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8

듀얼 오브 2 한글판

1994년에 I'MAX가 발매한 슈퍼패미컴용 RPG. 전작이 성공하지 못했는데도 꿋꿋하게 1년 만에 후속작을 냈다.

전작이 드래곤 퀘스트 모방이었다면, 이번엔 파이널 판타지 모방 같다. 캐릭터 동작과 표정을 보면 파이널 판타지 5, 6이 자주 떠오른다. 게임에 등장하는 ‘오브’도 파이널 판타지의 크리스탈을 따라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전투 화면은 차별화하려고 신경을 썼다. 전작과 달리 우리 편 모습이 보인다. 다만, 주인공은 미성년자인데, 전투 화면만 보면 무슨 아저씨 전사처럼 보인다. 필드에선 귀여운 캐릭터들이 전투 화면에선 리얼한 모습이니 이질적이다.

12메가비트였던 전작보다 2배 늘어난 24메가비트 용량을 썼는데, 이는 슈퍼패미컴 RPG로선 꽤 고용량이다. 파이널 판타지 6과 용량이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전작보다 크게 향상된 모습을 보여준다. 전작의 성들은 왕이 있는 곳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았고, 건물 그래픽이 획일적이었는데, 이제 보는 맛이 생겼다.

난 이 게임을 1995년인가 1996년 즈음에 슈퍼패미컴+UFO로 즐긴 적이 있다. 파판 아류작이라는 느낌이 너무 들어서 중도에 그만뒀다. 그래도 오프닝이 박력 있었고 만듦새가 나쁘지 않아서 언젠가는 다시 해보려고 했다. 미루다가 이제 엔딩까지 달린 것이다.

B급 RPG이지만, 당시 게임 잡지에서 공략도 해줘서 한국에서 인지도가 좀 있는 편이었다. 나처럼 추억이 있는 사람 중에 능력자가 있는지 한글 패치까지 나왔다. 비공식이지만, 번역이 나쁘지 않았다. 글꼴이 굵어서 읽기도 편했다.

스토리는 전작과 이어지는 부분이 없다. 1편에선 과학 기술이 발달한 선조를 멸망시킨 존재가 드래곤이었지만, 2편에선 박사였다. 1편과 2편은 그냥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밋밋했던 전작과 달리 파티 멤버들이 자기 주장을 하며 색깔을 드러내며 다음에 뭘 할지 제언하기 때문에 알기 쉽고 템포가 좋다. 다만, 주인공은 한 마디도 안 한다.

오프닝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주인공과 히로인의 정체가 후반부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흔한 소재라 놀랍거나 하진 않았다. 중세 판타지 배경에 SF 요소를 넣은 점은 취향에 맞았다.

전투 밸런스가 묘하고, 적 조우율이 높다는 전작의 문제가 그대로인 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수작으로 평할 수 있을 만큼 크게 발전한 속편이라고 본다. 단지, 파이널 판타지를 교본으로 삼고 만들었다는 인상이 짙은 게 흠이라고 할까. 결국 이 시리즈는 2편을 마지막으로 종말을 고한다.

제작사 I'MAX는 90년대 일본식 장기, 쇼기 게임 시리즈를 주로 내던 회사였다. 당시 RPG 제작을 안 해봐서 불안했는지 드래곤 퀘스트5, 파이널 판타지 6을 열심히 분석해서 따라 만들었다. 1990년부터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던 이 회사는 1998년을 끝으로 도산하고 만다.


◇사족 (스포&추측 포함)

1편과 2편은 서로 관련 없는 스토리라고 생각했지만, 끝 부분에 나온 보스의 모습이 드래곤인 걸 보니 이렇게 엮어보고 싶다.

-1편에서 드래곤은 인간 위에 신처럼 군림하고 있었는데, 인간들이 생명을 창조하는 기술을 개발해내자 위협을 느낀 드래곤이 인간 문명을 파괴해 버린다. 그리고 인간 세상은 중세 시대로 문명이 퇴보한다.

-2편에서 주인공 친구는 힘을 갈구한 끝에 사악한 박사에게 강한 몸을 얻는다. 그 몸은 진화해서 드래곤이 된다. 드래곤은 주인공에게 패배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지만, 사실 죽은 게 아니라 오브의 힘으로 봉인되었을 뿐이다. 먼 훗날, 봉인이 풀려 자유의 몸이 된 드래곤은 인간 위에 신처럼 군림한다. 이 드래곤이 1편의 드래곤이다.

이렇게 상상하면, 2편이 1편보다 앞선 시간대를 그린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제작자가 이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2편이 대성공을 거둬 후속작이 나왔다면 이런 식으로 엮을 수도 있었겠지. ㅎㅎㅎ


엔딩 본 날 - 2022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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