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7

라디아타 스토리즈

<스타오션>, <발키리 프로파일> 시리즈로 유명한 트라이에이스가 개발하고 스퀘어에닉스가 2005년 발매한 플레이스테이션2용 액션 RPG.
이 게임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일본 웹에 뒷맛이 씁쓸한 게임으로 알려졌기에 시작했다.


옛날 게임인데도 16:9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해서 비율 왜곡 없이 양쪽 블랙바를 화면이 다 채운다. 위아래 블랙바는 생기지만, 이것도 치트 파일을 쓰면 없앨 수 있다. 덕분에 시원한 와이드 스크린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에뮬 PCSX2로 고해상도 실행했을 때, 캐릭터에 잔상이 생기는 문제가 있었지만, 고급 옵션을 만져서 해결했다. PCSX2의 내부해상도를 3x Native(~1080p)로 올려서 PS2 게임을 한 건 처음이었는데, LCD 모니터에서 원본 해상도(480p)보다 훨씬 또렷한 화면을 보여준다. HD 리마스터된 신작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는 라디아타 왕국을 중심으로 인간계와 요정계(엘프, 드워프, 오크, 고블린 등)의 갈등을 그린다. 16세 소년이 주인공이고 초반 분위기가 코믹하고 밝다. 주인공 잭 럿셀은 유명한 기사의 아들이지만, 실력은 미숙한 기사 지망생이다. 왕궁 기사단 테스트에 도전한 잭은 어릴 때부터 검술 수업을 받아온 귀족 소녀 리드리에게 간단히 패배한다. 하지만, 잭이 전설의 기사 혈통이라는 점을 눈여겨본 고위 간부의 결정으로 기사단에 입단할 수 있게 된다. 잭의 기대와 달리 기사단은 자신과 리드리, 단장 간츠 단 3명뿐이었고, 금수저 리드리의 등용문을 위한 부대였다.


주인공 잭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의욕이 넘치지만, 어려서 그런지 예의를 모르고 눈치코치가 없다. 무개념 신입사원 같은 모습이라 재미있다. 그를 한심하게 보는 귀족의 딸 리드리는 냉정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잭과 티격태격한다.
이 둘을 이끄는 단장 간츠는 마음이 약하고 우유부단하다. 믿음직한 기사단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있다. 후에 기사단이 해산되는 바람에 간츠가 길드에 재취업하려다 낙방하는데, 돌아서는 뒷모습이 짠했다.


첫 임무로 드워프의 짐을 호위하게 된 주인공 일행을 보고 드워프가 기사단 질이 떨어졌다며 못 미더워하자 잭이 발끈하는데, 기사단장 간츠가 "신뢰는 차근차근 쌓아가는 법입니다. 전임자들은 많은 실적을 쌓아왔지만, 우린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부터 실적을 쌓아나가며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라고 차분히 설득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능력은 없지만, 마음이 착해서 호감이 가는 리더였다.


스토리엔 일본 왕도 RPG의 클리세가 거의 없어서 신선했다. 허세, 과도한 비장함, 근거 없는 정의감이 안 보인다. 임무나 이벤트의 결말은 좋은 쪽보단 웃프거나 씁쓸한 쪽이 많다. 그래픽만 보면 밝은 소년소녀물 같은데, 이건 어른들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전투는 필드에서 돌아다니는 적에 닿으면 펼쳐지는 방식인데, 필드가 좁은 길로 이루어져 있어서 적이 길을 막고 있으면 피하기가 쉽지 않다. 마을과 필드가 넓어서 꽤 오래 걸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돼지 조각상 있는 곳끼리 워프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뺑뺑이 돌리는 임무가 많아서 시간이 걸린다. 처음엔 그렇다 치고 중후반부부턴 워프 마법이나 아이템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게임 진행은 어느 정도 자유도가 있다. 본편 스토리는 후반부 갈림길 말고는 거의 일직선이지만, 다양한 서브 스토리는 내키는 대로 즐길 수 있다. 얻을 수 있는 동료가 무려 177명이나 되는데, 얻는 조건이 까다로운 동료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각자 생활 패턴에 맞춰 왕국 안을 돌아다니며 특정 시간대에 말을 걸면 이벤트가 일어난다. 그 시간대를 공략 없이 알기란 매우 어렵다.


중후반부엔 요정편에 서서 싸우느냐, 인간편에 서서 싸우냐로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다. 요정편을 선택하면 그때까지 고생해서 모은 인간 동료는 쓸 수 없게 된다. 반대의 경우는 요정 동료를 쓸 수 없게 된다.


밝고 웃기는 처음 분위기와 달리 후반부 내용은 심각하고 엔딩도 해피가 아니다. 그나마 히로인 살릴 수 있는 요정편이 낫지 않나 싶다. 평범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론 신선하게 느꼈지만, 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지 않았나 싶다. 엔딩을 봐도 해소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갸우뚱한 부분은 있다. 뒷맛이 씁쓸하다는 일본 네티즌들의 평이 맞는 것 같다.


넓은 필드를 돌아다는 게 꽤 피곤해서 요정편만 깨고 인간편은 유튜브로 엔딩을 감상했다. 인간편은 더 슬픈 결말이다. 만듦새는 걸작,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수작에 들어가는 RPG라고 생각한다.


엔딩 본 날 - 2020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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