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4

루인 - 신의 유산

1993년 빅터가 발매한 PC엔진CD용 액션RPG.
옛날 게임 잡지에서 공략을 보고 스포일러를 당했는데, 그 반전이 당시엔 신선해서 해보고 싶던 게임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스토리가 궁금해서 해봤다.
일반적인 중세 판타지 배경에서 시작한다. 전형적인 JRPG의 왕도물 느낌이다.

첫인상은 캐릭터 그래픽이 구리다는 것이다. 머리와 눈이 지나치게 크다. CD 케이스와 중간 동영상의 일러스트는 예쁜 편인데, 게임 상의 캐릭터는 그렇지 못하다.

10분 정도 해보면 B급 게임 냄새가 풍긴다. 살짝 커서 한눈에 안 들어오는 건물 내부, 실외로 나갈 때 판정이 모호, 마을 사람과 떨어져서 버튼 눌러도 대사 나옴, 이미 열었는데 닫혀 있는 보물상자, 밤낮 개념은 있지만, 관련 이벤트는 무 등등 대충 만든 부분이 거슬린다.
하지만, 큰 기대가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진행했다.

여성 캐릭터 두 명은 예쁘게 그려졌다. 근데, 샤롤 공주의 머리색이 녹색으로 CD 케이스 일러스트의 금발과는 다르다. 제작사의 무심함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전투는 액션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만 조작하고, 일행은 자동으로 싸운다. 주인공은 검사라 검을 휘두르고 여자 캐릭터들은 마법으로 공격한다. 타격감은 없어서 베는 맛이 밋밋하다.

스토리는 소년 쟝과 소꿉친구 올테나가 어떤 계기로 마물 군단과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 마물들의 보스, 짐승의 왕과 싸우게 된다는 내용. 흔한 왕도물로 시작되고 중반까지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짐승의 왕이 나타나면 그를 물리칠 용사가 나타난다는 예언이 있는데, 주인공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어김없이 주인공이 예언의 용사다.

거기까진 뻔한 전개였지만, 후반부는 SF로 빠진다. 이 세계관에서 말하는 신이란 존재는 극도로 발전한 병기 탓에 멸망한 인류였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류는 복제 인간(레플리칸트)을 지상에 심어서 인류가 다시 살 수 있는지 지켜본다. 그 복제 인간이 주인공을 비롯해 현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주인공의 아버지는 복제 인간 세상을 조사하러 온 인간이었다.
다만, 복제 인간뿐 아니라 멸망한 인류가 만든 생체 병기도 지상에 남아 있었는데, 그 생체 병기가 곧 마물들이었다.

주인공 일행은 자기네들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생체 병기의 끝판왕 루인을 이전 인류의 도움으로 물리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맞이한다.

일본 RPG에서 레플리칸트를 소재로 쓴 건 90년대 이미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니어 레플리칸트, 니어 오토 마타에서 소재로 다시 썼다.

루인은 평작에 머물고 말았지만, 스토리에 살을 더하고 더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면, 명작 반열에 올랐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좀 갑갑한 구석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엔딩은 잔잔한 발라드 보컬곡이다. CD음원의 BGM이 게임의 낮은 완성도를 조금은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엔딩 본 날 - 2024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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