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9

루나 제네시스

메가CD의 명작 RPG 루나 시리즈의 프리퀄. <루나 더 실버스타> 시대로부터 1000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05년 닌텐도DS로 마벨러스가 발매했다.
<루나 이터널 블루>에 감동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서 루나 시리즈를 다시 해볼 생각으로 이걸 해봤는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끔찍한 시스템
-마을에서건 필드에서건 달리기를 하면 HP가 소모된다. HP가 1이 되면 달리지 못하므로 진행이 느려진다. 적을 피하고 싶을 때는 달려야 하는데, HP가 소모되니 맘 놓고 달릴 수가 없다.

-전투에서 공격 대상을 내가 지정할 수 없다. 공격 선택하면 그냥 랜덤임. 그렇지 않아도 적의 체력이 높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짜증나게 한다.

-전투 중 도망가려면 음성 인식해야 하는데,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전투가 레벨업 모드와 채집 모드로 나뉘어 있다. 레벨업 모드에선 전투 후 경험치만 획득할 수 있고, 채집 모드에선 아이템만 획득할 수 있다.
매뉴얼을 안 읽어서 모드가 두 개인 줄 모르고 했다가 막판에 낭패를 봤다. 끝판왕에게 가려면, 네 구역에서 몬스터를 전멸시켜야 하는 미션이 있는데, 채집 모드로 하면 몬스터가 계속 부활해서 전멸하지 않는다. 이걸 몰라서 무한 전투 지옥에 빠졌다.

상태 창에서 레벨업 모드로 바꿔야 한 지역의 몬스터를 전멸시킬 수 있단다. 이걸 알고서야 클리어할 수 있었다.

열리지 않는 파란 보물상자도 이 모드로 몬스터들을 전멸시켜야 열 수 있다고 한다.

시스템이 X 같아서 이 게임은 치트를 필수로 써야 한다. 특히 HP 999 치트는 기본으로 쓰자. 다른 건 포기하고 스토리만 즐기자는 생각으로 했다.

한때 불모의 땅을 풍요로운 대지로 만든 여신 알테나와 그녀를 섬기는 드래곤 마스터 덕분에 세상은 평화로웠고 수인과 인간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여신 알테나를 노리는 흑마술 집단이 나타나고, 주인공 지안과 그의 단짝 루시아는 택배 일을 하던 중 그 집단과 맞서게 된다.

이야기의 큰 틀은 전작들과 비슷하다. 주인공 지안이 사랑하는 루시아가 사실은 여신 알테나가 환생한 모습이었고, 드래곤 마스터 이그나티우스는 그녀를 납치해 각성시켜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려고 한다.

지안은 루시아를 구하기 위해 네 마리 드래곤의 시련을 통해 힘을 얻고, 동료들과 함께 결국 이그나티우스의 야망을 저지한다.

다른 부분이 엉망이어도 스토리는 즐길 가치가 있겠지 싶었으나 스토리도 함량 미달이었다. 평이한 왕도물인 건 루나 시리즈 특색이니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용이 전작 패턴의 재탕이면서 그나마도 이야기가 가볍고 완성도가 낮다.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성이 별로 드러나지 않아 공감이 안 가고, 주인공과 히로인 사이의 애틋함도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히로인의 매력 역시 드러날 기회가 없다. 그러니 주인공이 목숨 걸고 히로인을 구하려는 심정에 감정이입이 안 된다. 

사건의 원흉 이그나티우스가 당연히 끝판왕으로 나올 줄 알았더니 그는 싸우지도 않고 사고로 죽는다. 개발 기간이 촉박해서 끝판왕을 생략한 게 아닌지 강하게 의심된다. 엔딩도 너무 짧고 성의가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급조한 티가 난다. 이야기는 짧은데, 플레이타임 늘리려고 전투 시간 걸리게 하는 꼼수를 썼다.

프리퀄이라고 하지만, 너무 단순하고, 몰라도 되는 이야기였다. 이 게임 이후 루나 시리즈는 끝장이 나고 말았다.


엔딩 본 날 - 2022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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