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9

RAY-GUN


<동급생>으로 유명한 ELF사(2016년 폐업)에서 1990년에 발매한 성인용 RPG. MSX2, PC8801, PC9801, X68000으로 나왔는데, 내가 고른 건 그중 스펙이 가장 좋은 X68000용이었다. 하지만, 하위 기종보다 딱히 그래픽과 음악이 더 낫진 않았다.


높은 벽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마을, 레이크 사이드에서 주인공 죠지는 연인 미리아와 무기 수리점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 외곽에 있는 호수 옆에서 고장난 스테로이드과 수정구슬을 발견한다. 스테로이드란 벽 밖의 세계에서 날아와서 젊은 여자를 납치해가는 로봇을 말한다. 고장난 스테로이드의 수리가 끝날 무렵, 다른 스테로이드가 주인공의 연인 미리아를 납치하고, 공격을 받은 주인공은 의식을 잃는다.


깨어난 주인공 눈앞엔 루피아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주인공이 주은 수정구슬 속에 봉인되어 있었으나 스테로이드의 공격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루피아는 주인공이 수리한 스테로이드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주인공은 루피아와 함께 스테로이드에 올라타서 연인 미리아를 찾기 위해 벽 밖의 세계로 떠난다.
마을 같은 건 없고, 필드와 성만 나오는 RPG다. 주인공 이외의 남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으며, 여자들만 대화 상대로 등장한다. 성인 게임답게 그 여자들은 하나같이 미소녀이며 대개 옷을 벗고 있다. 단, 보여주기만 할 뿐, 선을 넘진 않는다.


스테로이드 모습을 한 주인공을 보고 여자들이 다 놀라서 횡설수설해대는데, 그게 코믹하다. 적들은 징그럽고 급박한 상황인데, 게임의 분위기는 전혀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흘러간다. 개연성 따윈 적당히 얼버무린다.


초반엔 돈도 경험치도 쥐꼬리만큼 줘서 레벨을 올리기 어렵고, 전투에서 죽기 쉽다. 레벨은 999까지 올릴 수 있는 것 같은데, 한 20까지만 올려도 엔딩 보는 데 지장이 없다. 레벨업 체계가 균형이 안 맞는 느낌이다. 곳곳에 있는 샘에서 체력 회복할 수 있고,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 수 있다.


중반부엔 암호를 맞춰야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도 게임 메뉴얼에 실린 암호표를 봐야 맞출 수 있는 모양이다. 에뮬로 돌린 나에겐 메뉴얼이 없었지만, 일본 웹에서 암호표를 찾아내 넘길 수 있었다.


연인을 비롯한 젊은 여자들은 마왕의 부활에 필요해서 납치된 것이고, 그것을 막으려면, 특수능력을 지닌 6명의 소녀를 찾아내야 한다. 진행은 거의 필드 뺑뺑이 돌리는 경우가 많다. 필드가 그리 넓진 않지만, 도중에 적 출현이 무척 잦아서 시간이 걸린다. 플레이 시간을 랜덤 인카운트로 다 때운다.


끝판왕은 마왕일 줄 알았는데, 결국 부활을 못 하고 주인공은 조무래기 적들만 상대하고 끝난다. 스토리에 인상적인 부분은 하나도 없고, 미소녀 노출이 전부인 RPG. ELF사가 훗날 만든 다른 게임들에 견주면, 스케일이 작고 내용이 짧다.


엔딩 본 날 - 2020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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