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0

스타 오션3 디렉터스컷


빚 좋은 개살구 스타 오션4에 실망한 뒤, 1~2편은 그냥 뛰어넘기로 했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3편은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PCSX2로 실행해봤다. 그래픽이야 4편과 견줄 수 없이 초라하고 캐릭터 모델링도 목각인형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10분 해보니 생각보다 연출이나 초반 전개가 좋아서 계속 하게 되었다.
엔딩까지 보고 결론을 말하자면 3편은 4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을 빼면 음악, 성우 연기, 시나리오, 몰입감 등 모든 면에서 나았다.


스타 오션4는 2096년(우주력 10년)의 이야기였고, 3편은 무려 762년 뒤인 2858년(우주력 772년)이 무대다(그 사이의 이야기는 1→2→5편이 메운다).
4편은 미개혹성보호조약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3편은 그 미개혹성보호조약 때문에 주인공이 행동을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4편과 큰 연관성이라면 그것 하나다.
여러 별을 전전했던 4편과 달리 3편은 유럽 중세 시대 문명 수준의 별 두 곳이 주무대다. 그래서 중반부는 일반 판타지 RPG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당시 제작자 인터뷰 보면 100% SF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팔려서 판타지 요소를 넣었다고 한다.


4편은 음악이 밋밋했지만, 3편은 훌륭하다. 주제곡 <나는 법을 잊은 작은 새>는 일본의 유명 가수 MISIA가 불렀다. 다른 배경음도 좋은 편이다. 옛날 게임이지만 와이드 비율을 지원해서 TV 화면 양옆을 꽉 채울 수 있었다.


후반부에 크나큰 반전이 있다. 모든 것이 결국 새장 속의 새라고 해야 하나... 그 반전은 스타오션 1~2편의 감동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 정도라서 2003년 당시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이런 반전을 좋아한다. 보통의 일본 RPG에선 자주 볼 수 없는 전개다. 막장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1~2편에 대한 애착이 깊어서가 아닐까 싶다. 난 1~2편을 안 해서 3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전에 한 게 시리즈 최악이었던 4편이라서 좋게 봤다.


후반부에 나오는 FD세계는 과학기술이 뛰어나 모든 인간들이 노동 없이 놀고 지낸다. 그러나 무료하고 따분한 나머지 노동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 하고, 서로 일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그런 환경에선 나 같으면 기쁘게 놀기만 할 텐데 ㅎㅎㅎ


엔딩은 실제론 모든 것이 사라지는 베드엔딩인데 등장인물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해피엔딩 같은 분위기다. 이 부분은 어거지처럼 느껴졌지만, 게이머의 해석에 맡기는 것 같다. 존속한 세계는 진짜로 독립한 세계일 수도 있고, 영혼들이 만들어낸 사후세계일 수도 있다.

3편 엔딩을 보면 그 이후 시간대 이야기로는 후속작을 만들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4~5편은 3편보다 앞선 시간대 이야기다. 아래는 5편 프로듀서 슈이치의 말.


"1편에서 5편까지의 모든 스타 오션의 세계는 같은 우주입니다. 그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간대에 대해서 5편이 위치한 것은 2편과 3편 사이가 맞습니다. 최근 영국의 철학자 중 한 명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세계가 신적인 존재의 실험장 비슷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주를 계속 일정한 관점으로 보는 것은 신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사실 우리의 소통방식과 아이디어들은 조금 너무 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방식에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가상이 아닌 실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문제를 알고있기 때문에 5편에서는 사람들이 게임 안의 우주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스타 오션3가 보여준 세계관에서 느낀 건,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일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것. 그러니 너무 아둥바둥 또는 너무 심각하게 살 필요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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