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5

천지를 먹다2 제갈공명전


패미컴 게임에 빠져 있을 무렵, 일본어도 모르면서 일본 패미컴 잡지를 사서 봤다. 거기 실린 게임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게 <천지를 먹다>였다. 아마 1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원래 삼국지를 좋아한데다가 모토미야 히로시의 인물 그림이 너무나 멋져서 혹했다. 그러나 복사팩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절에도 일본어를 몰라서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뒤늦게 2010년에 PDA로 게임보이판 <천지를 먹다>를 클리어했고, 패미컴판 2편은 8년 가까이 지난 2018년에 플레이했다. S905X 안드로이드 스틱에 짝퉁 듀얼쇼크2를 무선으로 연결해 NES.emu로 돌렸다. 편하게 하려고 레벨 최고로 만들고 필드와 던전에서 적이 나오지 않는 치트를 썼다.


이 게임의 걸림돌은 삼국지 등장인물 이름이 일본식 한자음으로 나온다는 점이었다. 장비를 '쵸-히', 조운을 '쵸-운'식으로 발음한다. 전투 화면에선 이름이 한자로 나와서 알아볼 수 있지만, 일반 대화창에선 패미컴의 용량 한계 탓인지 히라가나로 나와서 일본어를 알아도 누가 누군지 헷갈렸다. 그런데 고맙게도 누가 한글 패치를 만들어줘서 고민이 해결되었다.


<천지를 먹다2>는 동탁을 암살한 뒤부터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 삼국지와 비슷하게 진행되는 듯 하지만, 각색이 되어서 뒤로 갈수록 내용이 다르다. 모토미야 히로시의 만화 <천지를 먹다>에서 가져온 것은 일러스트와 제목뿐이다. 게임은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보는 게 맞다. 가령 원작대로라면 이미 죽었어야 할 여포가 형주 쟁탈전에 난입한다거나 유비군이 삼국 통일한다거나 정사나 소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풍향을 바꾸는 비법을 얻기 위해 옛 일본까지 갔다 오는 부분은 파격이었다.


옛날 RPG라서 시스템이 불편한 부분은 있다. 대화하거나 조사할 때 메뉴창을 열어야 한다는 점이 성가시다. 요즘 RPG처럼 앞으로 가야 할 곳을 표시해주거나 힌트를 많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몇몇 이벤트는 방법을 모르면 막히기 쉽다. 특히 제갈량 삼고초려 이벤트에서 많이 막히지 않을까 싶다. 언어를 알아도 공략 없이 엔딩 보기가 쉽지는 않다.

당시 유행했던 드래곤 퀘스트와 흡사한 시스템이지만, 나름 특이한 점은 있다. 배경이 삼국지이다보니 몬스터 같은 건 안 나온다. 일본 땅의 뱀들을 제외하면 인간이 적이다. HP가 병사 수인 점도 그럴 듯하다. 판타지RPG의 마법에 해당하는 것은 책략이다. 화계, 수계 등 삼국지에 등장했던 전술이 나온다. 파이널 판타지 초창기 시리즈와 반대로 전투 화면에서 왼쪽이 우리 편이고 오른쪽이 적인 점도 차별이 된다. 다만 RPG에서 빠지지 않는 던전은 있다. 삼국지에 무슨 동굴이 나온다고.

소설로 친숙한 이벤트가 몇 가지 나오는데, 그걸 제외하면 스토리가 세밀하지는 않다. 등장인물의 개성이나 성격도 대화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스토리보다는 전투 비중이 높은 RPG다. 막판엔 이벤트보다는 전투가 길게 길게 반복된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이지만, 유비는 도중에 멤버에서 영구 이탈하고, 관우, 장비는 후반부엔 자기 아들에게 역할을 맡기고 다른 일을 하러 간다. 그래서 끝판왕인 사마의하고는 조운, 마초, 황충, 강유, 장포, 관색, 제갈량으로 싸웠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여러 가지로 아쉬운 RPG다. 그나마 삼국지이니까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도전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성취감을 들게 하는 뭔가가 있다. 거기에 박력 있는 그림체, 훌륭한 음악이 가치를 더한다.


엔딩은 길지도 않고 소박한 편이다.


엔딩 본 날 - 2018년 1월 25일

댓글 2개:

  1. 파일을 구할수잇을가요
    전 변환해도 안되더라구요 psp 에는안되는걸가요?
    실행가능 에뮬도좀 부탁드립니다

    답글삭제
    답글
    1. 패미컴 에뮬이면 다 될 텐데요. 전 안드로이드용 NES.emu로 실행했습니다.
      https://m.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6259867&articleid=18810&page=1&boardtype=L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