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13

RPG와 나

게임(당시에는 '오락'이라고 했다)이라면 슈팅게임이나 액션게임처럼 캐릭터를 움직여서 쏘고 부수고 점프하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 컴퓨터학습에서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울티마나 위저드리 같은 롤플레잉(이하 RPG) 게임은 나한테 굉장히 신비롭고 생소한 세계였다.
당시 애플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네 집에 놀러가 2400AD이라는 RPG를 해 본 적이 있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진행이 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게임이었다.


당시 게임이라면 깨고 부수고 하다 보면 보스가 나오고 한 판이 끝나는 식이 많았는데, 이 게임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말도 걸고, 끝도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나 게임의 목적이 뭔지는 당췌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런 알 수 없는 점이 신비롭게 느껴졌고, 게임의 등장인물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은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러다 MSX판 블랙오닉스를 테이프로 구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RPG와 제대로 된 첫 만남이었다. 사실 별다른 스토리도 없고, 그래픽도 초라하기 그지 없고, 배경음도 없이 삑삑 소리가 효과음의 전부인 게임이었지만, 이상하게 빠져 들어서 지도까지 손수 그려 가면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패미콤을 산 뒤에도 RPG 쪽에 관심은 있었지만, 일본어를 전혀 몰랐던 관계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비싼 돈 주고 사는 게임팩인데, 괜히 샀다가 진행도 못하면 낭패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큰맘 먹고 드래곤퀘스트4를 용산에 구해 왔는데, 일본어 사전까지 보면서 대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엄청난 대사량에 좌절하고 한 달만에 교환하고 말았다.


게임잡지가 생기고, 어느 정도 지나자 RPG게임도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게임챔프에서 별책부록으로 "나이트건담이야기3 공략본"을 제공하자, 나는 이때다 싶어 나이트건담이야기3를 구해 왔다.


그 당시 나이트건담이야기3의 공략본은 일본어를 몰라도 진행이 가능할 정도로 친절해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책이었다. 또, 원래 SD건담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더더욱 기뻐하며 진행했다.

결국 이 공략본 덕분에 엔딩을 볼 수 있었고 이것이 난생처음 엔딩을 본 RPG였다. 그 뒤로는 자신이 생겨서 RPG에 자신있게 도전하게 되었고, 일본어를 배운 뒤로는 더더욱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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