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2

귀신강림전 ONI

게임보이 RPG를 대표하는 시리즈가 1994년 슈퍼패미컴으로 나왔다. 게임보이판에서 스토리가 이어지진 않고, 일본 1190년대 가마쿠라 시대의 실제 역사를 소재로 했다.

PC엔진용 RPG <벤케이 외전>과 시대 배경이 완전히 같아서 등장인물이 겹친다. 두 게임 모두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인물인 요시츠네(義経)의 사망 이후가 배경이고, 주인공 출생의 비밀도 똑같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상상이 들어간 가상의 역사다.

요시츠네와 벤케이가 친형 요리토모(頼朝) 세력에게 살해당한 뒤,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 요리토모가 다스리는 세상이 된다. 요리토모의 아들, 요리토오(頼遠)와 그의 의동생으로 자란 주인공은 어느날 요리토모로부터 요괴 토벌의 명을 받고 모험을 떠나게 된다.

슈퍼패미컴 기준으로 꽤 잘 만든 RPG다. 그래픽 깔끔하며 음악도 이 정도면 좋다. 같은 배경의 <벤케이 외전>보다 5년 뒤에 나온 RPG인 만큼 모든 면에서 낫다고 할 수 있다. 말을 걸거나 조사할 때 버튼 누를 필요 없이 닿기만 해도 되고, 이동 속도와 전투 템포가 빠른 편이라 스트레스 없이 할 수 있다. 다만, 적 조우율이 높은 건 <벤케이 외전>과 비슷해서 아쉽다.

시스템 면에서 특징은 레벨(이 게임에선 格)이 완력, 내구력, 민첩성, 신앙심이라는 수치로 각각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전투 중에 선택한 행동에 따라 각 수치마다 경험치가 따로 매겨지는 방식이다. 가령 공격을 자주 하면 완력이 오르고, 도주를 자주 하면 순발력이 오른다. 전투 화면은 동양화풍이며 애니메이션 효과가 있어서 아기자기하면서도 볼만하다.

특정 검을 얻으면 주인공 일행이 각각 ONI(귀신)로 변신할 수 있으며, 인간 공격이 잘 듣지 않는 적에게 큰 데미지을 입힐 수 있다.

그 시절 게임치고는 본편 이외의 서브 이벤트가 많은 편이다. 전투 시 랜덤으로 도와주는 NPC를 곳곳에서 얻을 수 있고, 마법에 해당하는 ‘신내림’을 얻는 이벤트가 다수 숨어 있다. 파고들기 요소가 꽤 있는 편.

스토리는 무난한 왕도물이다. 큰 굴곡이라고 하면 주인공 출생의 비밀인데, 이게 PC엔진용 <벤케이 외전>과 똑같아서 혹시 참고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스포.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이 섬기는 쇼군, 요리토모에게 살해당한 요시츠네였다! 요괴의 힘으로 부활한 요시츠네는 복수심에 불타 친형 요리토모를 비롯한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고 세상을 요괴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요시츠네의 연인도 요괴인 걸 보면, <드래곤 퀘스트4>의 데스피사로가 떠오르는 인물이다. 요시츠네의 심복, 벤케이 역시 요괴로 나온다.

친동생을 죽였던 요리토모도 요괴에게 조종당하며 악해져 가고, 결국 요리토모와 요시츠네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죽는다.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 게임인가? ㅋ

비극적 삶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호감을 사는 요시츠네가 여기선 악인으로 묘사되는 것 같아서 좀 특이하다 싶었는데, 뒤로 가면 수긍할만한 사연이 있어서 실제 역사처럼 비극의 주인공 느낌이다. 친동생을 죽인 요리토모는 일본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못 받아서인지 게임에서도 결국엔 악인으로 나온다.

균형이 잘 잡히고 깔끔한 슈퍼패미컴 RPG였다. 굳이 흠을 잡자면 마을 모습이 다 비슷비슷했다는 점 정도고 전체적으로 수작 이상 가는 RPG라고 할 수 있다.

엔딩 본 날 - 2022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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