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1

서풍의 광시곡 PS2판


서풍의 광시곡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한 스토리와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어서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PC판으로 도전했지만, 전투가 시간이 너무 걸려서 중도 포기했다. 그리고 몇 년 지난 뒤,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어서 시작했다. 이번엔 PC판이 아닌 플레이스테이션2 일본판으로 했다. PC 국내판의 일러스트가 훨씬 마음에 들긴 했지만, 랜덤 전투 없애는 치트 쓰려면 플스2판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일러스트는 원작이 훨씬 나아 보인다. 일본인 취향엔 어떨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원작의 일러스트가 비장해서 좋다. 플스2 일본판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바꿔버렸다. 그것 말고는 일본판이 더 좋다. 걸음 속도도 빨라졌고 시스템이 쾌적해졌다. 그래도 전투는 랜덤에 턴제로 이동하는 방식이라 시간이 너무 걸려서 치트를 썼다. 레벨99, 전투 없음으로 하니 뺑뺑이 돌리는 미션이 수월했다. 그냥 했으면 너무 짜증나서 또 중도포기했을 것 같다.


초반 스토리는 마음에 들었다. 귀족이었다가 모함으로 수용소에 갇히는 주인공.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린다. 드래곤 퀘스트5의 주인공이 생각나기도 했다. 주인공은 악마성 월하의 야상곡에 나오는 알카드와 비슷하게 생겼다. 긴 흰 머리에 검은 옷을 입으니 더욱 더 비슷하다.


흔한 RPG의 주인공과 달리 정의감이 아니라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점이 좋았다. 왕도 RPG에선 주인공이 왜 목숨을 걸고 악당들과 싸우는지 공감이 안 될 때가 많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에겐 감정이입이 되었다. 누구라도 저런 일을 겪으면 저럴 수 있다.


여주인공 메르세데스의 모습은 국내판이 청순해서 좋았다. 일본판은 귀족 느낌은 물씬 났지만, 너무 화려해서 얄미웠다. 주인공과 메르세데스가 피아노 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듣기 좋은 연주다.


국내 소프트맥스에서 만든 게임을 일본 팔콤사가 컨버전한 예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원작과 비교해보면 기본 필드 그래픽이나 배경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일러스트와 시스템, 자잘한 대사만 바꾼 것 같다. 그래픽면에선 리메이크라기보다는 컨버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판에서 좀 조잡해 보이는 부분이 일본판에도 남아 있다. 비슷해 보이는 배경과 미로라든가 디테일이라든가 그 시대 일본의 대작RPG들과 견주면 어설픈 부분이 살짝 있다. 그래도 당시 국내 수준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동영상은 한국판이 그대로 들어갔다. 일본판인데 몇몇 동영상에 있는 한글이 그대로 보인다. 일본 게이머가 봤을 땐 어떤 느낌이었을까?


전반부는 긴박하고 다음이 궁금했는데, 후반부에 심부름꾼 일로 여기저기 맴돌게 해서 늘어지는 부분이 있다. 워프 같은 아이템이 없어서 모든 곳을 일일이 걸어서 가야 하는 점도 성가셨다.

그리고 등장하는 여인들 중 셋이나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끌리게 되는 과정은 보여주지 않아서 느닷없는 감은 있었다.

이게 끝판왕이겠지 하는 부분에서 안 끝나고 계속 보스전이 이어진다. 진엔딩 루트에선 주인공이 죽고 나서도 전투가 있다. 진엔딩은 비장하고 좋았다. 그리고 최악의 엔딩이라 할 수 있는 복수귀 엔딩도 봤는데, 그건 RPG에서 보기 드문 베드엔딩이었다.

어렵고 성가신 부분이 많긴 했지만, 스토리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엔딩 본 날 - 2017년 7월 21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