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2

소드 마스터 PC엔진


소드 마스터는 1993년 라이트스탭이 PC엔진 슈퍼CD롬용으로 발매한 시뮬레이션 RPG다. 국내 게임 잡지에선 공략해준 적이 없고 '소드 마스터'라는 제목도 평범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소드 마스터'란 제목의 게임은 패미컴에도 있고 X68000에도 있다. 제목만 같고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어느 마을의 술집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중년으로 보이는 빨간머리 남자가 주인공이다. 호리호리 미소년 주인공이 대부분인 일본 RPG에서 무섭게 생긴 사내 주인공은 흔하지 않다. 주인공이 쉬고 있던 술집에 어떤 소녀가 들어와 "암흑왕이 부활한다"는 말을 하고 쓰러진다. 그녀는 '아르세아'라는 소녀이며, 살던 마을이 암흑왕을 부활시키려는 무리에게 습격당해 그 위험을 알리러 왔다고 한다. 마족과 인간의 혼혈인 주인공 액스가 그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는 이야기.


게임은 <파이어 엠블렘>처럼 전투가 턴제 시뮬레이션 방식이다. 높은 난이도에 더해 동료 캐릭터가 전투에서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는 가혹한 설정이다. 특정 캐릭터가 있든 없든 스토리에는 영향을 안 미치지만, 회복 마법이 있는 캐릭터들이 모두 죽으면, 게임 진행이 고달파질 수 있다. 전투에 쓸 수 있는 캐릭터는 주인공 포함해서 26명이라고 한다. 검사, 닌자, 승려, 궁사, 마법사, 소환사 등 다 개성 있고 특기가 다르다.


턴제 시뮬레이션 요소를 제외하면 일반 RPG와 비슷하다. 마을이 있고 대화가 있고 던전이 있다. 던전은 미로가 그리 복잡하진 않으나 퍼즐 요소가 있어서 잘 생각하지 않으면 막힐 곳이 한두 군데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필드는 없고 지도에서 이동하는 방식이다. 직접 이동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상 내레이션과 함께 강제로 이동된다. 일방통행 진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도가 있다면, 마을에서 만난 캐릭터를 동료로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게임 분위기가 어둡고 비정하다. 주인공 액스는 정의의 용사하곤 거리가 멀다. 설령 상대가 왕이라도 남의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느냐로 움직인다. 세상이 마왕에게 어찌되든 내 알 바 아니라고 하고, 적이 인질극을 벌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보다 썩어빠진 녀석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가 싸움을 하는 이유다.


게임은 꽤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인공을 제외하면 공격력도 낮은 편이고 명중률도 높지 않다. 적의 AI가 빠르지 않아서 전투에 시간이 걸린다.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한다. 근성이 필요하다.
전투 그래픽은 처음엔 소박하게 느껴졌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점점 볼만해진다.


왕도 RPG와는 다른 하드보일드한 분위기라서 취향 저격이었는데, 스토리가 특별한 반전 없이 평이하게 전개되는 점이 좀 아쉬웠다. 다만, 엔딩에서 주인공 액스와 히로인 아르세아의 배드신이 나와 좋았다. 닌텐도 계열 게임기에선 이런 거 보기 힘든데, PC엔진 게임은 간간이 아슬아슬한 장면이 나온다. 18금까진 아니지만, 어린이 대상이 아닌 장면이나 대사가 아주 가끔 나온다.


주인공 액스와 아르세아의 나이 차이는 외모만 보면 띠동갑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아르세아와 하룻밤 지내고 어디론가 홀로 떠나는 주인공. 스태프롤과 함께 보컬 곡 '당신으로부터 나에게(あなたから私へ)'가 흐르며 게임이 끝난다.


엔딩 본 날 - 2020년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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