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2

드래곤 나이트 4 윈도우판

드래곤 나이트 시리즈는 엘프사의 간판 RPG로 90년대 유명했습니다. RPG에 질 높은 미소녀 노출 장면을 듬뿍 넣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4편은 1994년 PC98과 X68000용으로 처음 출시되었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가정용 게임기인 슈퍼패미컴, 플레이스테이션, PC-FX로도 순화 이식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1996년 PC98판을 개조한 DOS/V판이 PC용으로 나돌며 알려졌다가 1998년에 정식 한글판이 발매되었습니다. 하지만, 18금 장면은 모조리 삭제되어 원성을 샀죠.

2007년에는 캐릭터와 전투 그래픽을 3D로 바꾸고 음성을 추가한 윈도우판이 나왔습니다. 저는 이 윈도우판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오래 전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게임 컨트롤러를 지원 안 하고 마우스로 조작해야 한다는 점과 조잡한 3D 그래픽 탓에 바로 접은 적이 있습니다.

PC-FX판

이번에도 그 문제 때문에 플스판이나 PC-FX판으로 갈아탈까 망설였습니다. 윈도우판의 조잡한 3D 그래픽보다는 콘솔판의 깔끔한 2D 그래픽이 더 좋아 보였죠. 추가 캐릭터도 있구요. 하지만, 노출 장면이 다 삭제되었다는 점이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초기 원판은 끌리지 않더군요.

결국 불편함을 감수하고 윈도우판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글 윈도우11에서도 별다른 작업 없이 잘 돌아갔습니다. 참고로 이 윈도우판은 원래 새턴판으로 개발되다가 18세 이상 추천 등급이 사라지는 바람에 전환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대신 원판처럼 노출 장면이 무삭제로 들어가 있습니다.

1~3편 주인공 타케루의 아들 카케루가 4편의 주인공입니다. 마계 사천왕 중 한 명인 루시폰이 검은 안개를 이용해 사람들을 돌로 만들고 군대로 왕국을 침공합니다. 이에 타케루는 자기 아들 카케루를 보냅니다. 아들이 14살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모진 부모네요.

카케루를 좋아하는 소꿉친구 나타샤, 용기사의 아들 세일, 갑자기 나타난 검사 에토와 함께 루시폰을 토벌하러 가는 이야기.

마우스로 캐릭터를 움직여야 하는 부분은 처음에 불편했지만, 서서히 적응되더군요. 구린 3D 그래픽도 시간 지나니 그럭저럭 봐줄만했습니다. 노출 장면 등 도트 그래픽은 미려해서 4편 이식작 중 최고 수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임 구성은 샤이닝 포스나 파이어 엠블럼과 비슷합니다. 마을에서 대화하고 18금 장면을 본 뒤, 다음 마을을 향할 때 턴제 전투를 합니다. 이게 계속 되풀이됩니다. 다른 RPG처럼 세상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끝판왕이 있는 성을 향해 한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턴제 전투는 원작이나 콘솔판보다 쉽다고 하더군요. 정말 쉬웠습니다. 큰 스트레스 없이 진행했네요. 전투 속도도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니라서 끝까지 전투 애니메이션 다 켜고 했습니다. 적은 비슷한 종류가 계속 나와서 단조롭고,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 완성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끝판왕에게 가는 동안, 여러 여인을 마을 훈련소에서 아군으로 영입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상 무조건 영입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선택에 따라 영입 여부가 갈리는 인물도 있습니다. 남자도 있는데, 노출 장면 보는 게 목적이면, 여인을 영입하는 게 좋습니다. 엄청 밝히는 주인공 덕에 이벤트로 그렇고 그런 장면을 다수 볼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1회차와 2회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회차까지는 꽤 지루했습니다. 큰 사건도 별로 없고 반복되는 전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회차 마지막에 주인공이 교체(?)되고 2회차를 다른 시점으로 보게 되면서 1회차의 의문이 하나둘 풀려나가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2회차에서 이미 클리어했던 곳을 다시 해야 한다는 점이 좀 부담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2회차 구성은 기존 소스 재활용해서 게임의 볼륨을 두 배로 늘리는 방법인데, 얄밉긴 하지만, 영리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1회차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에토를 저는 전작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측대로 되면 재미없죠. 스포일러 안 보고 게임을 한 게 다행이다 싶네요.

전작들도 해봤지만, 이 4편의 시나리오가 시리즈 중 가장 훌륭하지 않나 싶습니다. 반전이 재미있었고, 마지막에는 여운이 남네요. 노출 장면 다 빼고라도 가정용 게임기에 이식된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스토리가 좋았던 것이죠.

최후에 루시폰을 물리쳤지만, 루시폰은 사천왕 중 한 명일 뿐이고 그 위에는 마계왕 미낙스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후속작에서 그들과 싸우는 이야기로 전개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5편은 설정만 갖다 쓴 가챠 게임으로 나와서 망했고, 엘프사가 사라진 지금 더 이상 후속작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식 스토리로는 사실상 4편이 마지막 드래곤 나이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점에 즐기면, 조잡하고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걸 상쇄할 만큼 높은 수준의 시나리오와 질 높은 미소녀 그래픽이 이 게임을 명작으로 남게 했다고 봅니다.


엔딩 본 날 - 2023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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