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5

천외마경 풍운 가부키전 PSP


풍운 가부키전은 1993년 7월, PC엔진용으로 나왔고, 2008년엔 PSP의 천외마경 컬렉션에 수록되었다. 나는 PSP판으로 시작했다. PC엔진판과 차이점은 없지만, 치트 쓰기가 더 편해서다. 걸음속도 3배+경험치 최대+조우율 0% 치트를 써서 쾌적했다. PSP판은 화면 양옆 빈 곳을 천외마경 무늬로 메워준다.


풍운 가부키전은 천외마경1으로부터 4년 후, 천외마경2로부턴 1년 후 이야기다. 주인공은 천외마경2에서 활약했던 가부키다. 여자 밝히고 잘난 척이 심하며 시끄럽지만, 천외마경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개성이 강하고 인기가 높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가부키 단쥬로라는 이름은 16~17세기 일본에서 전통연극 가부키 배우로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이치카와 단쥬로에서 따온 걸로 보인다.


천외마경2의 모험을 마치고, 가부키 배우로 돌아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가부키. 그 앞에 천외마경1의 캐릭터 오로치마루가 나타난다. 그는 가부키와 같은 스승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형으로 나온다. 1편의 적이었던 대문교(데몬교)의 잔당이 마왕 카프를 부활시켜 또 세계 정복을 노리고 있다며, 가부키에게 그들을 막아달라고 한다. 그러나 가부키는 관심 없다며 거절하는데, 지팡구의 여자들이 모조리 대문교에게 납치되자 마음을 바꿔 먹는다.




초반에 전작의 주역들이 잔뜩 나와서 반갑다. 이들은 얼굴만 비추고 일행이 되지는 않는다. 그나마 비중이 높은 건 오로치마루다. 편지를 통해 여러 번 등장한다.

대몬교 잔당이 지팡구의 여자들을 납치한 까닭은 애를 낳을 수 없는 남자들만의 세상으로 만들어 지팡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다. 납치한 여자들은 런던으로 보내 가둬버렸다. 가부키와 제아미는 그들을 쫓아 배를 타고 런던으로 건너간다.


옛 일본이 무대였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영국 런던이 메인이다. 재밌는 점은 런던에 도착하면, 시스템 용어와 화폐단위가 영국식으로 바뀐다. 体力(체력)→HP、段(단)→Lv、両(량)→ポンド(파운드).
대몬교는 런던에도 마수를 뻗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런던의 정치가까지 포섭해서 영국을 통째로 먹으려는 속셈이었다.


전투 화면은 파이널 판타지4~6 같은 사이드뷰 방식이다. 사이드뷰 방식은 천외마경 시리즈 중 가부키전이 유일하다고 한다. 귀엽고 보기 편한 면도 있지만, 전작만큼의 전투 애니메이션이 없어서 심심한 느낌이다. 특히 적의 변신 모습이 간단히 표현된다. 보스전에선 때려서 적의 HP를 모두 소모시키면, 止め(토도메-숨통을 끊음)를 선택할 수 있다. 그걸 선택해야만 싸움을 마무리할 수 있다. 다만, 토도메를 위한 아이템이나 기술을 미리 얻지 않으면, 보스를 없앨 수 없다.


비주얼신은 당시 기준으로 풍부한 편이다. 성우가 31명이나 기용되었다고 한다. 외전이라서 천외마경1, 2만큼 긴 내용은 아니지만, 작은 볼륨에도 연출 면에서 꽤 공을 들인 느낌이다.


보스들이 등장할 땐 대부분 노래를 부른다. 주인공이 가부키 배우라서 뮤지컬 요소를 넣은 것 같다. 이 덕에 게임이 화려해 보인다. 보스들은 다 기구한 사연이 있다. 물리치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마왕에게 영혼을 팔았던 지난 일을 후회한다.


전작들도 음악이 좋았지만, 가부키전도 음악이 좋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유명한 작곡가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천외마경 시리즈는 고평가에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이 게임 히로인 오쿠니는 꽤 진행해서야 일행으로 삼을 수 있다. 오로치마루가 키운 부하이다. 지팡구(일본) 여자인 줄 알았는데, 징기스칸의 피를 이어받은 몽골계 여자다. 노출신도 살짝 나온다. PSP 이식판에선 가슴 노출 장면이 삭제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 뒀다.


번외편인 만큼, 볼륨이 작아서 천외마경2처럼 대작 느낌은 아니지만, 실험적인 부분도 보이고 신경 써서 만든 작품이라고 본다. 마지막 스텝롤 올라가다 말고 끝판왕과 다시 대결하는 부분도 재밌었다.
전반적으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RPG다. PSP판 천외마경 컬렉션에는 이 게임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격투 게임 '가부키 일도양단'도 있는데, 해보니 조잡했다. 천외마경 시리즈는 RPG만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엔딩 본 날 - 2018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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