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1

천외마경2 만마루

1992년 3월 26일 / PC엔진 슈퍼CD-ROM2

다른 게임기와 달리 앞서서 CD를 장착했던 NEC의 게임기 PC엔진은 1991년 메모리를 대폭 늘린 슈퍼CD-ROM2를 출시했다. 이 주변기기의 출시 후, 몇 가지 킬러게임타이틀을 내놓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띤 것이 허드슨이 만든 RPG <천외마경2 만마루>였다.

슈퍼패미콤의 드래곤 퀘스트, 파이날 판타지 그리고 메가드라이브의 판타지스타, 루나 시리즈에 맞설만한 대작 RPG가 드디어 PC엔진에도 나타난 것이다.

나는 이 게임의 오프닝을 반포의 한 게임점에서 보게 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분량의 사운드와 음성, 애니메이션 효과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 주인공 만마루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나 박력 넘치는 배경음악은 내가 가지고 있던 메가드라이브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PC엔진은 패미콤과 같은 8비트 시스템이었지만, CD-ROM의 용량을 최대한 살려서 당시 RPG 중에 가장 많은 음성과 동영상이 들어갔으며, 슈퍼CD-ROM2 게임 중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PC엔진 듀오는 학생인 내가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어서 군침만 삼켰고, 결국 이 게임을 하게 된 것은 몇 년 후 PC엔진 듀오가 내 손에 들어오고 나서였다. 일본어를 거의 모르는 나였지만, 잡지 게임월드의 분석을 토대로 엔딩을 보았다. 마지막 왕을 아주 가까스로 깨서 엔딩화면을 아주 감명깊게 본 기억이 난다.


기존 RPG와 다른, 독특한 점이라면 배경이 옛날 일본이라는 점이다. Japan의 옛 이름인 '지팡'도 나오고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새나 건물들이 에도 시대 일본과 흡사하다. 일본문화가 개방이 안 되었던 당시로선 이런 왜색이 거부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다 보면 그런 점들이 묻혀지고 화려한 음성과 그래픽에 매료되었다. 전투화면에서 적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도 놀라웠고, RPG에서 대화가 음성으로 나온다는 점도 신기했다. 무엇보다 배경음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녀 배달부 키키> 등의 음악을 작곡했던 '히사이시 조'가 이 게임음악의 작곡가란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의 느낌이 비슷하다. 클래식하면서도 일본전통음악스러우면서도 그런 느낌?
중간에 아주 잔혹한 장면이 있어서, 이것도 당시 나한텐 충격이었는데, 훗날 나온 PS2판이나 NDS판에선 순화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천외마경3>, <천외마경 제로> 등 후속작이 나왔지만, <천외마경2>가 주었던 충격파와 완성도는 넘어서지 못했으며, 일본게임잡지 <패미통> 1000호 기념 '독자가 고른 미래에 전하고 싶은 게임 순위'에서 6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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