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2

게임으로 돌아보는 1983~1991년 한국 PC 게임계 (마이컴 1992년 2월호 기사)

마이컴 1992년 2월호 기사
<게임 소프트웨어로 돌아보는 PC 10년>
원글에 새 게임 화면을 넣고, 편집한 글입니다.

1983
컴퓨터학습(마이컴 전신)의 창간과 국내 PC 역사의 출발점이 된 1983년. 당시 국내에 등장한 PC는 8비트 애플이었지만, 아직 즐길만한 게임이 소개되질 않아 게임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학생은 전자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게임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제비우스로, 모든 전자오락실에 설치된 제비우스 오락기는 연일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1984
애플 독무대였던 8비트 PC 시장에 MSX가 뛰어든 1984년은 우리 나라에 본격적으로 PC 게임이 소개되기 시작한 해로 이 해 11월호부터 컴퓨터학습에서 고정적으로 게임 분석 컬럼을 마련했다(84년 1~3월호에 게재되었던 전자오락실 게임 제비우스 제외).

특히 1984년 11월호에 게재되었던 애플용 로드런너(Load Runner)는 상당한 사고력을 요구했던 게임으로 당시 PC 소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즐겼을 정도.

1985~1986
1984년 말과 1985년 상반기에 국내에 소개된 PC 게임은 대부분이 8비트 PC 애플용이었으며, MSX는 이보다 늦은 198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로드런너가 애플용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면 1986년 하반기에 등장한 MSX용 자낙과 마성전설 역시 그에 필적할 만한 히트를 기록했다.

이 해는 MSX2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해였으며, 애플로는 영화로도 등장한 구니스가 인기를 끌었다. 

1987

해가 바뀌어 1987년. 애플에서는 울티마 IV와 마이트 앤드 매직 등의 롤플레잉 게임이 강세를 보였으며, MSX의 경우 귀여운 펭귄을 주인공으로 한 몽대륙과 그라디우스, 메탈기어 등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라디우스는 슈팅 게임의 최고봉으로 평가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울티마 V와 바즈테일 III, 그리고 교육용 어드벤처의 대명사격인 카멘샌디에고 시리즈 미국, 유럽, 월드편이 애플용 게임을 이끌었으며, MSX용으로는 저 유명한 이스, 하이드라이드 III, 오우거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또, 1983년을 전후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비우스가 MSX용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해의 가장 커다란 특징으로는 국산 PC용 게임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애플용 신검의 전설, 혹성 대탈출, 우주전사 둘리, 미쓰 애플과 MSX용 꾀돌이, 대마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게임은 모두 판매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가장 커다란 이유는 게임의 질이 미국이나 일본 게임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989
1989년 7월 4일, 국가 전산망 조정위원회에서 각급 학교 교육용 PC의 16비트를 결정하자 그동안 8비트 게임이 활개 치던 PC 게임 시장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즉, 그때까지 8비트 PC용 게임만 취급하던 게임 소프트웨어 취급점에서 조심스럽게 16비트 PC용 게임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애플과 MSX의 위세는 여전했다.

당시 애플용으로는 마이트 앤드 매직 II와 윙스 오브 퓨리, 매니악 맨션 등이, MSX용으로는 슈퍼 대전략을 비롯한 XZR II, R-TYPE, 그라디우스 시리즈 제4탄 고파의 야망 등이 사랑을 받았다.

이 가운데 R-TYPE과 슈퍼 대전략은 메가드라이브(수퍼 겜보이), PC 엔진용으로 이식되기도 했다. IBM PC 호환용으로는 삼국지, 플래툰 등이 소개되었는데, 특히 삼국지는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또 SKC에서 중화대선 등 MSX용 게임을 정식으로 수입 판매하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듯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1989년의 국산 게임 개발 현황을 보면 MSX용 외에 IBM PC 호환용도 개발되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MSX용 그날이 오면 I 이외에 IBM PC 호환용으로 왕의 계곡과 풍류협객이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 게임 역시 전 해의 국산 게임과 마찬가지로 흥행에는 크게 실패했다.

