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3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컴

내가 가졌던 게임기 중 최고로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기를 꼽으라면 닌텐도의 <패미컴>이다. 그때까지 MSX1의 저용량 게임을 주로 즐기던 나에게 패미컴의 다양한 게임들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드래곤볼Z 시리즈>, <록맨3>, <캡틴 츠바사2>, <열혈고교 시리즈>, <닌자용검전>,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SD건담 시리즈>, <슈퍼 마리오3>, <삼국지1> 등이 이때 밤새면서 즐겼던 게임이었다.

세월이 지나 8비트 게임기 시대가 가고 16비트 게임기 시대가 왔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세가의 <메가드라이브>였다. 확실히 그래픽은 패미컴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지만, 게임이 다양하지 못하고 비싸서 초반에는 우리나라에 쉽게 보급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메가드라이브 게임이 늘고, 가격도 10만원 초반으로 떨어지자 동생과 나는 가진 돈을 합쳐서 메가드라이브와 조이스틱 그리고 <에어로 블래스터>, <헤어초크 츠바이>를 샀다.


패미콤과는 차원이 다른 그래픽과 음악이 나를 즐겁게 했다.

메가드라이브에서 재밌게 즐겼던 게임을 꼽으라면, <헤어초크 츠바이>, <삼국지2>, <슈퍼대전략>, <레슬볼>, <샤이닝포스>, <썬더포스3>, <엘레멘탈 마스터>, <YS3> 등이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장 사고 싶었던 게임기는 메가드라이브가 아닌 슈퍼패미컴이었다. 왜냐하면 패미컴 시절 즐겼던 대작 게임들의 속편이 슈퍼패미컴으로 속속 나왔고, 본체의 디자인이나 성능도 메가드라이브보다 앞서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드래곤볼Z 초사이야인 전설>이 슈퍼패미컴에 있다는 점이 너무나 끌렸다. 그러나 20만원에 육박하는 본체 가격과 복제팩이 없어 비싼 정품롬팩 가격은 학생인 나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슈퍼패미컴 게임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메가드라이브 게임은 그 수가 슈퍼패미컴의 절반도 되지 못했다. 또한 닌텐도의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게임이 슈퍼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 양쪽에 나와도 슈퍼패미컴판에는 '슈퍼'가 붙어서 나왔기 대문에 뭔가 더 좋아보였다(게임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RPG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할만한 RPG가 별로 나오지 않는 메가드라이브는 20% 정도 부족한 게임기였다. 스퀘어, 에닉스, 캡콤, 코나미 같은 제작사들도 슈퍼패미컴에만 좋은 게임을 냈다. 메가드라이브에는 세가를 비롯한 몇몇 제작사만이 고군분투하고 있어서 게임 발매수가 딸렸다.


당시 인기 최고였던 <스트리트 파이터2>도 슈퍼패미컴에서 가장 먼저 출시되고 메가드라이브에는 한참 지나서야 나왔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다만 처리속도는 메가드라이브가 더 나았다. 그것은 나중에 슈퍼패미컴으로 <대전략 익스퍼트>를 해보고 알았는데, 컴퓨터의 처리속도가 메가드라이브의 <슈퍼 대전략>에 견주어 현격하게 느렸다. 그래서 메가드라이브에는 빠른 처리속도가 필요한 슈팅이나 엑션게임이 많았다.

요즘 에뮬로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컴 게임을 해보고 느낀 것은 메가드라이브 게임기 자체가 슈퍼패미컴보다 그리 떨어지는 기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색감은 개인적으로 어둡고 어른스러운 메가드라이브 쪽이 마음에 든다. 색감과 분위기가 어두운 편인 <파이널 판타지6>의 경우에는 슈퍼패미컴보다는 메가드라이브에 더 어울리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슈퍼패미컴만큼 게임들이 더 다양하고 나오고, 세가가 스퀘어나 에닉스 둘 중에 하나만 잡았어도 당시의 나한테서 내쳐지지는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게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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