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2

투기왕 킹 콜로서스


1992년 6월 세가가 내놓은 메가드라이브용 액션RPG.
<공작왕>으로 유명한 만화가 오기노 마코토(2019년 4월 사망)가 일러스트와 프로듀스를 맡아 당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초기대작 메가CD용 <루나 더 실버스타>와 발매일이 겹치는 바람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크리스라자'라는 세계에는 여섯 나라가 있고, 여섯 왕이 각각 다스리고 있었다. 그중 종교 국가 디스타리아의 여왕 디자이어는 불치병을 안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디자이어는 정원에서 거미 문장이 새겨진 반지를 발견한다. 홀리듯이 반지를 손가락에 끼운 순간, 디자이어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동시에 강대한 마력을 얻는다. 이후 디자이어에겐 사악한 마음이 싹텄다. 국교를 암흑신을 숭배하는 그류드교로 바꾸고, 압도적인 마력으로 다른 다섯 나라를 침공하여 정복한다.


디자이어 여왕이 군림하는 세상에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소년의 손엔 노예 낙인이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엄격한 할아버지 밑에서 노예 검투사로 키워진다. 오늘도 할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위험한 일을 하러 나간다.


타이틀 화면부터 음산하며, 초반 분위기도 밝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음악은 비장미가 넘친다. 이 작품에 잘 어울린다. 상당히 좋게 들었다.


주인공을 키워준 할아버지는 퉁명스럽고, 가혹한 명령만 내린다. 같이 사는 누나만이 주인공을 생각해주는 것 같다.


필드 화면은 따로 없고, 지도 화면에서 목적지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던전, 탑, 성 등에서 적들과 싸우게 된다. 마을은 따로 나오지 않는다. 전투는 <젤다의 전설>과 비슷한 액션이며, 보스전은 <이스>와 비슷한 느낌이다. RPG답게 레벨업(최고 레벨 33)이 있으며, 다양한 무기와 공격용 마법을 쓸 수 있다. A버튼은 마법, B버튼은 무기 공격, C버튼은 점프다. 타격감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통쾌함은 느낄 수 있는 수준이다. 새로운 무기를 얻을 때마다 써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디테일이 괜찮다. 갑옷이 바뀌면 외양도 바뀐다. 당연한 것이지만, 90년대 16비트 게임기 RPG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새 갑옷을 입히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박쥐 등을 죽이면 피가 튀고, 그걸 밟으면 데미지를 입는 점도 꼼꼼해 보였다.


피, 죽음이 표현되는 걸 보면, 같은 액션RPG라도 <젤다의 전설>, <성검전설2>와 달리 비정하고 냉혹한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나 영화 <글래디에이터>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로마 제국의 투기장과 흡사한 게 이 게임에서도 나온다.


<드래곤 퀘스트>나 <이스> 초기작처럼 이 게임의 주인공도 대사가 없다. 개인적으론 이게 감정이입 하기 좋다고 생각한다.


머리 아픈 퍼즐도 없고, 전투도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닌데, 후반부로 가면 미로가 복잡해져서 꽤 헤매게 된다. 지도 같은 게 따로 없어서 길을 잘 기억해야 한다. 특정 아이템을 얻고 그걸로 다음 문을 여는 식이 많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한다. 걸음 속도가 좀 느린 게 아쉽다.


스토리는 굴곡이 있어서 재밌다. 마을도 사람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데, 한정된 대사만으로 이야기를 잘 이어나간다. 흔한 클리세가 섞여 있어서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지만, 그걸 궁금해지게 잘 짠 것 같다.


끝판왕을 물리치면, 마지막 답변에 따라 엔딩이 두 가지로 갈린다. 어느 엔딩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해피 엔딩이니 취향대로 고르면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이라서 큰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묻히기 아까운 걸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비장미 넘치는 음악, 괴기스러운 보스, 괴로움이 느껴지는 노예 검투사 생활... 모두 인상적이었다.
메가드라이브 특유의 다크함과 너무 잘 맞는 게임이었고, 그게 내 취향을 저격했다.


세가의 역량을 보여준 액션RPG라고 생각한다.


엔딩 본 날 - 2019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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