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0

미드 가츠 X68000


울프팀이 1989년에 일본산 PC인 MSX2, PC8801, PC9801, X68000용으로 발매한 슈팅 게임. 잡지 <컴퓨터 학습>에 MSX2 버전 공략이 실려 있었는데, 방대한 세계관과 멋드러진 비주얼에 난 그만 혼을 빼았겼다. 하지만, MSX2가 없어서 그림의 떡.


나한텐 꿈의 게임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드디어 에뮬로 돌려봤다. PC8801판은 그래픽이 구려서 패스하고, MSX2판을 실행해봤는데, 음색과 움직임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결국 X68000판을 XM6 에뮬로 돌렸다. X68000판은 그림체가 파스텔풍으로 바뀐 점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캐릭터 움직임이 더 부드럽고, 음색이 풍부해서 게임하기엔 이식판 중 가장 쾌적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X68000판은 ESC 키를 누르고 있으면 무적이 되어서 누구나 깰 수 있다.


당시 잡지 공략을 봤을 때는 중간 비주얼 화면이 강조되어 어드벤처나 액션RPG인 줄 알았다. 직접 해보니 완전히 슈팅 게임이었다. <닌자용검전> 같은 게임처럼 스테이지 사이에 비주얼 대화 장면이 나올 뿐이다. 내용이 난해해서 대화만 봐선 뭔 소리하는지 왜 싸우는지 감이 잘 안 온다. 만나는 인물마다 수수께끼 같은 소리만 한다. 게임 메뉴얼에 세계관이 빼곡하게 적혀 있어 그걸 봐야 대충 이해가 간다. 시대 배경은 울프팀이 만든 <아쿠스> 시리즈의 훗날이라고 한다.


자연 재해로 인류 문명이 파괴되고 인간은 몰락한다. 그때 나타난 건 드래곤족이었다. 드래곤족은 파괴를 일삼았고 인간은 그들을 피하며 살았다. 그러나 단 한 곳 드래곤과 인간이 공존하는 땅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빛의 땅'이라고 불렀다. 빛의 땅에서 드래곤들과 함께 자란 주인공 카인 사즈는 화이트 드래곤족의 족장 슈리테 화이트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젊은 드래곤, 사쿤 화이트와는 형제처럼 지냈다.
어느날 카인은 신의 의사를 전한다는 세 개의 검 중 하나인 룬 블레이드를 손에 넣는다. 그 검에는 본 적도 없는 고대어가 적혀 있었는데, 카인과 사쿤이 이 문자 해독을 부탁하기 위해 스승 요수아 화이트를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게임은 <드래곤 스피릿>처럼 주인공이 드래곤을 타고 싸우는 슈팅 게임이다. 차이점은 가로 스크롤이라는 점이다. 스테이지 클리어할 때마다 새로운 공격 주문을 얻고 주문을 바꿀 때는 영어 음성으로 주문명을 말한다.


어릴 때 잡지에서 본 스테이지 중간 비주얼은 굉장히 멋져 보였고, 꼼꼼한 세계관이 대작 느낌을 줬지만, 지금 보면 덤덤하다. 비주얼 신에만 공을 들인 탓인지 슈팅 게임으로선 어중간하다. 스피드감이나 적을 맞출 때의 통쾌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드래곤 스피릿>, <그라디우스2> 등의 당시 걸작 슈팅 게임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총 12스테이지 구성이고, 후반부엔 인간이 번성했을 때의 과거로 가서 현대의 전투기, 헬기, 군인들과 싸우기도 한다. 주인공의 단짝 드래곤 사쿤은 그 현대 병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한다. 그 바람에 종반엔 주인공이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


또 다른 신의 검을 가진 호적수, 루안 칸을 무찌르면, 마지막 판에서 신과 싸우게 된다. 신을 무찌르면, 인간의 지위가 높아져서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하는 세상이 될 조짐이 보이며 끝난다.
떡밥을 남겨둔 것으로 봐서는 속편까지 염두에 둔 모양인데, 끝내 나오지 못하고 일본산 컴퓨터 시대가 저물고 만다.


주인공 카인은 여신이었던 레나를 연인으로 맞아 행복하게 잘 살게 되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컴퓨터 학습>의 공략을 보고 선망했던 게임이지만, 지금 해보니 상상했던 대작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울프팀의 그 시절 게임은 세계관이나 설정 등은 세세하게 잘 되어 있는 데 반해, 게임 자체는 뭔가 아쉬운 적이 많지 않았나 싶다.
호기심을 충족한 것으로 만족한다.


엔딩 본 날 - 2020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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