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19

북두의 권

옛날 최고의 인기 만화는 드래곤볼이었는데, 드래곤볼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인기를 얻던 일본 만화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북두의 권'이다. 내가 처음 본 것은 해적판 '북두신권'이었는데. 적을 어렵게 어렵게 이기는 다른 만화들과 달리 압도적인 강함으로 손쉽게 적을 처리하는 켄시로에 매료되어 빠져들게 되었다.

표지에 동경대학 선정 올해의 우수도서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렇게 잔인한 만화가 대학교 우수도서라니 일본은 참 희한한 나라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만화를 인상깊게 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게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일 처음 해본 것이 패미콤판 북두의 권2였다. 쉽게 구하기는 힘든 팩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입수했다.

사실 그래픽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꽤 어려웠지만, 원작의 적들이 터지는 연출은 있어서 나름대로 흥미를 갖고 했다.


그 뒤에 메가드라이브판 북두의 권이 나와서 나를 흥분시켰다. 이 게임은 그때까지 해본 게임 중에 가장 잔인한 연출을 보여주는데, 켄시로가 한 대 치면 적의 머리가 터지고 피가 튀었다. 아들을 둔 아버지가 용산 게임점에 가서 '이렇게 잔인한 게임을 애들한테 팔아도 되는 겁니까!' 하고 항의했다는 게임월드의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나마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사실 이 게임, 너무 단순하고, 지겨운 게임이다. 비슷한 적들이 계속 나오고, 미궁은 패턴플레이다


그래도 그래픽과 분위기가 원작과 흡사했고, 보스전이 정말 멋졌다. 하지만 그 보스전에서 지면 한참 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다. 보스전에서는 마지막 일격을 반드시 서서 머리를 때려야 숨통을 끊을 수 있는데, 성공하면 원작처럼 켄시로가 엄청난 속도로 적을 마구 가격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쓰던 조이스틱에는 슬로우 기능이 있어서 슬로우모션으로 몇 대를 치는지 확인하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끝에서 두 번째 보스를 내가 처음 만나서 이겨버렸는데, 옆에서 같이 하던 친구가 그것을 보고 대단하다며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열심히 연습해서 엔딩까지 본 뒤, 어느날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다시 해봤다. 옆에서는 초등학교 꼬마가 자기가 오래 하는 방법을 안다며, '그쪽으로 가지 마세요, 왕한테 죽어요' 하고 이래저래 코치했다. 하지만 난 피식 웃으며, 첫번째 보스를 가볍게 눌렀다. 꼬마는 눈의 휘둥그래지며 옆에서 붙어서 내 플레이를 지켜 보았다.

30분 이상 걸려서 마지막 보스 카이오를 물리치고 대망의 엔딩이 흐를 때는 옆에서 오락하던 사람들이 '저게 뭐야?' 하면서 몰려들었다. 그때 참 뿌듯하기도 했고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 인생 최초로 오락실에서 엔딩을 본 게임이었다.

그 뒤, 슈퍼패미콤판으로 북두의 권6을 해봤는데, 당시 스트리트파이터2의 열풍 탓인지 대전격투로 변모해있었다. 나름대로 원작의 맛이 있던 게임이지만, 하루만에 다 깨버리고, 엔딩도 너무 성의가 없어서 별로 좋은 게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북두의 권은 지금까지 많은 게임이 나왔지만, 역시 기억에 남는 것은 메가드라이브판이다.

댓글 5개:

  1. 개인적으로 메가드라이브판과 플스1판이 최고의 명작이죠.. RPG는 패미컴판 북두의권4가 아주 진국입니다.

    답글삭제
  2. 윗님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도 메가드라이브판과 플스판을 최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솔찍히 플스판은 좀더 다듬어서 리메이크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SFC판 북두의권6에 많은 실망을 했었지요. 캐릭터는 큼지막하고 좋은데, 팔레트도 뭔가 좀 엉성하고, 대전격투 게임이라해도 타격감도 부족한 느낌이 들고... 솔찍히 기대와는 달리 실망이 큰 게임이었습니다.

    답글삭제
  3. 플스판은 오프닝만 보고 안 해봤는데, 언젠가는 해봐야겠습니다. RPG로 나왔던 SFC판 북두의 권5도 많은 기대를 했는데, B급스러운 완성도 때문에 중도에 포기했죠. 대전게임이었던 북두의 권6은 꿋꿋하게 7편도 나왔지요. ^^

    답글삭제
  4. FC용 4편은 나름대로 인내심을 갖고 플레이했던 게임이고 5편은 윗분 말대로 잡지의 기사를 보고 엄청 기대를 했으나 정작 완성도가 젠장이었으며 6, 7 편은 말 할 가치조차 없는 게임이죠. 7편의 경우 당시 20메가 대용량이라고 패키지에 화려하게 광고했는데 도대체 20메가를 어디다 사용을 했다는 말인지.. 색감은 오히려 6편보다도 떨어졌죠.

    북두의 권 관련 게임중에 그나마 할 만한 것은 MD판, PS1, PS2용 대전액션 정도.. 아~ 세가 에이지스 시리즈도 싼맛에 그럭저럭 할만했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더군요.

    답글삭제
  5. 7편은 6편보다 나아졌을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군요. -_-; 좋은 원작을 가지고 왜 그렇게밖에 못 만들었는지.. 참..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