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2

파이어 엠블렘 에코즈


관심이 없었는데,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중 가장 재미나게 했던 <파이어 엠블렘 외전>의 리메이크작이라는 걸 알고 급하게 구해서 했다.


1992년 3월 14일에 나온 패미컴용 <파이어 엠블렘 외전>은 게임잡지 부록 공략집을 보고 군침만 삼키다가 몇 년 뒤 에뮬로 끝을 봤다. 외전이 처음 엔딩을 본 파이어 엠블렘이었다. 전작과 달리 자유도가 높고 간편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당시는 일본어판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비공식 한글판도 나와 있다.



그 외전을 닌텐도에서 25년 만에 <파이어 엠블렘 에코즈>란 이름으로 리메이크했다.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보일 정도로 환골탈태했다. 그래픽과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스토리에 살을 붙이고 던전 탐색까지 추가되었다. 패미컴판과 견주면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먼저 그래픽을 보자면, 외전은 당시 수준으로 봐도 그래픽이 밋밋했고 등장인물에도 개성이 없었다. 얼굴은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색깔만 다르게 한 캐릭터가 많았고, 모션도 별 차이가 없었다. 에코즈는 꽤 괜찮은 일러스크를 써서 그런 부분을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중간중간 애니메이션도 나온다. 전투 애니메이션은 박력이 있다. 외전과 달리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빨리 넘기기 가능한 것도 무척 편했다.
음악은 외전의 경우, 무거운 스토리와 달리 다소 경쾌한 느낌이었지만, 에코즈는 장엄한 오케스트라 느낌이다.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걸 들으면 알 수 있다. 시리즈 역대급이라는 평이다. 요즘은 기본이지만, 주요 대사에 성우도 기용되었다.


시스템은 원래 외전이 독특한 편이었다. 다른 시뮬레이션 게임과 달리 맵을 자유롭게 다니다 적과 만나면 싸우고, 두 주인공을 원할 때 번갈아서 조종할 수 있다. 그래서 클리어 순서는 플레이어 마음이다. 이 점이 나에겐 다른 파이어 엠블렘보다 좋아 보였다. 그런 외전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RPG처럼 던전 탐색을 추가한 것도 좋았다. 던전이 너무 어렵지 않고 적당한 난이도다. 모든 캐릭터는 일정 레벨에 도달하면 직업을 바꿀 수 있다. 전사, 마도사, 신관 등 다양하고 능력치와 모습이 바뀌어서 육성 게임으로서도 중독성이 높다.
디테일도 외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무기가 바뀌면 전투 애니메이션에도 무기의 모습이 나오는 점, 캐릭터끼리 대화를 하는 점, 캐릭터가 죽으면 관련 캐릭터가 울부짖는 점 등등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썼다.


세이브 데이터를 조작해서 능력치와 돈을 뻥튀기할 방법을 구글링해봤지만, 최신 게임이라 그런지 에디터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오랜만에 제대로 진행했다. 따로 레벨 올리려고 뺑뺑이 돌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올린 레벨만으로 게임 클리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강한 적에겐 약간의 전술과 인내심이 필요할 뿐이었다. 나는 난이도를 캐릭터가 죽어도 다음 전투 때 되살아나는 '캐주얼 모드'로 해서 쉬웠지만, 만일 외전과 같은 '클래식 모드'(캐릭터가 죽으면 진짜로 사망)로 했다면, 훨씬 어려웠으리라 본다.



스토리를 보자면, 오래된 원작이라 출생의 비밀, 신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인간 등 일본RPG에서 자주 우려먹었던 소재가 나온다. 예측하는 게 거의 그대로 된다고 보면 된다. 다만, 원작에 살을 많이 붙여서 이야기의 무게가 늘었다.
왕이 되는 데는 핏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리더의 소양과 용기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나오지만, 결국 두 주인공은 왕가의 핏줄이다. 평민이 암만 노력해봐야 핏줄이 아니면 왕이 될 수도 없었겠지. 그래서 메시지가 애매하다.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감정이입하긴 좋지만, 나름 상상할 수 있던 부분들이 한 가지로 명확해진 점은 아쉽기도 하다.
악역 중 하나는 만화 <베르세르크>가 연상되었다. 악마가 되는 데 소중한 무언가를 바쳐야 하는 장면. 등장할 때부터 그렇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를 용서하는 '재물'이 비현실적이었다. 그 부분에서 공포스런 최후를 맞이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역시 닌텐도 게임인가.
초반에 악당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하려고 한다든가 어린애 목을 자르려고 한다든가 하는 부분이 나오긴 하는데, 당연히 결정적인 장면은 안 나온다. 성인용 파이어 엠블렘을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다.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마음에 들었던 셋이다. 크레아, 세리카(주인공), 메이. 다들 일본 만화 특유의 색기가 있는 것 같다. 이 셋을 중점적으로 키웠다.




5장의 마지막 판은 조금 어려워서 한 번 전멸했다가 다시 도전해서 엔딩을 봤다. 파이어 엠블렘 전통의 엔딩이 나온다. 등장인물들의 훗날 이야기를 한 명씩 글로 보여준다. 못 얻은 동료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다시 할 생각은 없다. 스태프롤 올라갈 때 박종훈이라는 우리나라 사람 이름도 보인다.
엔딩을 보고 클리어 세이브를 다시 로드했더니 원작에 없던 6장이 새로 시작되었다. 특별한 스토리는 아니고 해적의 보물을 찾는 내용 같다. 그걸로 다시 육성하며 즐기라는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시나리오 같다. 일단은 세이브 파일 보관하고 여기서 에코즈를 마친다. 간만에 불타오르며 했다.


엔딩 본 날 - 2017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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