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7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SFC


슈퍼로봇대전을 처음 본 것은 <게임뉴스>라는 잡지의 컬럼에 살짝 나온 게임화면과 한두줄짜리 소개였다. 그건 최초의 슈퍼로봇대전이었는데, 게임보이용이라 그래픽은 형편없었지만, 마징가Z, 건담 등 내가 좋아하던 로보트들이 총출동한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당시 게임보이도 없었고, 국내에선 그 게임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슈퍼패미콤용으로 <제3차 슈퍼로봇대전>이 출시되었고, 각 게임잡지마다 요란한 분석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슈퍼패미콤이 없어서 군침만 흘리다가 나중에 슈퍼패미콤과 복사머신 UFO가 생기고 나서 플로피디스크로 구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슈퍼패미콤보다 PC엔진 DUO를 더 가지고 싶었기 때문에, PC통신 장터에다 DUO와 슈퍼패미콤+UFO를 맞교환하고 싶다고 광고를 내었고, 곧 슈퍼패미콤을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교환하기 전에 지금까지 못해본 게임을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고른 게임이 <제3차 슈퍼로봇대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미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들에 싫증이 나 있던 터라 별로 기대를 안 하고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한판 한판 깨면서도 시큰둥했는데, 콤바트라V가 합체하는 장면에서 놀라자빠지고 말았다. 합체장면이 만화영화 같은 풀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되었던 것이다. 지금 보면 참 유치한 그래픽이지만, 당시 슈패 게임에선 꽤 신선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제3차 슈퍼로봇대전>은 전투장면이 애니메이션과 원작의 주제곡, 열혈대사들로 구성된 점이 좋았고, 무엇보다 원작의 스토리가 절묘하게 녹아들어 향수를 자극했다. 그래서 당시 밤새도록 그 많은 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엔딩을 보았다.


3차의 인기에 힘입어 게임보이용으로 <제2차 슈퍼로봇대전>이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패미콤판보다 향상된 시스템과 추가된 스토리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나는 GB에뮬로 끝을 봤는데, 만일 지금 다시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플스판을 권장한다.


몇 달 뒤, DUO를 다시 슈퍼패미콤+UFO와 교환한 다음, 내 손에 들어왔던 게임은 바로 <제4차 슈퍼로봇대전>이었다. 전편이 인기를 많이 끌어서 게이머들한테도 주목의 대상이었는데, 전편보다 향상된 시스템과 새로운 로보트들을 보여주지만, 세간의 평가는 난이도나 밸런스면에서 전편보다 못하다는 게 대세였다.


그 뒤로 한 것이 3차와 4차의 중간 이야기를 다룬 <슈퍼로봇대전EX>였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즐겼던 슈퍼로봇대전이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점은 슈우 시나리오를 고를 수 있다는 점과 중간의 선택에 따라 다른 시나리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선택에 따라서는 이 게임 최강의 적 네오그랑존과 붙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악의 매력이라고 해야 하나, 슈우의 네오그랑존를 직접 몰고 다니며 적들을 몰살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물론 네오그랑존을 몰려면 타이틀화면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슈퍼로봇대전EX>는 등장하는 캐릭터가 적긴 했지만, 시나리오가 무척 잘 짜여있어서 완성도는 높았던 게임이다. 나중에 플스판으로 다시 해보기도 했다.

<마장기신>은 훗날 에뮬로 해봤는데, <슈퍼로봇대전EX>의 뒷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뒤로 나온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들은 1~4차, EX, 마장기신 스토리를 완전히 리셋해버리고, 새 게임이 되고 말아서 아쉬움을 준다. 물론 원작의 명장면 시나리오를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지만, 나 같이 처음부터 즐겼던 사람한테는 '왜 5차는 없는 걸까?'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지금의 슈퍼로봇대전 시리즈가 있는 것은 <제3차 슈퍼로봇대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댓글 4개:

  1. 저도 슈로대는 SFC + UFO 조합을 통해서 3차부터 접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큰 기대는 안했던 소프트였는데, 타이틀 사운드부터가 PCM 음원을 사용하는 것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뭐랄까 SFC시절에도 게임 잘만드는 제작사와 못만드는 제작사와 격차가 큰 편이라서 타이틀 나오는 것까지만 봐도 뭔가 범상치 않은 게임이다...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설의 오우거 배틀이나 액트 레이저같은 게임이 개인적으로는 타이틀부터 뭔가 다르다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지요.

    여튼, 저도 중간에 합체 이벤트랄지, 원작의 사운드 멜로디에 반해서 게임 했던 기억이 아련하네요. 아마도 1993년 여름방학이었을겁니다. 보충수업기간 끝나고, 개학전까지 불타올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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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료님도 UFO 쓰셨군요. ^^ UFO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죠. 기억나는 게 하이퍼하고 패왕이었는데, 제가 처음 가진 건 하이퍼3.0 16메가 버전이라 16메가 이상 되는 게임이 되지 않았죠. 16메가 이하라도 특정 게임이 실행이 안 된다든가 세이브가 날라가는 문제도 있었구요. 발열이 상당해서 하루 종일 하면 다운이 되기도 했는데, 왜 요즘 PC처럼 쿨러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 재미있는 물건이었어요. 플로피디스크가 아닌 SD카드를 사용한 롬팩 크기의 UFO를 누군가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반프레스트 타이틀을 달고 나온 게임은 어딘가 완성도가 떨어졌는데, 이 3차는 확실히 뭔가 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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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트랙백보고 찾아왔습니다. ^^ 여기 아주 좋은곳이로군요.

    저도 한때 패왕을 썼었습니다. 그때가 그리워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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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이퍼를 쓰면서도 패왕을 부러워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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