1990
1990년에 접어들자 교육용 PC의 16비트 결정에 따른 영향력이 현격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년까지만 해도 '명성'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던 애플용 게임의 위세가 갑자기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같은 처지에 있던 MSX는 비록 그 위세는 전과 같지 않았지만, 꾸준히 사용자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이것은 애플용 게임이 본고장인 미국에서 서서히 꼬리를 감춘 반면, 게임기로서의 인식이 뿌리 깊게 박힌 MSX는 이웃 일본에서 꾸준히 게임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애플이 지는 해라면 IBM PC 호환용 게임은 떠오르는 해 바로 그것이었다. 즉, 애플용 게임이 꼬리를 감추고 있는 데 반해 IBM PC 호환용 게임은 날이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해가기만 했다. 

당시 IBM PC 호환용으로 크게 유행했던 게임으로는 인디아나존스 - 최후의 성전을 비롯해 MSX용에서 이식된 YS I, 수호지, 영원한 명작 울티마 VI, 페르시아의 왕자 등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어드벤처 게임인 인디아나존스 - 최후의 성전은 영화의 덕을 톡톡히 본 게임으로 1990년 한 해를 통틀어 가장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MSX용으로는 울티마 시리즈에 버금가는 이스 III, 소설로 나온 은하영웅전설, 아쿠스 II 등이 인기를 끌었으며, 오메가나 윈드워커, 로보캅 등이 애플용 게임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

애플용 게임은 이 해 상반기를 끝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1991
1991년에 접어들자 8비트 게임의 명맥을 유지해 오던 MSX용 게임도 마침내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MSX의 경우는 그때까지 일본에서 계속 게임이 개발되긴 했지만 위력은 예전만 못했을 뿐 아니라 IBM PC 호환용 게임의 거센 파도에 떠밀려 애플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전의 재미있는 게임 대신 음란성에 가까운 게임들이 등장하기 시작, 사용자들로부터 본격적으로 '외면'당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국내 개발진들에 의해 MSX용 그날이 오면 II가 개발되었지만, 여느 국산 게임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시 빛을 보지 못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1991년에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게임으로는 우선 젤리아드를 꼽을 수 있는데, 시에라 온라인 저팬에서 만든 이 게임은 구성이 MSX용 인기 게임 이스 시리즈와 비슷해 특히나 사랑을 받았다.

젤리아드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인기 끈 게임으로는 원숭이섬의 비밀 1을 꼽을 수 있다. 이 게임은 정품으로 판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8,000패키지 정도 팔려 정품 게임 가운데 최고의 판매를 기록했다. 또 1991년 12월 중순 시판된 속편 원숭이섬의 비밀 2 경우 1월 초 현재 약 3,500패키지 정도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높은 인기를 반영했다.

이 외에 오리 아저씨, 레밍즈, 고인돌, 미래 전쟁, 신장의 야망 II, 삼국지 II 역시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2
1992년 1~3월에 등장할 게임으로는 로빈후드를 비롯해 인디아나존스 - 아틀란티스의 운명, 스페이스 에이스 II, 용의 굴 III, 시빌라이제이션, 랑펠로, 팰컨 3.0, 크렘린궁의 위기, 마이트 앤드 매직 III, 화성의 비망록, 마이크딧카의 미식 축구, 레밍즈 2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크렘린궁의 위기는 작년 여름, 소련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 게임으로 당시 국내 중앙 일간지 외신란 및 TV에서 개발 사실을 보도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에 들어 IBM PC 호환용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어드벤처 게임의 강세라 할 수 있다. 어드벤처 게임의 시초는 두 명의 프로그래머 Crowser와 Wood가 포트란으로 만든 Original Adventure이며, 뒤이어 Scott Adams가 12종류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컴퓨터 사용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어드벤처 게임이 빛을 본 것은 Ken Williams 부부가 중심이 된 온라인(지금의 시에라 온라인)에서 만든 위저드리 & 프린세스와 타임존, 하이 레조 어드벤처이다. 컬러 그래픽을 사용해 만든 이들 게임은 1982년 베스트셀러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들 초기의 어드벤처 게임은 Look, Open, Use, Take 등 직접 명령어를 입력하는 그래픽이 가미된 텍스트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킹스퀘스트 IV와 히어로스 퀘스트 II를 끝으로 약 1년 전부터 그래픽 어드벤처로 흘러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픽의 경우 VGA 256 컬러를 지원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어드벤처나 롤플레잉, 시뮬레이션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있다. 또한 사운드는 게임 사용자에게 있어 이제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애드립은 물론 사운드 블래스터, 미디를 지원하고 있으며, 디즈니사에서 개발된 최근의 게임은 동사가 개발한 사운드 소스까지 지원하고 있다.

