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6

북두의 권 - 신 세기말 구세주 전설

1989년에 세가가 메가드라이브용으로 내놓은 액션 게임. 당시 한국에선 일본 만화 붐이었는데, <드래곤볼>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 있던 만화가 <북두의 권>(우리나라엔 처음에 '북두신권'으로 출간)이었다. 그 만화의 2부 내용을 게임화했다.

메가드라이브로 나온 <북두의 권>은 원작의 잔인함을 그대로 살려서 켄시로가 치면 적이 피를 뿌리며 터졌다. 그 묘사에 당시 충격을 받았다. 용산 게임 가게에서 어떤 부모는 이 롬팩을 들고 와선 "애들에게 이렇게 잔인한 게임을 팔아도 되는 겁니까" 하고 항의하기도 했단다. 우리나라는 정식 발매가 아니어서 일본 것이 그대로 들어왔으니까. 해외에선 <라스트 배틀>이란 제목으로 바뀌고 적이 터져 죽는 연출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게임 자체는 단순했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잘 재현해서 난 재미나게 즐겼다. 오락실에도 설치되어 있길래 나는 집에서 열심히 연습한 뒤, 오락실에서 도전했다. 꼬마애가 옆에서 자기가 좀 안다고 조언해줬다. "거기 가면 죽어요. 그 왕 못 이겨요"라고 하길래 내가 보란 듯이 보스 이기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닥치고 내 플레이 감상.

결국 여유로 끝판왕까지 깨고 오락실에서 엔딩을 봤다. 엔딩 화면 나오자 오락실에 있던 애들이 신기해하며 다 몰려들어 구경했다. 영웅이 된 기분 만끽.

그때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레트로아크로 다시 해봤다. 당시에도 게임이 되게 단순하다고 느꼈다. 졸개들의 경우, <더블 드래곤>처럼 적을 여러 번 패서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켄시로의 주먹이나 발 공격 한 방이면 다 터져 죽었다. 적을 죽이면 파워 게이지가 올라가고 다 채워지면 윗옷이 찢기며 상반신 근육이 드러난다.

<슈퍼 마리오3>처럼 맵 이동이 가능한데, 특정 지역을 깨야 보스를 만나는 경우가 있어서 결국 다 가봐야 한다. 스테이지 중간중간엔 화살, 도끼, 창, 돌덩이 등이 날아오는 던전이 있다. 보통 이 던전들이 보스전으로 가는 열쇠다.

켄시로의 기술과 적의 패턴이 단순해서 지루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이 게임의 매력은 보스전의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원작의 묵직함과 카리스마가 보스전에 담겨 있다. 지금 에뮬로 다시 해보니 타격감도 부족하고 적 보스의 기술이 다양하지도 않았지만, 그땐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일격을 선 자세로 날려야 보스의 숨통을 끊을 수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켄시로가 말을 타고 가는 엔딩을 보니 오락실에서 깼을 때가 떠오른다. 오락실에서 난생처음 끝까지 가본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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