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8

마그나 브라반 - 편력의 용자


1994년 아스쿠코단샤가 발매한 슈퍼패미컴용 RPG입니다. 지명도가 무척 낮은 게임이죠. 일본 내에서도 100명 중 아는 이가 10명도 안 될 정도로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고 합니다.
이런 마이너 작품엔 좋은 점이 있습니다. 기대를 전혀 안 하고 하기 때문에 평범한 수준의 재미만 있어도 숨겨진 명작처럼 느껴지는 거죠. 이 <마그나 브라반>이 그렇습니다.


그래픽과 캐릭터의 표정 연출은 <파이널 판타지5>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보다 좀 원색적인 그래픽을 보여줍니다. 무난하고 깔끔한 느낌이네요.


스토리는 소년이 성장하며 마왕을 물리치는, 아주 흔한 왕도물입니다만,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준 기사가 너무 멋있어서 왕국 기사가 되길 꿈꾸는 주인공. 어리지만, 무투회에서 우승하면 기사가 될 수 있단 소식에 부모의 반대에도 참가합니다. 그러나 무참하게 1회전 탈락. 네, 주인공이 약합니다. 전설 속 용자의 피를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싸움에 재능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소년일 뿐입니다.


패배한 소년은 자신처럼 1회전 탈락한 주정뱅이 전사와 재능 없는 마법 소녀에게서 위로주를 받습니다. 셋이서 술 마시고 푸념하는 중, 무투회장이 마왕의 부하들에게 습격을 받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주인공 일행은 왕국 대신의 눈에 띕니다. 그는 이런 습격에도 멀쩡하다며 주인공 일행이 강한 줄 착각합니다. 성으로 이끌려 간 주인공은 꿈에 그리던 ‘기사’ 칭호를 받고 마왕을 물리치라는 명을 받게 됩니다.


이 게임은 선택받은 엘리트 용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루저’들의 이야기입니다. 루저들이 필사적으로 싸우니까 응원하고 싶어지는 거죠. 그리고 자신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 깨닫는 과정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많은 고전 RPG에서 주인공은 정의감이 넘칩니다. 목숨을 걸고 마왕과 힘든 싸움을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왜 굳이? 주인공이 그 어려운 일을 선택한 동기가 잘 안 보여서 공감이 안 가는 설정이 많습니다.
<마그나 브라반>의 주인공은 뭘 위해 싸워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싸움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기사로 인정받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원수 또는 은혜를 갚기 위해……
이 RPG는 싸워야 하는 진짜 이유를 찾는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주고받는 대사에서 등장인물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고, 코믹한 분위기라서 즐겁습니다. 마을 사람의 대사는 중복되는 경우가 꽤 있어서 디테일이 부족하단 느낌은 듭니다. 그리고 대사가 한자 없이 히라가나로만 표현됩니다. 걸음이 느린 것도 조금 불편합니다.


전투는 쿼터뷰 화면에 캐릭터마다 작전 짜놓으면, 알아서 싸우는 리얼타임 오토 배틀 방식입니다. <스타오션>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HP 0이 되어도 사망이 아니라 전투 불능이고, 회복시키면 바로 일어납니다. 개성 있는 캐릭터가 8명 등장하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캐릭터는 5명입니다. 스토리상 파티 구성이 몇 번 바뀌는데, 마지막 싸움에선 8명 중 5명을 선택하게 됩니다.


게임의 볼륨은 같은 해 발매된 <파이널 판타지6>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전 짧아서 편했지만요.
엔딩은 지금까지 거쳐온 과정을 사진처럼 보여주고 마지막엔 일상으로 돌아간 주인공의 훗날 모습이 나오는데,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론 꽤 괜찮은 RPG였다고 생각합니다. 기대 없이 해서 그럴지도요. 3DO로 2편을 제작한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엔딩 본 날 - 2019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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