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2

쥬베이 퀘스트


남들이 잘 안 해본 RPG를 해볼까 하고 고른 게 이거다.
배경은 일본의 에도 시대. 하늘에서 몇 개의 캡슐이 떨어진다. 그중 하나엔 아기가 있었고 누군가가 주워서 키우게 된다. 아이가 15살이 되는 날, 아버지는 아이를 불러 느닷없이 전국 곳곳에 나타난 마계수를 물리치라고 명한다. 그리고 마계수들 배후에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더 큰 악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다 알까? 그리고 15살짜리 애에게 그걸 왜 시킬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머니는 "넌 사실 내 진짜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도 양아버지가 시킨 일을 하기 위해 묵묵히 길을 떠나는 주인공. 아무런 심리 묘사가 없다. 여기서부터 뭔가 C급 게임 냄새가 났다. 그리고 주인공이 왜 애꾸인지 설명이 없다. 일본 역사 속 쥬베이란 인물이 보통 애꾸로 묘사되긴 하지만, 이 게임의 주인공은 그와 동일인물도 아닌데, 왜 처음부터 애꾸일까? 멋있어 보이려고?


필드나 캐릭터 그래픽은 초라하다. 패미컴 초창기 RPG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패미컴 말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에 나온 RPG치고는 성의 없다는 느낌이 든다. 무기점, 도구점, 은행의 간판이 구분 없이 'お店'로 걸려 있는 것도 그렇다.

무기점에 가서 무기를 사려고 했더니 "네가 가지고 있는 검이 훨씬 좋은 검"이란다. 처음부터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 밖으로 나서려고 하자마자 적에게 속아서 그 검을 빼앗긴다. 결국, 무기점에 다시 가서 싸구려 무기를 살 수밖에 없다. 장비를 사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장비는 중고로 사준다. 그리고 따로 장비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장착한다. 이 시스템은 편했다.


필드 그래픽은 초라하지만, 전투 그래픽은 나름 괜찮다. 드퀘 방식이지만, 공격 시 우리 편이 무기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도 시대인데, 대사에서 Back, Devil, Clone 같은 외래어가 나와서 의아했다. 할수록 뭔가 논리에 안 맞고 게임도 별로 재미없어서 유투브로 엔딩 보고 접기로 했다.


일본 발매시엔 TV CF도 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한국에선 해본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일본 내에선 추억의 게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평가는 많이 엇갈린다. 재밌게 즐겼다는 사람도 있지만, 걸작이나 수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같은 회사가 만든 <패수 이야기> 시리즈는 나름 수작으로 꼽히던데, 그 시스템이 여기에도 쓰였다고 한다. 다양한 동료가 있고 각자 특기가 있어서 뭔가를 시킬 수 있다.


스포일러를 봤더니 주인공은 원래 타임머신을 모는 타임 패트롤인데, 타임머신이 고장을 일으켜 에도 시대로 떨어져 버렸고 본인도 아기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이 에도 시대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단다. 엔딩에서 주인공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동료들과 15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든다고 한다. 그럼 그때까지 고생한 것, 그때까지 만난 사람들도 다 사라진다는 건데... ㅋㅋㅋ


알고 보니 꽤 독특한 전개다. 외래어가 섞인 이유도 알 것 같다. 에도 시대 RPG이지만, 사실상 SF였던 것이다. 그냥 참고 끝까지 해볼 것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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