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1

일루미나!


1990년 칵테일소프트가 일본산 컴퓨터인 PC8801과 PC9801용으로 내놓은 성인용 RPG.
일러스트가 매력적(자극적)이어서 시작했다. 에뮬은 Neko Project 21/W를 사용했다.


소년이 강가에서 쓰러친 채 발견된다. 작은 마을 튜토의 아리따운 소녀, 류나의 보살핌으로 깨어난 소년은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기억상실 상태였다. 그때 악독한 영주가 류나를 노리개로 삼기 위해 나타나는데, 소년이 막아서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그래픽 매수 200장, BGM 25곡으로 당시 RPG로선 볼륨이 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트 그래픽에 신경 쓴 대신, 다른 요소는 단조로운 편이다.


마을 사람과 대화는 마을 주변에서 할 수 있고 막상 마을에 들어가면 상점, 교회, 술집, 여관만 있다. 어느 마을에 가든 같은 그래픽, 같은 인물이다.


몇 가지 시스템은 옛날 RPG답게 불편했다. 레벨업은 경험치가 쌓이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마을의 술집에 가서 돈 주고 술을 마셔야 그동안 모은 경험치만큼 레벨이 오른다. 그리고 무기와 방어구는 장착해보지 않으면 수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알 수가 없다.
가장 불편했던 점은 게임패드를 지원하지 않아서 키보드로 했다는 점이다. 키보드 방향키, 리턴키, 스페이스바로 조작한다. 또 내가 모르는 건지 다른 마을로 워프할 수 있는 마법이나 아이템이 없어서 이동하는 데 시간을 잡아먹는다. 지도가 있긴 하지만, 지명도 없고 표시 반경이 좁아서 미리 길을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나마 세이브는 아무 데서나 가능해서 편했다.


마법은 심플하게 공격, 방어, 회복으로만 표시된다. 특이한 점은 마법의 강도를 레벨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레벨이 50이면 1~50까지. 사용 후 줄어드는 MP 수치는 선택한 레벨 수치와 같다.


걷기 스타일은 선택할 수 있는데, 걸음 속도를 조절하는 옵션이 아니고, 랜덤 인카운트 확률 조정이다. '신중히'를 선택하면 가장 적게 적이 나온다. 하지만 그래도 출몰이 잦은 편이다.


파티는 주인공과 히로인 단둘이며, 히로인은 나중에 셋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다. 각각 마법사, 검사, 승려인데 전부 미소녀이다. 후반부에 누굴 연인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사가 살짝 바뀐다. 시나리오엔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세 번 다시 할 가치는 별로 없지 않나 싶다.


스토리는 뛰어나진 않지만, 완성도가 높았다. 주인공의 정체가 핵심이고, 성인용이니까 가능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성인용답게 노출신이 많은데, 여성 캐릭터는 반드시 노출을 한다.
이야기 전개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개연성 없는 노출이다. 그리고 이왕 노출한 거 그 이상의 전개로 갈 것이지 거기서 끝난다.


이 게임에서 여성의 노출을 다 빼도 그럭저럭 괜찮은 스토리의 RPG가 되었으리라 본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스토리이긴 했지만, 알기 쉽고 인상적이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개선하고 살을 붙여서 리메이크하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RPG다. 걸작은 아니더라도 수작까진 갈 수 있는 작품.


엔딩 본 날 - 2020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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