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9

마더 3

전작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무려 12년 만에 나온 마더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한국에서는 1, 2편을 접한 유저층 자체가 좁았고, 닌텐도 DS Lite가 나온 2006년에 게임보이 어드벤스로 나와 3편이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한국어 패치가 등장하면서 뒤늦게 해본 이들이 늘어난 정도다.

1, 2편이 E.T.나 구니스 같은 80~90년대 미국 영화 감성을 녹인 소년 모험물이었다면, 3편은 미국 시골 마을에서 시작되며, ‘가족’이라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운다.

게임은 지금 봐도 전형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다. 슈퍼패미컴 RPG보다 훨씬 다채로운 캐릭터 동작을 보여주며, 배경과 NPC 모든 게 참신하다.

특히, 전투에선 BGM의 박자에 맞춰 버튼을 누르면 콤보 공격이 나가는 독특한 시스템이 있다. 전반적인 전개는 어린이가 주역인 RPG치고는 심오하고 과격한 편이며, 엔딩은 황당과 충격 사이를 오간다.

END 화면에서 조작하게 하는 엔딩은 처음 봤다. 전작과 달리 감정에 호소하는 장면이 꽤 있는 편이다.

게임에 문학적 감수성을 담으려고 애쓴 것 같은데, 이 부분에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연출, 독특한 전투 시스템, 감정선을 건드리는 세밀한 서사는 인상적이었다.


엔딩 본 날 - 2025년 12월 8일

2025-11-22

마수왕

슈퍼패미컴이 저물기 시작한 1995년에 나와 높은 완성도에도 묻혀 버린 횡스크롤 액션 게임.

마왕의 부활로 인류가 멸망하고, 지상이 지옥처럼 변한 가운데, 주인공 아벨은 마왕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마굴로 쳐들어간다.


인간들이 감금당하거나 고문당하는 모습, 여성형 괴물을 잡아먹는 장면 등, 슈퍼패미컴에선 보기 드문 잔혹한 연출이 나온다.

각 스테이지의 보스를 쓰러뜨리고 얻는 크리스탈 색상에 따라 주인공이 변신할 수 있는 마물의 종류가 달라지는 점이 특징이다.
변신 형태에 따라 스테이지 공략 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에 전략적 재미가 있다.

슈퍼패미컴의 회전·확대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 보스가 인상적이며, 엔딩도 두 가지로 나뉘는 등,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발매 시기상 쟁쟁한 경쟁작들에 밀린 데다 개발사가 소규모라 홍보가 부족해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이 되고 말았다.

한국어 패치도 나왔는데, 딸의 음성 대사까지 우리말 녹음으로 교체해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엔딩 본 날 - 2025년 11월 22일
2025-11-17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2 이루와 루카의 신기한 열쇠

게임보이와 플스1으로 나왔던 게임의 3DS 리메이크작.
3D 그래픽으로 바뀌었고, 신규 요소가 추가되어 원작을 해본 사람도 새로운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전투 시스템은 드퀘 로토 삼부작 HD-2D 리메이크보다 이게 더 낫지 않나 싶다. 일단 전투가 랜덤이 아닌 심볼 인카운트고, 아군의 행동이 다 보인다.

또한, 거대 몬스터가 필드나 던전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은 도트 시절엔 느낄 수 없는 박력을 준다.

몬스터 수는 드퀘10의 몬스터까지 들어가서 대폭 늘었다.

스토리는 드퀘 본편에서 자주 나왔던 전개 방식인데, 호리이 유지가 쓴 각본은 아니라서 특유의 센스는 빠져 있다.
굴곡 없는 왕도물이라 스토리보다는 몬스터 육성과 전투에 비중을 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엔딩 이후에는 추가 스토리가 열리며 강력한 보스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드퀘4의 에스타크도 나오는데, 적이 아닌 아군이고, 버전업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파고들기 요소가 많은 편이라 길게 하면 100시간도 넘게 즐길 수 있는 게임.


엔딩 본 날 - 2025년 11월 17일

2025-11-01

드래곤 퀘스트 2 HD-2D 리메이크

드퀘2는 슈퍼패미컴판과 게임보이판으로 해봤지만, 이번 리메이크는 새로운 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각 인물의 서사가 대폭 보강되면서, 원작에서 흐릿하게만 느껴졌던 동기와 성격이 훨씬 또렷해졌다.
오케스트라 버전의 BGM은 예술.

