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8

귀곡가(鬼哭街) - 누진령음향(涙尽鈴音響)


2002년에 나온 니트로플러스의 성인용 비주얼 노벨. 옛날에 해봤는데, 방대한 일본어 텍스트 양 때문에 막 스킵하면서 해서 정확한 스토리가 기억이 안 났다.
우로부치 겐의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극장판을 본 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귀곡가>를 시작했다.

이번엔 2011년에 리메이크된 버전으로 했다. 노출 수위를 15세 이상 수준으로 낮추고 풀보이스 채용, 그래픽 개선한 버전이다. 마침 한글 패치도 있길래 그걸 깔았다. 일본어 독해는 가능하지만, 귀곡가의 일본어는 어려운 문장이 많기 때문이다. 한글로 나와도 텍스트가 방대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넘기면서 했다. 선택문도 없는 일방진행형 방식이라서 게임이라 보긴 어렵고, 음악과 그림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무대는 미래의 상하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이 대부분이 중국인으로 추측된다. 세계관은 무공을 체득한 자들의 사회, 강호(江湖 또는 무림)인데, 사이버네틱스 기술의 발달로 육체를 기계화한 무림 고수들이 횡행하는 시대다.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기계화를 하지 않았으며, 대신, 인간의 몸으로 사이보그를 물리칠 수 있는 자전장(紫電掌)이란 기공술을 체득하고 있다.


주인공 쿵 타오뤄는 상하이의 폭력 조직 청운방에서 킬러로 활동했으나 마카오에서 친구 류 하오쥔의 배신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1년 뒤 부상을 회복하고 상하이로 돌아온다. 주인공이 아끼던 여동생 쿵 루이리는 하오쥔의 신부였으나 놀랍게도 하오쥔은 자신의 동료 4명에게 윤간을 명한다. 루이리는 강간을 당한 뒤, 그 영혼은 5등분이 되어 하오쥔과 동료 4명이 가진 섹스용 안드로이드(가이노이드) 다섯 체에 각각 이식된다. 그리고 죽어서도 가이노이드가 되어 성적 노리개로 쓰인다. 주인공 타오뤄는 셰 이다 박사에게 5등분된 여동생의 영혼 데이터를 모두 모아서 하나의 가이노이드에 넣으면, 여동생을 되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하오쥔을 포함한 5명의 고수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러 나선다. 기계화한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자전장을 쓰는 것이지만, 쓸 때마다 내상을 입고 죽음에 다가간다. 그러나 복수귀가 된 타오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설정에서 특이한 점은 인간의 영혼을 기계로 옮길 때, 이동만 되고 복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옮기는 과정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해 원본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서 기계로 옮길 때는 뇌가 파괴되고, 기계에서 기계로 옮길 때도 영혼을 담은 원본 기계가 파괴된다고 한다. 복사가 된다면, 주인공의 여동생은 여러 명 생기게 될 테니 주인공은 그걸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생각 안 할 테고, 죽음을 무릅쓰고 영혼 데이터를 찾아 헤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편리한 설정이다.


비장한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고, 주인공의 적 5명도 매우 개성이 있어서 좋았는데, 결말은 이게 뭐야? 싶다.


주인공은 적들을 쓰러뜨리고 여동생의 영혼을 모두 모으는 데 성공하지만, 배신자이자 친구였던 하오쥔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너의 여동생은 내가 아니라 오빠인 널 남자로서 사랑했고, 그걸 몰라주는 너 때문에 늘 괴로워했다고.
루이리는 괴로운 와중에 오빠가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묻지 않고 하오쥔과 약혼시키자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계획을 짜게 된다.
평생의 소원은 자신이 인생의 수렁에 빠졌을 때에 오빠인 타오뤄가 구원하는 것이었기에 자신을 사랑하는 하오쥔에게 오빠를 배신한 뒤에 자기를 청운방 사람들과 함께 강간하고 영혼을 가이노이드에 옮기라는 부탁을 한다. 루이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루이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하오쥔은 오로지 루이리를 위해 그녀의 부탁을 다 이루어주고 자신을 신뢰하던 타오뤄에게 배신자로 여겨지는 오명까지 쓴다. 그리곤 루이리 5분의 1 영혼을 넣은 자신의 가이노이드를 애지중지하며 지낸다.


주인공은 하오쥔을 죽였으나 자신도 부상을 깊게 입어 사망하고 만다. 5개의 영혼을 모두 얻은 가이로이드 루이리는 기억이 돌아오고, 오빠의 뇌를 셰 이다 박사에게 가져가서 자신의 남은 뇌 메모리 안에 오빠의 영혼을 전송시켜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 뇌 속에서 주인공과 여동생은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해피(?) 엔딩.


하오쥔과 루이리의 선택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신부를 동료들에게 윤간까지 당하게 하는 선택은 어이가 없고, 그런 부탁을 한 루이리 역시 정상이 아니다. 둘 다 사랑에 미쳤다고는 하나 인간이 할 수 없는 괴상한 선택을 했다. 다른 선택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굳이 저렇게 한 걸 보면, 원래 변태 성향이 있는, 미친 캐릭터들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납득 가는 동기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엔딩 본 날 - 2020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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