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백영웅전 PC판

환상수호전 시리즈를 만든 제작진이 세운 래빗 앤드 베어 스튜디오의 JRPG 2024년작. 이 게임의 디자인과 시나리오를 맡았던 CEO 무라야마 요시타카가 발매 두 달을 앞두고 다발성 장기 부진으로 급사하는 바람에 유작이 되었다.

환상수호전의 정신적 후속작답게 100명이 넘는 동료가 등장한다.
스토리는 연합국 군대에 입대한 소년 노아가 저항군 리더로 성장해 룬의 힘을 이용해 대륙을 정복하려는 제국군과 싸운다는 내용.

그래픽은 2024년 기준으론 좋다곤 할 수 없지만, HD-2D와 비슷한 표현 방식을 이용해서 옛날 JRPG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 좀더 세련된 그래픽을 보여준다.
아쉬운 점은 고전 JRPG의 불편한 요소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템포 느린 랜덤 인카운터, 정해진 곳에서만 가능한 세이브, 잦은 로딩, 부족한 아이템 공간 등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

게임의 컨텐츠는 풍부하다. 도시 발전시키기, 낚시, 레이스, 교역, 팽이 대결, 요리 대결, 카드 배틀 같은 부가 컨텐츠가 많아 JRPG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다만, 이 부가 컨텐츠들의 난이도가 적절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론 성가시기만 했다.

이 게임 최대 특징인 120명 동료 전부 모으기는 빡세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지만, 몇몇 캐릭터는 영입 조건이 피곤하다.
리드는 팽이 대결을 여러 번 이겨야 얻을 수 있는데, 팽이 명인 찾는 것도 성가시고 이기려면 강한 팽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팽이 찾으러 여러 군데 다녀야 한다. 욕 나오는 조건이다.그밖에 교역으로 얼마 벌어야 한다거나 요리 대결 여러 번 이겨야 하는 조건 역시 피곤했다.

전쟁은 딱히 할 게 별로 없어서 전략성이 없었다. 대충 해도 이겼다. 1대1 대결은 일반 전투랑 또 다른데, 이것도 그냥 운인 것 같다. 재미 없게 왜 이리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평이하게 진행되던 중에 한 여캐가 암살당하는 장면에서 놀랐다. 그래도 다시 살릴 방법이 있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그 전까지 동료를 다 모아야 죽지 않을 수 있었고, 그게 진엔딩 조건이기도 했다.
그걸 알고 나니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진엔딩은 별 거 없었다. 한 캐릭터의 장면이 추가되는 것 말고는 노멀 엔딩과 별 차이가 없어서 실망했다. 고생해서 동료 다 모았는데, 보상이 너무 적다. 숨겨진 끝판왕이 나온다든가 그 캐릭터랑 주인공이 이어진다는가 하는 게 없어서 실망이 크다.
이걸 미리 알았다면, 굳이 동료 다 모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토리는 너무 평이해서 아쉽다. 캐릭터도 120명이나 나오지만, 각자의 이야기가 거의 없다시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끌리지 않는다.
2024년에 이런 고전 JRPG의 계승작에 끌리는 팬이라면 보통 30대는 훌쩍 넘은 어른일 텐데, 스토리에 좀더 어른스러움을 가미해도 좋지 않나 싶다.
오글오글한 대사, 절대악과 절대선, 현실성 없는 이상적인 캐릭터들에 감동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

고전 JRPG의 팬으로 반가웠고, 향수를 느끼기도 했지만, 2024 기준으로 보면 아쉬운 작품.

엔딩 본 날 - 2024년 4월 30일

2024-04-17

슈퍼 알레스터

1992년 4월 슈퍼패미콤용으로 발매된 슈팅 게임 알레스터의 다섯 번째 작품.
세계관과 스토리가 MSX용 전작들과 전혀 무관하며 등장인물도 새로운 인물들이다. 시스템도 좀 달라져서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1992년은 슈팅 장르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고, 콘솔에선 알레스터의 인기가 MSX 때와 같지 않아서 게임 잡지에서 별 소개가 없었고, 찾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MSX2 전성기를 겪은 사람에겐 반가웠을 수도 있겠다.

2048년 지구는 우주로부터 온 거대구체의 공격을 받는다. 지구 연합군의 에이스 파일럿 라즈는 알레스터를 몰고 거대구체와 싸우지만, 격추당해 부상을 입고 만다.

그때 거대구체에 잡혀 있다가 풀려난 의사체(意思体) 중 하나인 티는 라즈를 치료해주고, 파손된 알레스터와 융합하여 슈퍼 알레스터가 된다. 슈퍼 알레스트를 몰고 다시 거대구체 섬멸에 나서는 주인공 라즈...

시리즈 전통인지 한 스테이지가 무척 길어서 지루한 면이 있다.

중반에는 슈퍼패미컴이 자랑하는 확대/축소/회전 연출이 있다.

무난한 완성도의 슈팅 게임이지만, 특출난 점이 없어서 밋밋했다. 슈퍼패미컴은 메가드라이브에 견주어 슈팅 게임이 약한 느낌. 다소 밝은 그래픽도 암울한 분위기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고, 통쾌한 맛이 덜하다.

최종 보스를 물리치면, 슈퍼 알레스터에 융합되어 있던 티가 뛰쳐나와 잡혀 있던 동료 의사체들을 풀어주고, 주인공과 함께 떠난다. 의사체 티는 미소녀 모습이다. 미소녀가 얼굴을 비췄던 알레스터 1, 2의 전통을 지켰다.

엔딩 마지막 장면에서 L 또는 R 버튼을 누르면 위와 같은 추가 그림이 한 장 나온다.


엔딩 본 날 - 2024년 4월 16일

2024-04-16

건헤드

건헤드는 1989년 영화 잡지에서 본 일본 영화였다. 우뢰매 정도의 특수효과에도 열광하던 나로선 일본이 세계 최초로 거대 로봇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식에 부러웠다.
이게 PC엔진용 게임도 있길래 하고 싶었는데,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해본다.

영화는 완성도가 낮아 망작으로 끝났지만, 게임은 당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제목만 같고 영화와는 다른 내용이라고 한다. 원작으로부터 55년 후 이야기이며, 건헤드가 우주용으로 개조되었다. 그래서 영화와 달리 배경이 우주다.

컴파일이 제작을 맡아서 그런지 알레스트와 유사한 시스템을 지녔다. 4종의 메인 무기와 4종의 서브웨폰, 폭탄을 사용한다.

당시 경쟁 기종이었던 메가드라이브의 슈팅 게임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그래픽도 괜찮고 호쾌하다. 가정용 게임기에서 1989년에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완성도가 아닌가 싶다.

자낙이나 알레스트처럼 게임이 짧지 않다. 스테이지9까지 있어서 체력과 근성이 요구된다. 난이도는 쉬운 편이라고 하는데, 나한텐 어려웠다.

막판엔 전에 싸웠던 보스들과 다시 싸운다. 끝판왕은 어울리지 않게 여인이다. 아마도 컴퓨터가 만들어낸 홀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여인을 없애면 본체가 드러난다.

원래는 스타 솔저의 속편으로 기획되었다가 건헤드 판권을 취득하자 부랴부랴 건헤드로 바꿨다고 한다. 영화 건헤드의 느낌은 전혀 없다. 기껏 판권 사와놓고 제목만 빌린 것이다. 영화 마케팅에 편승을 노렸겠지만, 영화가 망해서 플러스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엔딩 본 날 - 2024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