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5

루나 이터널 블루 MCD

1994년 게임아츠가 메가CD용으로 발매한 대작 RPG. 1999년 리메이크된 플레이스테이션판으로 엔딩을 봤으나 20년 만에 다시 하고 싶어져서 이번엔 메가CD 원작에 도전했다. 고전 게임은 할 마음이 들었을 때 바로 해야지, 안 그러면 나이가 들수록 할 기회가 사라진다.

옛날에 했던 플레이스테이션판은 동영상도 많고 그래서 감명 깊게 했는데, 훗날 평가를 보니 작화 붕괴가 많고 메가CD판의 도트 애니메이션만 못하다는 평가였다. 메가CD판으로 다시 해보니 그런 평가도 이해되고 플스판은 플스판대로 스케일이 큰 장점이 있지 않나 싶다.

전작 <루나 더 실버스타>에서 몇십 년 정도 흐른 시대가 배경이고, 전작의 인물이 일부 나오기도 한다.
전작을 안 해봤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해봤으면 깨알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나 싶다. 참고로 나는 루나 이터널 블루를 먼저 해봤다.

메가CD판은 적 조우율이 높은 랜덤인카운터 방식이라 플레이가 고역이다. 랜덤인카운터 없애는 치트를 찾아봤지만, 영문판용만 겨우 찾았고, 일본판 치트는 없었다. 그런데, 서양의 능력자가 만든 세이브 에디터에 랜덤인카운터 없애는 기능이 있길래 일본판 세이브 파일에 적용해보니 의외로 잘 먹혔다. B 버튼 누른 상태에선 적이 안 나와서 수월하게 진행했다.

루나 이터널 블루 세이브 에디터 (출처 https://codehut.gshi.org/Sega.htm)

비공식 한글판도 있지만, 레트로아크에서 세이브 창 열면 멈추는 문제가 생겨서 좀 하다가 그냥 일본 원판으로 바꿔서 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왕도물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2편을 전작보다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감정 없던 히로인 루시아가 주인공을 만나서 점차 인간의 감정을 깨닫는다는 점, 히로인이 하려는 일의 결과가 불투명해서 흥미진진하다는 점, 그리고 종교의 지저분한 면을 다뤘다는 점이다. 너무 뻔해 보이던 전작 스토리보다는 변화를 줬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흥미로운 설정은 ‘루나(달)’에 인류가 산다는 점이다. 지구(게임에선 푸른 별)는 파괴신 조파와 인류의 싸움으로 황폐해져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인류는 여신 알테나의 힘으로 루나로 이주한다. 그래서 이 게임의 배경은 루나이고, 지구는 루나에서 달처럼 밤마다 보인다.

여주인공 루시아는 지구(푸른 별) 재건을 위해 남겨진 여신이고, 조파의 부활을 막기 위해 루나로 강림한다. 이 루시아를 주인공 히이로가 발견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그래픽, 음악, 스토리 모든 면에서 메가드라이브 최고 수준의 RPG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게 메가드라이브 말기가 아니라 더 일찍 나왔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제작진이 화려하다. 캐릭터 디자인에 <자이언트 로보 더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쿠보오카 토시유키, 음악에 <랑그릿사> 등으로 유명한 이와다레 노리유키, 루시아 역 성우에 요코야마 치사, 레미나 역 성우에 하야시바라 메구미다.

다시 해보니 JRPG 특유의 오글거리는 대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높이 평가받을만한 것이 당시 기준 그래픽과 음악 수준이 꽤 높다는 것이다. 게임 BGM을 흥얼거리는 경우가 드문데, 이 게임의 삽입곡 Lucia's Theme, Crowded Street Corner는 지금도 가끔 듣는 곡일 정도로 무척 좋다.

엔딩은 루시아가 지구로 돌아가면서 주인공과 헤어지고 슬프게 끝나는데, 엔딩 화면이 끝나고 컨티뉴를 하면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고를 수 있다. 이걸 몰라서 그게 끝인 줄 아는 게이머도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히이로가 힘든 과정을 거쳐 루시아를 다시 만나면서 행복하게 끝나는 게 진짜 엔딩이다.

진 엔딩에서 지구(푸른 별)에 히이로, 루시아 둘만이 남는데, 애 많이 낳으면 다시 인류의 시초가 될 것이다. 루나 시리즈가 계속 나왔다면, 지구 이야기도 다루지 않았을까.

옛날에 불타오르며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재미나게 했다. 루시아의 애달픔에 빠졌다. 단언컨대 메가드라이브 최고 걸작 RPG 맞다. 요즘 기준으론 몰라도 그 시절 기준으론 그렇다.


엔딩 본 날 - 2022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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