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5

슈퍼패미컴 의사 UFO

슈퍼패미컴이 전성기를 맞던 시절, 메가드라이브를 처분하고 슈퍼패미컴을 샀지만, 팩 가격이 장난 아니어서 군침만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 인기 있는 게임의 경우는 거의 7~8만원까지 올라갔으니, 그 당시 물가를 감안하면 살인적인 가격이었다.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스트리트파이터2> 롬팩의 경우는 처음 국내에 나왔을 때 용산에서 10만원에 팔기도 했다.

돈 때문에 게임을 많이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PC통신에서 UFO라는 장비를 알게 되었다. UFO는 슈퍼패미컴 롬팩 끼는 곳에 합체시켜서 쓸 수 있는 백업장치였는데, 롬팩 내용을 플로피디스크로 복사한 뒤, 디스켓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놀라운 장비였다. 자주 가던 안양지하상가 게임점에서 이것을 입수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큰맘 먹고 UFO를 질렀다. 가격은 17만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은 슈퍼패미컴 본체 1대 사고 게임도 한 두 개 살 수 있는 비싼 가격으로 기억한다.


UFO도 하이퍼, 패왕, 가마스 등 여러 가지 모델이 존재했는데, 내가 산 것은 초기모델로 16메가 짜리 UFO였다. 따라서 16메가비트(=2메가바이트)가 넘어가는 롬팩들은 복사가 되지 않았다. 16메가비트 이하 게임이라도 몇몇 게임은 돌아가지 않았다. 당시 가장 하고 싶었던 RPG인 <파이날 판타지5>가 실행이 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롬팩을 많이 가진 친구가 있었다면 빌려서 디스켓에 저장했을 텐데, 주위에는 그런 친구가 없어서 결국 게임점에서 디스켓 한 장 당 5천원을 주고 복사했던 기억이 난다. 가게 주인 아저씨는 불법기기라서 혹시 단속에 걸리지 않을까 주위 눈치를 보면서 복사를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보통 12메가 롬팩이 디스켓 한 장에 들어가니까 16메가 롬팩들은 두 장이 필요했다. 나중에는 PC통신 자료실에 친절하게 게임 파일들을 올려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통신비 이외에는 돈이 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슈퍼패미컴 게임들을 굉장히 많이 해봤는데, <드래곤 퀘스트5>도 UFO로 엔딩을 봤다.

UFO는 롬팩과 견주면 몇 가지 장단점이 있었다. 우선은 디스켓으로 게임을 하려면 디스켓 내용을 UFO의 메모리 안에 로딩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따라서 1분 정도였나 꽤 기다린 다음에 게임이 실행이 되었다. 두 장인 경우는 중간에 갈아줘야 하니까 더 귀찮았다. 또한 디스켓이라서 뻑이 나거나 로딩중 에러가 나는 경우도 있었고, 3~4시간 정도하면 기기가 굉장히 뜨거워져서 게임이 가끔 다운되기도 했다. 그래서 디스켓을 UFO 안에 넣은 채로 플레이하면 디스켓도 뜨거워져서 데이터가 파괴되기도 했다. 요즘 기술 같으면 분명 쿨러까지 장착해서 만들었으리라.

하지만 롬팩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는 게 UFO였다. 한글패치를 적용한 파일을 UFO에 돌리면 한글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즐겼던 당시에는 RPG게임을 100% 한글화한 경우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코나미의 <실황월드사커2 파이팅일레븐>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 이름을 모두 한글 실명으로 만든 파일이 있었기 때문에 무척 좋았다. 그리고 디스켓에 저장된 세이브 파일을 HE 같은 DOS용 에디터로 건드리면 데이터조작이 가능했다. 그래서 RPG게임의 경우에는 레벨을 처음부터 99로 만들어서 하기도 했다.


문제는 게임을 쉽게 구해서 하다보니 한 게임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전에는 몇 달 동안 돈을 모아서 힘들게 롬팩을 샀기 때문에, 재미가 있든 없든 꽤 오래 즐겼는데, UFO를 사고 나서는 조금만 재미없으면 다른 게임을 집어들었다. 그것이 이른바 <게임불감증>이었다.

결국 그것이 슈퍼패미컴+UFO를 PC엔진DUO로 바꾸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결국 자금압박&새로운 SFC게임들의 유혹 때문에 몇 달만에 슈퍼패미컴+UFO로 다시 교환했는데, 이때 손에 넣은 UFO는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기종으로 24메가 롬팩까지 실행할 수 있었다. 또 전주인이 게임 디스켓도 함께 잔뜩 보내줘서 게임을 원없이 할 수 있었다.


그때도 UFO는 완전치 않아서 <에스트폴리스전기2 일본어판>이 실행되지 않았고, <캡틴츠바사5>의 경우는 한 게임 끝나면 세이브가 날라가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UFO 안의 백업배터리가 다 되어서 세이브파일을 살리려면 반드시 1초 안에 전원을 껐다 킨 다음에 디스켓에 저장해야 했다. 1초가 넘어가면 세이브는 사라져버렸다. 사실 UFO를 뜯어서 백업배터리도 바꾸고, 메모리도 늘리고 싶었지만, 정교한 납땜질이 필요해서 포기했다.

슈퍼패미컴이 서서히 지고, PC게임을 비롯해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새턴 같은 차세대기들이 뜨는 시절이 되자, 슈퍼패미컴과 UFO는 내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결정적으로 PC에서 돌아가는 슈퍼패미컴 에뮬레이터가 나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용량 문제로 UFO에서 돌아가지 않았던 <로맨싱사가3>가 PC에서 거의 완벽하게 실행되는 것을 보고, 나는 슈퍼패미컴과 UFO를 PC통신 장터에 내놓기로 했다.


단돈 9만원에 슈퍼패미컴과 UFO를 떠나보낸 난 그렇게 16비트 게임기 인생을 정리했다.

댓글 6개:

  1. 10여년 전에 UFO 기기 를 침만 흘렸던 기역이 나내요 ^^ ;;;

    그때 주인이 롬만 모아논 씨디 2장을 가지고 있었더랬지요 =.= ;;;

    요즘은 공유 싸이트 발달로 롬같은건 mame 말곤 거의다

    풀롬셋으로 가춰놓구 있지만

    팩 만큼은 안하게 되내요 ^^;;

    (마리오1탄을 팩으로 즐겼다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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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와~ 레어다~~ 대단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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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와 저도 옛날 생각나네요.. 한 13년정도 된거 같네요. 저도 UFO를 우연히 구하게 되서 그당시 애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ㅎ_ ㅎ;;
    저도 재믹스-패미콤-슈퍼패미콤-메가드라이브-PC엔진-네오지오-네오지오CD-새턴-드케-플스.. 추억이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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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도 16메가 버전이었습니다. UFO PRO6라는 모델이었는데, 소위 HIROM 방식의 게임들은 실행이 불가능했었습니다. SFC 초창기 게임들은 실행이 가능했지만, 어느 시점 이후에는 무용지물이었지요.

    그래도, 어린시절의 한 단편이라서 지금도 고향집에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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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PRO6이란 모델도 있었군요. 누가 만들었는지 참 대단한 물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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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글 잘 봤습니다.
    예전에 중학교 재학시 SFC유저였는데 당시 UFO를 구할려고 바둥댔던 기억나네요.
    결국 UFO의 높은 가격으로 포기하고 2년뒤에 PS로 넘어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아 당시 비자금 조성에 얼마나 많은 문제집과 학원비가 희생되었는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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