또한 영화로 제작된 작품 중 상당수가 게임으로 등장하곤 했는데, 대표작으로 인디아나존스와 나홀로 집에, 로빈후드, 스타워즈, 로켓티어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스타워즈는 패미컴의 미국판인 NES용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로켓티어는 우리나라에서 인간 로켓티어란 제목으로 현재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한편, 1991년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 특기할 만한 사항은 게임 시나리오에 우리나라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즉, 전투기를 소재로 삼은 이전까지의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중동과 월남전, 그리고 유럽이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척 예거의 공중전을 비롯한 F11A 스텔스, 한국전쟁 등에서는 우리나라가 시나리오의 일부분 또는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AT 기종을 갖고도 게임을 즐기기 어렵다"는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게임 소프트웨어는 고급화 길로 치닫고 있어 XT나 모노크롬 모니터 사용자는 설 땅조차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판매 중인 윙코맨더 II와 2월 판매 예정인 팰컨 3.0, 그리고 스트라이크 코맨더의 경우 최소한 10~12메가바이트의 하드디스크 용량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팰컨 3.0은 MS-DOS 5.0이나 DR-DOS 6.0에서만 실행 가능하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게임의 대다수가 그래픽 처리에 상당한 신경을 쓰기 때문으로, 웬만한 게임에 실제 인물이나 장면을 디지타이즈한 장면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자리 잡은 정품 시장
미국 SPA(Software Publishing Association)의 업무용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단속 여파와 국내 업체의 게임 소프트웨어 정품 판매는 그동안 불법 복제 일색이었던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에 '정품'이라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 9월 18일, 일렉트로닉 아츠사 작품인 센츄리온을 시작으로 정품 게임 소프트웨어의 국내 판매를 시작한 동서게임채널은 이후 꾸준히 계약사를 늘려 올 1월 초 현재 27개 사에 달하는 계약사를 갖고 있어 이 분야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동서게임채널보다 약 7개월 늦은 1991년 6월, 용쟁호투를 필두로 SKC가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오리진 시스템즈를 비롯해 올 1월 초 현재 6개 사와 계약을 맺은 SKC는 당초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떠올랐으나 동서게임채널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선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 외에 현대전자에서도 작년 한 때 미국 마인드스케이프사와 계약을 추진했으나 여의찮아 중도 포기, 국산 게임 개발을 지원한다는 방침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들 업체의 정품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 참여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때까지 만연되어 있던 불법 복제와 그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반발은 좀처럼 쉽사리 가라앉지 않아 마찰을 빚기도 했다.
즉, 복사할 때보다 비싼 가격과 매뉴얼 부실 등의 이유로 정품 소프트웨어에 대한 비난이 연일 케텔 등 BBS에 게재되었을 뿐 아니라 정품 소프트웨어 공급 업체의 고발로 몇몇 게임 소프트웨어 취급점은 중앙 일간지를 비롯한 컴퓨터 전문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품에 대한 인식이 뿌리내리기 시작, 그동안 게임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해 왔던 소프트웨어 취급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복사와 별반 차이 없는 저가품의 공급 등으로 인해 정품 소프트웨어는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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