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7

2007년 일본 출장기 넷째 날

2007년 4월 28일

아침도 거르고 침대위에서 늦장을 부렸다. 11시나 되어서 밖으로 갔다. 일단 신주쿠로 가서 돌아다니다가 역 안의 카레 가게 C&C에서 카레라이스 식권을 샀다. 종업원에게 주면 주문 끝인 줄 알았는데,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를 말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라 "하이"만 했는데, 알고 보니 안 매운 거, 좀 매운 거, 되게 매운 거를 고르는 거였다. 젤 매운 거로 골라 먹었는데, 하나도 맵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매운맛이란 한국인들한테 전혀 매운 게 아니다. 카레는 굉장히 맛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파는 카레 소스를 나중에 사버렸다.


지하철역에서 해메다가 약속장소 근처인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갔다. 날씨가 우중충해서 편의점에서 미리 우산을 사서, 주택 쪽을 산책했다. 이곳의 정원과 나무들이 집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사람도 많지 않고, 일본 특유의 주택이란 느낌을 받았다.


돌아다니다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갔다. 대부분 연인이나 가족, 친구들끼리 온 경우가 많았다. 좀 외로워졌다. 이노카시라 공원은 경치도 좋고, 강에선 큰 잉어와 오리가 돌아다녔으며, 보트와 배들도 탈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엄청 오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고, 최악의 날씨였다. 발도 아파 오는데, 날씨도 이러니 여기 온 걸 후회했다.


그래도 절 등을 구경하다가 기치죠지 역으로 걸어갔다. 일본 사람과 기치죠지 역의 이노카시라 공원 쪽 출구에서 보기로 했는데, 약속시간인 7시까진 아직도 4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다. 구두를 신고 있어서 발이 무척 아프고 피곤했다. 북오프 서점에서 시간을 보낸 뒤 역 주변을 서너번 돌았다. 그러다 쉬려고 앉을 곳을 찾던 중, 역 안의 백화점 지하출구 쪽에서 피아노 미니 콘서트를 하길래 30분 동안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피아노 곡은 많이 들어봤던 클래식곡들이었는데, 피곤함을 잠시 잊게해주었다. 앉아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피아노 연주자는 주변 피아노 학원의 여선생이었는데, 연주가 끝나자 자기 학원 광고를 했다.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서 서점과 백화점 구경, 앉아있기를 반복했다. 이게 너무 힘들어서 호텔 생각이 간절했고, 너무 빨리 나온 걸 후회했다. 앉아서 좀 존 뒤에 약속시간 10분전에 M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M 선생님은 내가 만든 책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근데, 첫인상은 생각과 달랐다. 복장이 캐주얼하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메일의 문체로 봐서는 좀 인텔리하면서도 차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얼굴은 개그맨 같았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내가 아는 척하자 굉장히 반가운 표정을 지어주셨다.

M 선생님은 나를 구석진 술집으로 데려갔다. 엄청 좁고 너저분해 보이는 곳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곳이었다. M 선생님과 이 술집은 분위기가 맞아 보였다. 처음엔 윽... 했지만 이런 것도 나름대로 경험이라 생각하니 재미도 있었다.


선생님은 말이 많아서 도중에 침묵이 흐를 걱정은 없었다. 난 그저 선생님 말을 반복하거나 수긍하면 되니 대화하는 게 아주 쉬웠다. 이 술집은 모든 손님들이 서로 잘 알고 있는 단골이었고, 주인과도 친했다. 우리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 손님은 우리가 주문한 걸, 손님인데도 가져다 주었다.


선생님은 이곳이 일본의 옛날 따뜻한 정서가 남아있는 곳이라 했다. 하루종일 혼자 돌아다니느라 마음이 괴로웠는데, 이 술집의 따뜻한 분위기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실수를 해도,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분위기.. 선생님은 고코로노 유토리(마음의 여유)라는 표현을 썼다.


마음이 편안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지나가던 어떤 여자는 술집 사람들과 원래 알고 있었는지 인사하고 돌아갔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서글서글하니 웃음이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선생님과는 일본 출판사의 분위기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돈 같은 건 별로 중요치 않다며 자신은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꿈이라고 했다. 돈에서 벗어나 저런 신념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멋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좀 지저분했다. 반찬도 손으로 먹고, 손도 그리 깨끗해보이진 않았다. 음식은 참치, 생선회, 두부, 통째로 익힌 생선, 계란말이 등이었다. 맛은 그냥 그랬지만 양은 많았다. 선생님은 술을 무척 잘 마셨다.

10시가 넘어서야 술자리가 마무리되었다. 술값은 내가 내기로 했다. 근데 내가 7000엔을 700엔으로 잘못 듣고 1000엔 짜리를 꺼냈더니 주인은 어리둥절해하고, 앞에 있던 여자와 할머니 손님이 웃었다. 어쩐지 너무 싸더라... 난 일본 돈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변명하고 인사하고 나왔다. M 선생님과 역에서 해어지고 바로 이케부쿠로 호텔로 돌아왔다. 자판기에서 야채주스 꺼내서 먹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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