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2

판타시스타3 시간의 계승자

판타시스타 시리즈 중에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3편이었다. 어린 시절 잡지 '게임뉴스'의 분석 기사를 보고 군침을 흘렸지만, 손에 넣을 기회가 없어서 지나친 게임이다. 그때 끌렸던 이유는 칼을 들고 서 있는 파란 머리의 주인공 모습이 강렬했고, 무엇보다 3대 가문으로 이어지는 멀티시나리오라는 점이었다. 이 3편을 하기 위해 먼저 1편과 2편을 클리어한 것이다.
1편과 2편은 플레이스테이션2 리메이크판이 있어서 편하게 했지만, 3편은 원작인 메가드라이브판을 그대로 이식한 것밖에 없었다. 게임보이 어드벤스판과 플레이스테이션2이 있는데, 게임보이 어드벤스에는 영문판밖에 없어서 플스2의 판타시스타 컴플릿 컬렉션에 있는 3편으로 시작했다. 그래픽이 메가드라이브판과 똑같은데 굳이 플스2판을 선택한 까닭은 이동속도 때문이었다. 옛날에 MD 에뮬로 3편을 돌려봤더니 이동속도가 너무 느려서 굉장히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문에 시작하는 걸 오랜 기간 주저했는데, 플스2판은 다행히 옵션에서 이동속도를 올릴 수 있다.
이동속도를 올렸다고는 하나 리메이크된 전편을 하다 3편을 하니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래픽이 메가드라이브 초창기 시절 수준인데다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불편했기 때문이다. 1990년 게임인데 어쩌랴. 그땐 사용자 편의성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리메이크된 전편들은 인터페이스가 편리하게 수정되었지만, 불친절한 설명이나 구성은 리메이크된 1, 2편이나 3편이나 똑같다. 요즘 게임들 같으면 단서가 되는 중요 대사는 다른 색깔로 나오거나 잊지 않도록 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옛날 일본 RPG들은 그런 게 없어서 대사 하나하나 무시할 수가 없다. 정보를 잘 기억해두었다가 조합해서 진행해야 한다. 옛날 RPG가 더 어렵고 머리를 더 쓰게 만든다.

그밖에도 2층에 사람이 있는 경우가 드문데 거의 다 쓸데없이 2층 건물이라는 점, 등장인물에 개성이나 성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밋밋하다는 점 등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요즘 게임들과 비교해서 흠을 잡자면 끝도 없다.

판타시스타3는 1, 2편과 달리 중세 판타지 배경에서 시작한다. 전편과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 '외전'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뒤로 가면 SF요소가 나타나면서 전편과 관련된 부분이 드러난다. 3편은 1편에 등장했던 팔마 후손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우주로 나갔을 때 지금까지 활약했던 무대가 별이 아닌 거대한 우주선이었다는 설정은 놀라웠다. 달이라고 생각했던 그것도 사실은...
3편의 재미있는 점은 어느 여성과 결혼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가 바뀐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결혼하면 그 아들이 주인공이 되는, 3대에 걸친 이야기다. 엔딩은 4가지가 있고, 이걸 다 즐기려면 결혼 상대 고를 때 세이브를 해놔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주인공 신의 엔딩을 본 뒤, 다른 시나리오를 위해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뺑뺑이 돌리기 미션과 높은 난이도, 밋밋한 분위기 때문에 그렇다.
스토리에서 몇 군데 놀라운 점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전개가 밋밋했다. 굳이 따지자면 2편보다 좋은 평가를 내리진 못하겠다. 꽤 흥미로운 설정과 장점이 있었는데도 그걸 잘 살리지 못해 아쉬운 게임이라고 할까.
인상적인 장면에서도 밋밋하게 지나가는 점이 아쉽다. 더 강하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느 마을에 가도 다 똑같은 건물처럼 전체적인 느낌이 밋밋하다. 특히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 느닷없는 감이 있다. 드래곤 퀘스트5처럼 두 명의 여인 사이에서 번민하게 되는, 둘만의 기억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매력이 드러나지 않으니 그냥 외모 보고 뽑게 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리메이크가 된다면, 살을 많이 붙여서 인물들의 개성을 살리고 이야기에 깊이를 더했으면 한다. 걸작이 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아까운 게임이다.
1, 2편의 끝판왕 다크펄스는 3편에서도 등장한다. 이 악마는 1000년마다 부활한다고 한다. 엔딩에서 조우한 팔마의 다른 후손들이 말한다. 앞으로 1000년 동안 잘 지내자고. 마치 다크펄스의 1000년 주기 부활을 염두에 둔 듯...

엔딩 본 날 : 2015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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