그리고 운좋게 ‘용사’로 태어나 고귀한 취급을 받는 걸 꼬집는 대사가 나오는데, 완전무결한 영웅상을 의심하는 요즘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고전 드퀘의 시스템이 지금하기엔 불편하고 힘들어서 여러 편의 기능을 넣은 건 좋은데, ‘무적 모드’는 선을 넘은 감이 있다. HP가 절대 0이 되지 않으니 방어력 성장도, 회복 아이템도 필요 없어져 게임성이 사라진다.

가장 주목할 추가 요소는 사말토리아 왕자의 여동생이 동료 합류다. 왕자가 병으로 쓰러지는 게 여동생이 정식 동료로 합류하는 계기가 된다. 대사가 많아 비중이 꽤 높다.

12살에 세상을 구하러 싸운다. ㅋ 오빠와 같은 용사의 핏줄이니 그런 특권이 있다.

엔딩 이후엔 추가 요소를 즐길 수 있다. 새로운 보스가 나오는 듯.

신규 팬이 유입될 만큼은 아니지만, 과거 드퀘2를 재밌게 즐겼던 사람이라면, 옛 추억에 새로운 살을 덧붙인 이 버전을 즐길 가치는 충분하다.


엔딩 본 날 - 2025년 11월 1일

2025-10-31

드래곤 퀘스트 1 HD-2D 리메이크

패미컴판 원작은 짧고 단출했지만, 이번 리메이크판은 추가된 요소가 많아 볼륨이 제법 늘었다.

존재감 없던 주변 인물에 개성이 더해지고 성우 연기까지 들어가면서 생동감이 생겼다. 다만, 주인공까지 말을 하니 원작을 즐겼던 나로선 조금 위화감이 든다.
옛날엔 상상으로 채웠던 부분들이 전부 명확해져서 원작의 신비감과 해석하는 재미가 사라진 것 같다.

설정에서 난이도를 조절하면, 다음 목적지, 지도, 보물 상자 위치까지 다 표시되니  원작처럼 고생할 일이 없다. 덕분에 진행은 빠르지만, 모험의 긴장감은 사라진다.

패미컴용 드퀘 1, 2편이 일본에서 대히트 치던 시절은 한국에 패미컴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80년대 국내에선 즐긴 사람이 드물었고, 1993년 슈퍼패미컴판부터 좀 알려졌지만, 후속작들에 견주면 너무 밋밋해서 반응이 크진 않았다. 따라서 이번 리메이크판도 큰 기대는 금물이다.

또한, 스위치판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건물이나 마을에서 나올 때마다 로딩 있는 건 살짝 짜증이 난다. 대단한 그래픽도 아닌데, 로딩이 웬말?

스토리야 별 논할 것 없는 왕도물이고, 몇 가지 재미 요소를 꼽자면, 적에게서 로라 공주를 구한 뒤, 왕에게 데려다주지 않고, 둘이서 모험을 이어갈 수도 있다.

혼자 외롭게 싸우는 주인공이니 데이트라도 해야겠지. 공주를 데리고 다니는 상태에서 여관에서 자면, 여관 주인이 즐겁게 지내셨느냐고 한다.

그리고 후속작과 연관성이 더 강해졌다. 용왕을 선동한 흑막이 따로 있다든가...

요즘 기준에서 보면 많이 모자르겠지만, 태초의 JRPG가 궁금하면 이걸로 체험하는 것도 괜찮다.


엔딩 본 날 - 2025년 10월 30일

2025-09-17

두근두근 문예부!

2017년 미국인 개발자 단 살바토가 주축이 되어 제작한 인디 게임.

일본 미소녀가 등장하는 비주얼 노벨 장르인데, 미국인이 만들었다는 점이 신기했고, 일본인 캐릭터에 별다른 위화감이 없었다.
상상력과 분석력을 발휘하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문화권 작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사례.

게임의 시작은 남자 고등학생이 여자 부원 셋뿐인 문예부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평범한 순애물, 치유물, 혹은 하렘물이 아닐까 싶지만, 1회차 막판의 사건 이후 전개가 막장 공포물로 급변한다.

밝고 귀엽게 보이던 미소녀들이 사실은 각자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이 반전으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했기에 큰 충격은 없었고, 1회차에서 엔딩까지 이어지는 전개가 다소 지리멸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캐릭터 중 한 명이 자신이 게임 속 존재임을 자각하고 플레이어를 영원히 게임 속에 가두는 장면은 신선했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또한 독특했는데, 힌트가 나오긴 하지만, 해결책이 ‘파일을 삭제하는 것’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엔딩 본 날 - 2025년 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