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도 거르고 침대위에서 늦장을 부렸다. 11시나 되어서 밖으로 갔다. 일단 신주쿠로 가서 돌아다니다가 역 안의 카레 가게 C&C에서 카레라이스 식권을 샀다. 종업원에게 주면 주문 끝인 줄 알았는데,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를 말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라 "하이"만 했는데, 알고 보니 안 매운 거, 좀 매운 거, 되게 매운 거를 고르는 거였다. 젤 매운 거로 골라 먹었는데, 하나도 맵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매운맛이란 한국인들한테 전혀 매운 게 아니다. 카레는 굉장히 맛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파는 카레 소스를 나중에 사버렸다.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서 서점과 백화점 구경, 앉아있기를 반복했다. 이게 너무 힘들어서 호텔 생각이 간절했고, 너무 빨리 나온 걸 후회했다. 앉아서 좀 존 뒤에 약속시간 10분전에 M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M 선생님은 내가 만든 책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근데, 첫인상은 생각과 달랐다. 복장이 캐주얼하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메일의 문체로 봐서는 좀 인텔리하면서도 차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얼굴은 개그맨 같았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내가 아는 척하자 굉장히 반가운 표정을 지어주셨다.
M 선생님은 나를 구석진 술집으로 데려갔다. 엄청 좁고 너저분해 보이는 곳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곳이었다. M 선생님과 이 술집은 분위기가 맞아 보였다. 처음엔 윽... 했지만 이런 것도 나름대로 경험이라 생각하니 재미도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지나가던 어떤 여자는 술집 사람들과 원래 알고 있었는지 인사하고 돌아갔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서글서글하니 웃음이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선생님과는 일본 출판사의 분위기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돈 같은 건 별로 중요치 않다며 자신은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꿈이라고 했다. 돈에서 벗어나 저런 신념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멋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좀 지저분했다. 반찬도 손으로 먹고, 손도 그리 깨끗해보이진 않았다. 음식은 참치, 생선회, 두부, 통째로 익힌 생선, 계란말이 등이었다. 맛은 그냥 그랬지만 양은 많았다. 선생님은 술을 무척 잘 마셨다.
10시가 넘어서야 술자리가 마무리되었다. 술값은 내가 내기로 했다. 근데 내가 7000엔을 700엔으로 잘못 듣고 1000엔 짜리를 꺼냈더니 주인은 어리둥절해하고, 앞에 있던 여자와 할머니 손님이 웃었다. 어쩐지 너무 싸더라... 난 일본 돈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변명하고 인사하고 나왔다. M 선생님과 역에서 해어지고 바로 이케부쿠로 호텔로 돌아왔다. 자판기에서 야채주스 꺼내서 먹고 잠을 청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