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1

룰 오브 로즈 (Rule of Rose)


2006년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2로 발매한 사이코미스터리 어드벤처다. <사일런트힐2>, <DEMENTO>와 흡사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 게임들을 안 해봐서 액션이 적은 <바이오쇼크>처럼 보였다.


1930년 영국, 버스 안에 있던 소녀 제니퍼는 어떤 소년에게 그림책을 건네받고 버스에서 내린 뒤, 숲속을 헤매게 된다. 제니퍼가 다다른 곳은 로즈 가든 보육원. 한밤중에 폐허가 된 보육원 안을 살펴보는데, 소녀들이 제니퍼를 숨어서 지켜보고 유령처럼 나타난다. 공포 영화 같은 분위기다.


보육원을 지배하는 것은 '빨간 크레용 귀족'이란 소녀들의 집단이었다. 소녀들은 공주부터 노예까지 계급을 나눈다. 그리고 제니퍼에게 그림책을 줬던 소년은 그 정점에 서서 제니퍼에게 명령을 내린다.


소녀들의 괴롭힘 행위, 이상한 미션 등 왜 이런 일을 하고 당해야 하는지 의문투성이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세계다. 그러면서도 몰입감은 꽤 좋다.


주인공 제니퍼는 힘이 없고 동작도 느려서 도저히 싸울 수 없어 보이는데, 칼, 삽, 도끼 등을 얻어서 싸우긴 한다. 나오는 적들이 결코 강하지 않은데도 주인공의 동작이 느리고 어설퍼서 난이도가 올라간다.


중반에 나오는 적, 인어 공주는 내가 여태 본 보스 캐릭터 중 가장 혐오스러웠다. 동화 속의 그 아름다운 인어 공주가 아니라 괴물이었다.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 독이 든 액체를 토해내는데, 그때 나는 소리가 징그러움의 극치다. 느린 제니퍼로 공격을 간신히 피하면서 한참 때려야 죽는다. 이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점은 개를 동료로 삼아 단서가 되는 물건을 냄새 맡게 해서 목표물을 추적하는 장면들이었다. 개의 움직임을 실감 나게 잘 묘사했다. 이 게임에서 개 '브라운'은 아주 중요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듬직한 동료로 아주 사랑스럽다.


처음엔 흉가가 된 현재의 보육원에서 시작하고, 그다음은 비행선, 그레고리의 집, 아이들이 있던 과거의 보육원 순으로 진행된다.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진 남자, 그레고리의 집은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게임 내내 그림책을 완성하는 이벤트가 나오는데, 그림책 내용이 잔혹하고 절망적인 내용뿐이다. 파랑새, 인어공주 동화를 비틀었다. 소녀들의 행위도 정상이 아니다. 보육원의 원장인 호프만 선생은 보육원 소녀를 자신의 성 노리개로 삼았다는 사실이 암시된다. 이 점들 때문에 발매 당시 유럽에선 미성년자에겐 적합하지 않은, 폭력적인 게임이란 의견이 많았다.


여긴 어디인가, 소녀들은 왜 엽기적인 일을 벌이는가, 제니퍼에겐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에 대한 답은 게임 내의 여러 단서를 조합하면 대략 유추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대략이고, 게임을 끝내도 전말을 속 시원히 밝히지 않는다.

인터넷 정보들을 보고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
제니퍼는 부모님과 함께 비행선을 탔다가 추락 사고(실제로 1930년 영국의 비행선, R-101호가 추락해서 49명의 승객이 죽은 사건이 있었음)로 부모는 죽고, 자신은 그레고리에게 납치된다. 그레고리는 외동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남자다. 제니퍼를 유괴해 감금하고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제니퍼는 보육원 소녀 웬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는데, 웬디의 도움으로 그레고리의 집에서 탈출하여 보육원에서 함께 살게 된다. 둘은 보육원 근처 장미 정원에서 영원히 함께하자는 맹세를 하고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된다.
어느 날 제니퍼는 강아지 브라운을 발견해 데려오고 애정을 쏟는다. 강아지에게 질투심을 느낀 웬디는 둘만의 맹세를 저버렸다며 제니퍼를 증오한다. 웬디는 어린애를 잡아먹는 들개 전설과 브라운을 연관 지어 보육원 아이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린다. 개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생겨난 아이들은 브라운을 자루에 담아 몽둥이로 때려죽인다. 웬디는 점점 이상해져서 그레고리를 조종하여 자신의 노예처럼 부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권력을 얻는다. 그리고 이간질로 제니퍼를 왕따시킨다.
한편 보육원의 호프만 원장은 보육원 소녀를 성 노리개로 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워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보육원을 팽개치고 도망간다. 호프만뿐 아니라 보육원의 어른들은 다 떠나간다. 이 틈에 폭주한 그레고리는 보육원의 아이들을 전부 살해한다.

진상은 이렇고, 게임 내의 내용은 주인공 제니퍼의 기억이 뒤틀려서 나타난 세계이다. 현실과 제니퍼의 망상이 번갈아 나온 것이다. 제니퍼가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도 알 수가 없다.


공포 분위기를 잘 살렸고, 떡밥들이 궁금해져서 몰입감은 상당히 좋았던 게임이다. 다만, 이 게임 스토리는 슬프고 잔혹한 이야기일 뿐이어서 아쉬웠다. 특별한 메시지 없이 허무한 내용. 곱씹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게임을 하는 동안엔 몰입해서 잘 즐겼다.


*PCSX2 에뮬로 16대9 와이드스크린 패치해서 돌리니 실기보다 더 좋은 화질과 비율로 즐길 수 있었다. 와이드스크린했을 때 단점은 게임 내 동영상은 16대9 지원이 안 되어 다소 눌려나온다는 것. 게임 내 화면에선 원래 실기에서 안 보이던 양옆이 다 나와서 시원시원했다.


엔딩 본 날 - 2020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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