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9

드래그 온 드래군 - 꿈도 희망도 없는 충격과 공포의 게임

나이를 먹다 보니 밝은 이야기보다는 어둡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동료들과 힘을 합해 마왕을 무찌르는,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수요가 많겠지만, 주인공이 마음 먹은 대로 일이 너무 잘 풀려서 현실감이 떨어지고 전개가 뻔해서 예측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성공한 사람 아래, 실패한 사람이 더 많고 암울한 이야기들이 다수 있다.
그래서 센 이야기, 즉, 왕도보다는 사도를 더 좋아하는 편인데, <드래그 온 드래곤>은 오래간만에 그런 욕구를 충족해주었다. 이 게임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가혹한 전개를 보여준다. 음악도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개인적으론 꽤 좋게 들었다.
이 게임의 지상전은 삼국무쌍 같은 액션이고, 공중전은 펜저드래곤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레벨업 등 RPG 요소가 추가된 게임이다. 기존 RPG의 반복적인 노가다 전투가 아닌 시원한 액션이라 전투가 지루하지 않았다. 공중전은 드래곤의 위용이 잘 드러나 있다. 다만 공중전의 조작성이나 시점 등은 다소 불편하다.
지상전에서 떼거리로 나오는 제국군 병사들을 보면 어떤 공포가 느껴지기도 한다. 압도적인 제국의 포스라고 해야 하나.
전투에서 등을 다친 주인공은 레드드래곤과 계약을 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주고 대신 드래곤의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알을 출현시키기 위해 봉인을 풀려는 제국군 교주와 맞선다. 주인공이 제국군과 맞서는 건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제국군의 용에게 죽임을 당한 부모의 복수와 봉인을 지닌 여신이자 여동생을 구하기 위함이다.

제국군의 교주는 놀랍게도 여자아이인데, 악신이 강림한 몸이라 목소리가 두 개다. 그 목소리나 동작이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 하나 어린아이인데도 혐오스럽다. 라라라라... 그 웃음소리...
이 교주는 미치광이라서 에반게리온의 인류보완계획 같은 음모를 꾸미고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한다. 말로는 인류에 재생할 기회를 줘서 구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냥 멸망이나 다를 바 없다. 다 죽으니까.

주인공의 과거, 여동생이 여신이 된 이유, 여자아이에게 악신이 강림한 이유, 제국군의 진짜 목적, 세계관 등은 세세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대사 등으로 유추할 뿐. 소설을 읽으면 좀 더 자세히 나온다는데 게임 자체에서 다 보여주지 않아서 불친절한 느낌을 받는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주인공조차 복수심에 가득 차 있고 학살하는 데 쾌감마저 느낀다. 그나마 정상인 같았던 여동생도 친오빠를 남자로서 좋아하고 있다.

엔딩은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엔딩을 본 뒤, 과거 시나리오로 가서 특정 조건을 클리어하면 새로운 시나리오가 생기고 그걸 깨면 새로운 엔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하나도 없다. 데빌맨 엔딩이 생각나는 것도 있고 맨마지막에 남은 엔딩이 제일 허무하다. 대부분이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이다.
분위기나 스토리가 강렬해서 그런지 나름 호평을 받아 이 게임은 3편까지 나왔다. 1편 마지막 엔딩과 조금 관련이 있는 <니어 레플리칸트>라는 외전격 RPG도 나왔다.

재미나게 한 게임이다. 밝고 명랑한 RPG인 그란디아를 하고 난 뒤 해서 그런지 가차없이 우울함의 끝으로 가는 스토리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p.s. PCSX2 에뮬에서 와이드 치트를 쓰면 기존 4:3 화면이 아닌 16:9 화면으로 할 수 있다. 양쪽으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서 전투에서 시야가 더 넓어진다. 다만 동영상은 원래 4:3 비율로 만들어진 거라 살짝 눌린다는 게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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