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3

BABEL


1992년에 나온 PC엔진용 RPG입니다.
흔한 판타지 세계관이 아니라 총과 차량이 나오는 SF 세계관의 RPG입니다. SF라고 해도 생활 양식 등은 유럽 중세풍입니다. 왕, 귀족, 평민 등 신분 격차가 있고, 종교가 있는 세계지요. 뭔가 뒤죽박죽 섞인 느낌입니다.


특이해서 초반부는 흥미진진했습니다. 각 캐릭터의 개성도 말투에서 잘 드러나고 약간 성인 취향의 대사들도 나와 재밌더군요. 두 여성 캐릭터의 그림체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투 애니메이션도 있습니다. 총이나 칼로 싸우네요. 다만 명중이 쉽게 되지 않아서 답답한 느낌을 줍니다. 운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적을 이겨도 경험치가 없습니다. 이벤트를 해결하면 레벨이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필드에서 랜덤으로 나오는 적들을 물리쳐봐야 레벨업되지 않습니다. 그냥 돈만 생길 뿐이죠. 돈으로 좋은 무기를 장비하느냐로 승패가 갈립니다.


던전 안은 횡스크롤 방식이라 다른 RPG의 미로만큼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동속도도 버튼 누르고 있으면 빨라져서 쾌적하네요. 하지만 세밀한 부분에서 뭔가 설익는 느낌이 납니다.



스토리는 청년 제루, 그와 함께 다니는 1살 연상의 아리사가 어떤 이유로 쫓기고 있는 세피아를 구해주면서 시작됩니다. 아리사는 제루를 짝사랑하는 걸로 보이고 세피아는 히로인입니다.
에뮬은 처음엔 레트로아크를 썼는데, 도무지 치트가 먹히질 않아서 Ootake 2.91버전으로 돌렸습니다. Ootake는 CD 이미지를 인식하지 못해서 CD스페이스8을 깔아 가상CD로 돌렸습니다. CPU 메뉴의 Write Memory 옵션에 치트를 치면 잘 먹습니다. 근데 이 게임은 경험치가 없기 때문에 공격력이나 HP 등을 올려도 레벨이 올라간 순간 다시 원래로 돌아오더군요. 돈은 뻥튀기 가능해도 다른 수치는 레벨 올라갈 때마다 치트를 쳐줘야 하는 불편이 있었습니다. Ootake는 레트로아크에 견주어서 성능이 떨어지더군요. 필터를 줘도 화면이 레트로아크보다 별로였고, 중간 비주얼신에선 음성과 영상이 안 맞았습니다.
Ootake 세이브 파일이 레트로아크에 호환이 되긴 하지만, 그럼 치트를 못 쓰기 때문에 그냥 Ootake로 했습니다.


첫인상은 참 마음에 들었던 게임인데, 요즘 집중력이 그리 오래 안 가고 지루함을 못 참는 시기라 계속 하진 못 했습니다. 2화 막판까지 하고 디버그 모드 들어가서 모든 비주얼신을 다 봐버렸네요. 좀 더 세밀한 부분을 신경 써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야기가 늘어지고 시스템이 다소 불편합니다.

그래도 시나리오는 파격적이었습니다. 모든 여성 캐릭터가 죽는 하드보일드함! 주인공이 사는 세계 바벨은 실은 어떤 뒤틀림으로 생겨난 세계이고, 이 세계에서 말하는 조정자(신의 능력을 갖춘 자)는 지구인이었다는 사실을 비주얼신을 보고 알았습니다. 결국 바벨은 소멸되고 주인공은 지구에서 깨어납니다. 지금까지 죽었던 등장인물도 지구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걸 보고 그냥 참고 하는 게 낫지 않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히로인과 선을 넘는 장면은 놀라웠습니다. 가정용 게임기에선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특이한 RPG였네요.


엔딩 본 날 - 2018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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