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9

라스트 바이블3

1995년 MIT가 개발하고 아틀라스가 발매한 여신전생의 외전. 악마를 동료로 하거나 합체시킬 수 있는 여신전생의 시스템을 가져왔지만, 나머지 부분은 드래곤 퀘스트와 비슷한 일반 RPG 방식이다. 여신전생 본작의 3D 던전 탐색이 없어서 개인적으론 즐기기 편했다.

1편과 2편은 게임기어, 게임보이 같은 휴대용 게임기로 나왔는데, 3편은 슈퍼패미컴으로 나와서 스케일이 커졌다. 시간순으로 스토리가 이어진다. 3편은 특히 2편과 관련이 깊지만, 전작을 안 해봤어도 스토리 이해에 큰 지장은 없다.

에너지원인 라피스 광석 확보를 위해 전 세계가 전쟁을 한다. 이 전쟁은 폴리스의 벤쇼하가 영구 기관 페레스트를 발명하면서 종결된다. 인류에게 그린 에너지를 무한정 공급하는 페레스트 덕에 세상은 평화를 되찾고 전후 15년이 흐른다.

전쟁에서 쉐도우 워커 대원으로 활약했던 그렌은 옛 전우 알렉을 15년 만에 만나러 가려고 했지만, 알렉이 전쟁 후유증으로 아내와 자식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었다는 통보를 받고 충격에 빠진다. 한편, 그렌의 아들 시엘은 친구들과 마법 학교에 다니며 가이아(초능력, 마법에 해당) 능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상공에 폴리스의 전함이 나타나고, 그렌의 목숨을 노리는데...

통치 조직인 에스트가 15년 전 전쟁에서 활약한 쉐도우 워커 부대원들을 왜 죽이려 하는지, 영구 기관 페레스트의 수상함 등이 궁금증을 자아내서 중반부까지 스토리가 흥미롭게 흘러간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죽음이 묘사되는 등, 내용이 가볍지가 않다.

일본 RPG들은 게임 시작 직후 주인공이 살던 마을을 금세 떠나는 경우가 흔한데, 이 게임은 비교적 긴 시간을 첫 마을에서 지낸다. 마법 학교로 매일 통학하고 집에서 가족끼리 밥 먹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 점이 전형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슈퍼패미컴 말기에 나온 게임인 만큼 그래픽은 깔끔한 편이다. 음악도 다양하진 않았지만, 듣기 좋았다. 전체적으로 만듦새가 괜찮았다.

인간과 마수가 공존하는 세계관이고, 전투 중에 대화로 상대 몬스터를 우리 편으로 포섭할 수 있다. 대화에선 몬스터의 경계를 풀기 위한 선택문이 나오는데, 정답은 없고, 주인공의 능력치와 운이 중요하다. 포섭에 성공하면 동료로 데리며 성장시킬 수 있고, 다른 몬스터와 합체시켜서 새로운 몬스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이 게임의 재밌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높은 적 조우율은 단점이다. 던전의 미로들은 단순한 편인데, 조우율이 높아서 시간을 꽤 잡아먹는다. 그래서 서양 능력자는 조우율 대폭 낮추는 패치도 만들었다.

중반부에 워프 마법을 얻지만, 워프로 갈 수 없는 곳이 많아서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지도라도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힌트가 부족해서 공략 안 보면 헤맬 곳도 다수 있다. 건물 내부 구조가 똑같은 곳이 많아서 더 헷갈렸다.

하늘을 나는 방주를 얻은 뒤엔 자유도가 높아진다. 공략 순서를 어느 정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숨은 아이템, 숨은 몬스터를 찾아다닐 수 있다.

스토리는 중반부까지 흥미로웠지만, 사건도 인물도 많아서 산만한 느낌을 받았다. 등장인물들은 개성적이었지만, 몇몇 인물들의 동기에는 공감이 별로 가지 않았다. 중반 이후 좀 늘어져서 내가 텍스트를 유심히 보지 않은 탓도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어 단어도 나온다. 주인공 가족이 무술 대회에 나가는데, 남동생이 팀 이름을 '트리오 더 비빔밥(ビビッパ)'이라고 등록한 뒤 도망간다. 진행자가 '비빔밥'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지만, 답을 못 하는 주인공의 아버지.

우리나라에서 해본 사람이 많지 않은 까닭은 게임보이 시절 전작들을 해본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느닷없이 슈퍼패미컴으로 나온 점, 높은 조우율, 매력적이지 않은 패키지 일러스트, 슈퍼패미컴에 관심이 떨어진 시기에 발매한 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걸작으로 올리기엔 모자라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완성도가 높은 편이라 수작으로 평할 순 있겠다.


엔딩 본 날 - 2020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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