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1

영원의 피레나


1995년 슈퍼패미컴으로 발매된 RPG. 일본 잡지 <애니메쥬>에서 연재되던 판타지 소설을 게임화했다. 원작 소설은 슈도 타케시(2010년 사망)가 썼는데, <요술공주 밍키>, <우주전사 발디오스>, <포켓몬스터> 등의 작가이기도 하다.
피로세 제국이 지배하는 세상. 16살 피레나는 여자인데도 검투사 제나에게 남자 검투사로서 길러졌다. 그 이유는 피레나가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한 나라의 왕녀이기 때문이다. 제국이 오락거리로 여는 검투사 대회에서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던 피레나는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고, 제국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곳곳을 다니면서 제국의 핍박에 항거하는 반란군과 함께 제국의 우두머리를 무찌르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이야기.


당시 RPG에선 보기 드물게 여자가 주인공이며, 조연 리라는 피레나가 여자임에도 남편처럼 따르는 것을 볼 때 동성애물처럼 느껴진다. 제국에게 정복당한 나라의 주민들은 '크레이타'라는 천한 계급 취급을 당하는데, 직업 선택과 출산의 자유가 없으며, 노예나 창부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계급이다. 리나도 승리한 검투사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창녀이다. 가정용 게임기에서 창녀가 등장하는 건 처음 본다.


설정 자체가 미드 <스파르타쿠스>처럼 비장해서 처음에는 끌렸는데, 스토리가 예측 가능하고 적들도 매력이 없어서 3분의 1쯤 진행한 시점에서 끝판왕 직전 세이브를 받아 엔딩을 봐버렸다. 설정은 암울하고 비참한데, 그래픽, 음악, 대사가 그걸 살리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더 어둡고 묵직하게 전개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픽은 <파이널 판타지4, 5>, 전투 시스템은 <에스트폴리스 전기>와 흡사한데, 그 게임들보다 뒤에 나왔음에도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 소설을 시작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까지 나왔지만, 제작사의 역량 탓인지 게임과 애니메이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도쿠마 쇼텐(徳間書店)에서 만든 게임치고 재미나게 한 게 없다.


히트한 타사 RPG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가져와서 냈지만, 너무 전형적이고, 설정의 독특함을 못 살린 RPG.


엔딩 본 날 - 2019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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