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03

EVE burst error

미소녀 어드벤처 게임은 역시 그림이 좋냐 나쁘냐에 성패가 달려있는데, <EVE burst error>는 그런 점에서 무척 만족스러운 그림을 보여주었다. 특히 여주인공인 마리나의 원화가 마음에 든 것이 이 게임을 시작한 이유였다.


처음에는 95년에 발매된 원작인 PC9801판으로 했는데, 당시 게임 파일에 문제가 있어서 중도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훗날 윈도우판을 구하게 되었고, 진행될수록 흥미를 더해가는 시나리오에 빠져들어 며칠 동안 붙잡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EVE 시리즈는 추리물이긴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거의 SF나 오컬트로 빠지게 되어서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심리서스펜스SF물이라고 해야 하나.


주인공은 게을러보이지만 명석한 탐정 고지로와 섹시하지만 냉철한 비밀요원 마리나이며, 그 두 주인공의 시점이 번갈아 바뀌면서 게임이 전개된다. 게임선전에서는 '멀티사이드 시스템'이다, 뭐다 하면서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그렇게 내세울 만큼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시스템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주인공이 중간중간 바뀌는 것뿐.


후반부에 등장인물 중 하나가 죽는 장면이 나오는데,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찔끔 흘렸을 정도로 슬펐다.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아주 좋아서 대사를 녹음하기도 해서 듣고 다니곤 했다.

게임의 후반부에는 범인 이름을 입력해야 하는 질문이 나와서 막혀서 헤매다가 결국 공략집을 이용했는데, 그때 범인의 정체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해본 사람 대부분이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시나리오는 두 주인공이 아닌 범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이 이채로웠다. 범인의 슬픈 심리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원작 PC9801판에는 미성년자관람불가 장면이 나오는데, 내용에는 있으나 없으나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장면들이라 후에 나온 윈도우판이나 가정용 게임기판에는 그 장면들이 순화 또는 삭제되어 있다.

뒤에 나온 후속작들은 시나리오 작가가 바뀌어서 그런지, 전작보다 훨씬 떨어지는 완성도를 보여주어서 아쉽다.

그 후속작들 중 가장 최근작은 <EVE New Generation X>인데, 내용이 복잡하고 난해한 소재들이 나온다. 처음과 중반부까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후반부에 너무 설명조에다가 억지로 끼어맞춘 느낌이 드는 줄거리가 아쉽다.


후속작은 평작 또는 그 이하이지만, 가장 먼저 나온 <EVE burst error>가 이쪽 분야에서는 최고 수준의 게임이 아니었나 싶다.

댓글 2개:

  1. 군복무 때문에 새턴판 플레이 타이밍을 놓쳐버렸던 게임이네요. -_-
    원화가 맘에 들어서 조오~기 위에 있는 원화집은 구입해놓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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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멋진 작품입니다. 후속작들은 몰라도 이브 버스트 에러는 강추합니다. 단지 스포일러에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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