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1

베알파레스

2000년에 플레이스테이션1으로 나온 액션 RPG. 기획과 개발은 질소프트가 했고, 발매는 소니가 했다. 플레이스테이션2를 보유하고 있을 때 호환 모드로 돌려봤던 게임이지만, 14년이 지나서 제대로 해봤다.

두 강대국 사이에 1만 년 전의 유적이 발견되고, 온갖 보물과 함께 마물들이 출몰한다. 두 나라는 군대를 보내 마물들을 토벌하고, 유적 주위에 성벽을 쌓아 세상과 격리한다. 몇 년 뒤 성벽 안에는 작은 마을이 생겼고, 세계 각지의 모험가들이 유적의 보물을 노리고 몰려들었다.

주인공은 시작 시 성별, 출신, 직업, 목적을 선택해서 만들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라 무기와 능력치가 달라진다. 주인공 이외에 조작할 수 있는 인물이 13명 나오고, 주인공 포함 3명까지 데리고 다닐 수 있다. 각자 공격 방식과 마법이 다르고 필요할 때 교체하며 쓸 수 있다. 동료는 미션마다 교체가 가능하고, 누구와 오래 지냈느냐에 따라 엔딩이 바뀐다. 캐릭터 엔딩이 무려 26가지 있다고 한다.

게임은 굉장히 잘 만들었다. 2D이지만 캐릭터의 동작이 아기자기하고 세밀하다. 당시 플스 유명 메이커의 RPG와 견줘도 꿀릴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게임이 잘 안 알려진 까닭은 무명 제작사가 만들었고, 홍보도 거의 안 해서라고 한다. 게임CD 표지도 캐릭터 없이 칙칙한 배경에 제목만 달랑 있어서 팔려는 의욕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홍보가 잘 안 된 이유도 있지만, 기존 RPG팬이 익숙해지는 데 허들이 높은 것도 이유이지 않았나 싶다. RPG로선 흔치 않은 쿼터뷰 화면이라 대각선 조작이 필요하고, 액션으로 풀어가는 방식이 그리 쉽지 않았다. 던전의 미션은 머리를 써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중도 포기 직전까지 갔다. 유튜브 공략을 보지 않았으면 아마 포기했을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릴 진행 방식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니 기존 RPG에서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스토리는 난해한 면이 있긴 하지만, 꽤 좋았다. 왕도물과는 거리가 있다.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과 달리 전반적인 분위기가 암울하며 비극적인 전개도 나온다. 유적을 둘러싼 비밀에 반전이 있다.

고대인이 갈구한 세계는 살면서 괴로움을 맞본 사람들이 생각해낸 이상향 아니었을까. 세상의 비극은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나오니 그걸 다 융합시켜서 하나로 만들면 괴로움도 싸움도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주인공은 그걸 막기 위해 싸우지만, 엔딩을 보면 그게 꼭 나쁜 것이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플스1의 묻히기 아까운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엔딩 본 날 - 2020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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