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7

천외마경2 PS2판


천외마경2는 90년대 초반에 PC엔진 듀오로 해봤다. 당시엔 일본어를 잘 몰라서 게임월드 잡지와 PC통신의 공략을 보고 엔딩을 봤다. 세월이 흘러 다시 잡아봤다. 이번엔 PC엔진판이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2판을 에뮬로 시작했다. 참고로 리메이크판은 게임큐브판으로도 있다. 게임큐브판이 로딩이 더 짧다곤 하는데, 난 치트 적용이 쉬운 플레이스테이션2판을 선택했다.


리메이크판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진 않았다. 원작인 PC엔진판은 원색적이고 다소 어두운 느낌이 있는데, 그게 천외마경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리메이크판은 색감이 밝아지고 애니에 가까워져서 이질감이 들었다. 필드 화면이 2D에서 3D로 바뀐 것에도 적응이 필요했다. 그리고 편곡된 음악은 PC엔진판보다 박력이 부족했다. 유명 작곡가인 히사이시 조의 곡이 너무 둥글둥글해졌다. PC엔진판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는 이들은 실망할만하다. 하지만, 그걸 빼면,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그렇게 떨어지는 편은 아니라고 본다. 출시 당시 많은 이에게 충격을 줬던 작품이라 리메이크판에 기대치가 높았던 것이다. 기대 없이 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천외마경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일본풍 세계인 지팡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전편과 스토리가 이어지진 않지만, 불의 일족이 그대로 나오고, 1편에 나온 캐릭터 2명은 2편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1편의 적이었던 대문교, 마사카도 이야기가 대사에서 몇 마디 언급된다. 시간상 1편이 2편의 몇 년 과거임을 알 수 있다.


스토리는 굴곡 없는 왕도 RPG다. 불의 일족인 주인공이 사는 땅에 세계 정복을 꿈꾸는 뿌리 일족이 나타난다. 그들은 7개의 암흑란을 자라게 하여 땅을 황폐하게 하고 인간들의 생기를 빨아들이게 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건 불의 일족뿐이다. 그 피를 이어받은 주인공 만지마루는 같은 불의 일족 3명을 찾아 뿌리 일족의 야욕을 저지하러 집을 나선다.


암흑란 7개를 없애는 게 목적이라서 마을에서 정보 얻고 이벤트를 클리어하면 그 지역에 있는 적의 성에 갈 수 있게 되고, 성의 보스를 물리치면 성검을 얻는다. 그 성검이어야만 그 지역에 뿌리내린 암흑란을 잘라버릴 수 있다. 이걸 7번 반복한다. 7개를 다 자르면 최후의 암흑란이 나오고, 끝판왕 요미와 싸우게 된다.


전체적인 전개는 뻔한데, 넓은 지도와 대사량, 개성 있는 캐릭터들, 세세한 곳까지 신경쓴 티가 나서 역시 대작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이 방대해서 랜덤 인카운트를 치트로 없애고 했는데도 클리어에 20시간 넘게 걸렸다.


천외마경 시리즈는 중세 판타지 배경이 아니라 옛 일본 배경을 무대로 삼고 있는데, 2편은 특히 그 일본 전통색을 게임에 잘 녹아들게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봤던 이세진구, 와카야마성이 게임에도 나와서 반가웠다. 게임에 나오는 일본 신사 등도 실제와 비슷한 느낌으로 표현되어 있다.


게임 스토리는 그리 심오하지 않아서 중학생 정도가 대상이 아닌가 싶은데, 몇몇 부분은 가정용 게임으로선 다소 미묘하다. 주인공과 미녀 벤텐의 잠자리를 의미하는 장면이라든가 여자들을 가둬놓고 번호로 부르며 요일마다 잠자리 상대(그 중 하루는 남자)를 바꾸는 키쿠고지로라든가...... 노골적인 장면은 안 나오지만, 뭘 의미하는지는 성인이라면 알 수 있다.
 또, 여 캐릭터 키누가 적의 사지를 찢어서 잔혹하게 죽이는 장면이 있는데, PS2판에선 바뀐 심의규정 때문에 수위가 대폭 낮아졌다. 이뿐 아니라 원작의 아슬아슬한 대사도 조금씩 건드린 것 같다.


천외마경2를 다시 해보고 느낀 건 역시 PC엔진의 대작 RPG로 꼽을만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슈퍼 패미컴의 간판 RPG 드래곤 퀘스트5나 파이널 판타지5, 6에 견준다면, 그래픽과 음성 면에선 훨씬 뛰어나고, 스토리 면에선 다소 아쉬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90년대초 가정용 게임기 시절엔 천외마경2만큼 애니메이션과 음성이 나와도 놀라자빠질 정도였지만, 이 게임이 PS2용으로 오면, 평작이 되어 버린다. PS2에선 그게 기본이니까 특별함을 못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PS2에서 탑이 될 수 없을 바엔 옛 유저들을 겨냥해 2D 복고풍으로 디테일만 손질해서 리메이크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리메이크인데 추가 요소가 없는 것도 아쉬웠다.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아련했던 천외마경2를 다시 해볼 수 있어 며칠 재미있게 보냈다.


엔딩 본 날 - 2018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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