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3

XZR(엑자일) 시리즈

특이하게 이슬람 세계관을 다룬 액션 RPG 엑자일은 3부작으로 나왔다.
시리즈를 정리하자면

XZR 파계의 우상 - PC88, PC98, MSX2

XZR 시간의 틈새로 - MSX2, PC88, PC98, 메가드라이브, PC엔진
(MSX2, PC88, PC98판은 XZR Ⅱ 완결편이란 제목으로 발매)

XZR Ⅱ 사념의 사상 - PC엔진

옛날에 내가 클리어한 건 2편인 메가드라이브판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3부작을 모두 해보기로 했다.

XZR 파계의 우상 MSX2판

한국에선 2편부터 인지도가 있고 1편은 해본 분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3부작의 주인공 사드라, 홍일점 루미가 첫 등장한다. 사드라는 이슬람의 암살 교단 어쌔신 지도자의 아들로 셀주크 왕조의 칼리프를 암살하기 위해 움직인다.

마을에선 일반적인 JRPG처럼 대화하고 아이템을 사지만, 마을 밖으로 나가면 사이드뷰 전투 화면이 된다. 필드는 따로 없이 방향키로 지명을 골라 이동한다.

특이한 점은 아이템들이 마약이라는 것이다. 마리화나, 코카인, 아편 등으로 회복하고 능력치를 올린다. 검열이 어중간했던 80년대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이슬람 세계관을 채택한 게 특이하고 실제 역사가 얽힌 부분이 있지만, 고증은 무시된 부분이 많다. 가령, 12세기에 튀르키 모자를 쓰고 있다든가 이슬람 여성 캐릭터인 루미의 복장이 노출도가 높다든가…

옛날 게임인지라 보유할 수 있는 아이템이 20개밖에 안 되어 버려야 한다든가 무구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장비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든가 하는 여러 불편함이 있다.

전투는 액션성이 많이 떨어진다. 타격감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기술적인 한계로 스크롤이 뚝뚝 끊기는 건 덤. 스토리도 대사만으로는 설명 부족인 부분이 군데군데 있다.

처음엔 동족의 적 칼리프를 암살하는 게 목적이지만, 알라신의 기적으로 20세기 말로 타임슬립하고, 세계 대전을 막기 위해 미국과 소련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충격의 전개로 진행된다.

버그도 좀 있고 지금 즐긴다면, 인내해야 하면서 하는 게임.

XZR 시간의 틈새로 PC엔진판

MSX2판으론 XZR Ⅱ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컴퓨터학습 1989년 7월호에서 분석을 해줘서 인지도가 생겼다. 메가드라이브판은 당시 게임 잡지에서 공략을 내줬다.

난 메가드라이브판을 깬 적이 있는데, 그렇게 재밌게 한 기억은 없다. 스토리도 가물가물해서 이번에 PC엔진판으로 다시 해봤다.
MSX2판보다는 콘솔판이 즐기기 편하고 그래픽이 좋다. 마을에서 버튼 누르고 움직이면 고속 이동이 가능해서 쾌적하다. 무엇보다 PC엔진판은 CD음원 BGM과 성우 음성이 나와서 가장 화려해 보인다. 다만, 원작에서 미국 맨해튼과 일부 보스가 생략되었다고 한다.

내용은 그리스도교도인 십자군이 이슬람을 침공하는 십자군 전쟁이 바탕이다. 이슬람 시선에서 그리스도교를 바라보는 대화가 꽤 나온다.

템플기사단의 두목, 유그드페인은 십자군 전쟁을 목격하고 유일신이 있어야 이런 비극이 없다며 주인공을 꼬드겨 행동을 함께한다.

액션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전작보다는 훨씬 좋고, 1991년 기준으로 보면 중간 정도는 되는 액션 완성도다. 캐릭터가 큼지막해서 시원시원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도는데, 이슬람뿐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심지어 일본까지 돌아다닌다. 이슬람 주인공이 일본 사원에서 요괴들과 싸우는 게 이채롭다. 후반부엔 과거로 가서 배후와 싸우게 된다.

미로는 몇 군데 복잡한 부분이 있어서 공략 지도 보는 게 좋다.

전작보다는 많은 면에서 발전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이었다. 단지, MSX2판에 있었던 미국 부분이 생략된 건 아쉽다. 전작에서 주인공이 미국과 소련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내용이 문제가 된다고 봤는지 PC엔진판에선 아예 배제되었다.
황당하지만, 그 부분이 재미있었는데……

주인공의 동료들이 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한 상태로 끝난다.

XZR Ⅱ 사념의 사상 PC엔진판

사실은 3편이지만, PC엔진으론 두 번째 작품이라서 XZR Ⅱ가 되었다. 오직 PC엔진판으로만 나온 오리지널 속편이다.

오프닝 데모를 보고 실망했다. 일러스트 작가가 바뀌었는지 그림체가 달라졌다. <아쿠스>, <스타트링 오딧세이> 플스판 그림체와 비슷하다. 인물들이 날카로워져서 마음에 안 들었다.

주인공은 전작이 더 멋있었고 홍일점 루미도 전작이 귀여웠다. 귀여운 면은 사라지고 길쭉한 섹시녀가 되어버렸다.

전작으로부터 6개월 후, 생사불명이었던 루미와 동료들이 살아 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면 주인공을 바로 찾아갈 것이지 반 년이나 마을에 짱박혀 있던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바그다드에서 루미와 재회한 주인공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악행의 배후를 찾기 위해 모험한다는 스토리.

전작보다 캐릭터들이 작아졌다. 마을 화면, 전투 화면 모두 그렇다. 마을에서 좀더 많은 NPC를 넣기 위해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지만, 대화로 풀어가는 이벤트는 거의 없었다.
전투 화면에선 캐릭터가 작아진 대신 활동 공간이 넓어졌으나 박진감도 죽었다. 주인공이 움직일 때 자연스럽게 스크롤되지 않고 화면 구석으로 쏠리게 만든 건 부자연스럽다.

전작에선 마을 사이 이동은 그냥 맵 이동이었는데 이건 전투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전작보다 나은 점은 전투에서 여러 캐릭터를 바꿔가며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기본 4명에 잠깐 쓸 수 있는 캐릭터 1명이 있다. 그 1명은 중세 에스파냐에서 실존했던 명장 엘시드다.

레벨업은 전원 동시라서 캐릭터별로 키울 필요가 없어 편하다. 전작보단 공격 방법이 다채로워졌다.

주인공이 죽었을 때 나오는 게임오버 화면은 루미가 사드라 묘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인데, 이슬람교인이 십자가 앞에서 저러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모험한다. 바그다드부터 인도, 이집트, 예루살렘 등등.

전체적으론 성의 없이 만든 느낌을 받았다. 중간중간 텍스트로 이야기 전개를 설명하는 점, RPG다운 대화 이벤트 없이 전투 중심인 점, 빠르면 3~4시간 안에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짧은 점, 변신 같은 거 할 줄 알았는데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의 살신성인으로 허무하게 죽어버린 끝판왕, 맥 빠진 스토리……

전작보다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졸작이라고 생각한다. 3부작 중에는 두 번째 작품이 제일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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