게 광고로만 보던 만트라를 1990년 어느날 저는 드디어 가보게 됩니다. 그때는 MSX1을 졸업하고 패미컴으로 갈아탄, 위풍당당 콘솔 게이머였죠. 이제 용돈도 올라가서 패미컴 복제 롬팩 하나 정도는 살 수 있는 재력이 있었습니다. ㅎㅎㅎ
혼자 전철도 탈 줄 알았구요.
저는 집에서 약 1km 떨어진 역까지 걸어간 뒤, 전철로 1시간 넘게 걸려 용산전자상가에 도착했어요.
용산 터미널의 여러 매장을 구경하면서 전자상가 안의 만트라로 직진했죠. 그곳은 다른 매장보다 깔끔한 느낌이었고, 정품 롬팩이 많았어요. 복제팩은 제가 갔을 때 하나도 안 보였답니다.
PC엔진CD-ROM, MSX2 터보R도 보였죠. 광고에서 느낀 것처럼 다른 데보다 하이엔드 기종이 많아 고급스럽다는 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 수 있는 가격들이 아니었어요. 주로 일본 정품을 취급해서 그런지 대부분 비쌌죠. 구경만 1시간 하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만트라가 광고하는 롬팩 교환 제도는 잘 와닿지 않았어요. 교환하는 팩은 이미 새것이 아닌데 중고팩 개념 운운이 이해 가지 않았거든요. 만트라에 진열된 패미컴 정품 팩들은 새것이니 내 걸로 맘대로 교환할 수 없겠구나 했죠. 또, 거긴 정품 팩만 보여서 복제팩을 교환한다고 가져갔다가는 창피당할 것 같았습니다. ㅋ
그땐 정품만 파는 곳인 줄 알았지만, 일본 애니, 게임 OST CD를 테이프로 복사해서 팔기도 하더군요.
이후, 용산 갈 때마다 만트라엔 꼭꼭 들렸어요.
대학생 나이로 보이는 알바 점원이 두 명 정도 있었는데, 늘 대형 화면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명이 패미컴 드퀘 하고 있었는데, 한 명이 "야, 글루 가면 안 돼. 절루 가" 하면서 알려주더군요.
드퀘는 너무 하고 싶었지만, 일본어를 몰라서 선뜻 사지 못했던 게임이었어요. 그걸 자유자재로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죠.
용산전자상가의 게임 매장 주인들은 게임만 팔 줄 알지 게임 자체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만트라는 다르구나 했습니다.
메가드라이브 유저가 된 뒤, 게임잡지에서 <랑그릿사>를 보고 용산을 뒤졌으나 없어서 만트라에 가서 물었어요.
"랑그릿사 있나요?"
직원 1 (게임하면서 무심히) "없어요."
직원 2 "그거 나 집에 있는데, 프리미엄(웃돈) 붙었대. ㅋㅋ"
직원 1 "정말? 나한테 넘겨."
직원 2 "싫어. ㅋㅋ"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그 가게에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만트라에서 원더메가를 난생처음 실물로 봤습니다. 루나 실버스타를 틀어놓고 20대로 보이는 손님에게 보여주던데, 루나가 말하는 모습을 보고 "이건 만화영화네" 하더군요.
만트라의 물건들은 늘 제 예상보다 비싸서 구경만 하고 돌아오기 일쑤였어요. 제가 유일하게 만트라에서 산 건 패미컴판 <메탈기어> 롬팩 하나였죠.
용돈이 풍족하지 않은 관계로 패미컴 게임은 주로 복제팩을 샀는데, 메탈기어는 당시 복제팩이 없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정품팩을 사려고 했던 거죠. 가격을 물어보고 와서는 용돈과 세뱃돈을 열심히 모은 뒤 만트라에 갔죠.
메탈기어 롬팩을 누가 안 사가고 거기 있어서 제가 살 수 있었습니다. 3만원대에 샀던 것으로 기억해요.
집에서 좀더 가까운 곳에 게임 매장이 생겨서 만트라엔 점점 안 가게 되었어요. 만트라를 잊을 무렵에 잡지에서 만트라를 또 보게 됩니다.
가이낙스의 대히트작 <프린세스 메이커>를 무려 한글화해서 만트라가 유통한다는 것이었어요. '와, 게임매장이 이런 일도 하나' 하고 놀랐죠.
디스켓 6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4만원대의 비싼 가격이었지만, 저는 큰맘 먹고 안양의 어느 서점에서 프린세스 메이커 정품을 구입했습니다.
일본 게임을 완벽 한글로 즐긴다는 게 당시에는 드문 일이었거든요.
팔콤의 이스2를 PC로 이식한다는 소식 보고 또 놀랐습니다. 그 유명한 팔콤과 협상할 정도로 능력이 있었구나 하구요.
그러나 연기를 거듭하다 나온 만트라의 <이스 2 스페셜>은 엉성하고 버그투성이라 혹평을 받았습니다. 저도 나중에 해봤지만, 오래 하고 싶지가 않더군요. 한글이라는 이점 말고는 원작보다 떨어졌습니다.
이후 만트라는 <이스 이터널>, <프린세스 메이커 3>를 한글판으로 냈지만, 경영을 잘못한 탓인지 부도 소식을 내고 자취를 감춥니다. 만트라에 관한 제 추억도 그걸로 끝...
덧. 세가오니님이 재현한 만트라 매장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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