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6

닌자용검전 1을 다시 하다

문득 패미컴판 <닌자용검전>을 다시 하고 싶어져서 에뮬 mesen으로 실행했다. 어린 시절 세운상가에서 패미컴 본체와 함께 사온 롬팩이 닌자용검전이었다. 패미컴 액션 게임 중 가장 오래 즐겨서 애착이 깊다. 그때 악전고투 끝에 간신히 끝판왕까지 갔지만, 공략 방법을 몰라서 포기했다. 지금은 에뮬 강제세이브와 치트가 있으니 엔딩 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오프닝 애니메이션은 지금 보면 별것 아니지만, 당시엔 가정용 게임기에서 이 정도만 나와도 멋있기 그지없었다. 몇 번이나 보면서 감탄했다.

오프닝 말고도 스테이지 중간중간에 비주얼신이 나오는데, 당시엔 일본어를 몰라서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지 상상만 할 뿐이었다. 지금은 일본어를 알기에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하면서 할 수 있었다.

스토리는 뭐 특별한 건 없었다. 주인공 류의 아버지가 1대1 결투에서 사망하고 아들에게 용검을 남겼는데, 그것이 사신을 쓰러뜨리는 검이라고 한다. 류는 아버지을 죽인 원수를 찾다가 아버지의 유품인 사신상에 관해 듣고 그것이 사신의 힘을 나눈 두 개의 상 중 하나임을 알게 된다. 사신의 부하들은 그 상을 노리고 CIA도 그것을 막기 위해 개입한다. 그러면서 닌자 가문의 류가 사신과 싸우게 되는 내용.

한 지 오래되었지만, 게임패드로 하던 그 감각이 내 손에 남아 있었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첫 스테이지는 가볍게 클리어.
이 게임은 점프 실력이 매우 중요하다. 뒤로 갈수록 섬세한 점프 기술을 요하는 곳이 많다. 어린 시절 수도 없이 떨어져서 즉사했다.

옛날 패미컴 현역 시절에 스테이지5까진 내 실력으로 자주 갔다. 스테이지5 보스는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로 몸에 닿지 않고 막 칼질하다보면 이길 수 있는데, 재수없게 실수해서 지면, 그 스테이지 한참 전으로 돌아가서 의욕을 상실하게 했다. 너무 가혹한 패널티였다. 그런데도 난 다시 한 적이 많았다. 요즘 게이머들은 이렇게 근성으로 액션 게임을 하진 않을 것 같다. 할 게임이 넘쳐나니 어려우면 때려치우고 다른 거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 시절엔 가진 롬팩이 하나 둘밖에 없어서 계속 이것만 팔 수밖에 없었다. 게임이 비싸고 귀한 시대였다.

옛날엔 끝판왕까지 어찌어찌 갔지만, 마지막 변신까진 못 가고 죽고 말았다. 결국 엔딩을 못 본 채로 롬팩을 떠나보냈다. 이번엔 치트로 힘 안 들이고 물리쳤다. 그 시절에 엔딩을 봤다면 얼마나 뿌듯했을까.

CIA 요원 아이린은 스테이지1 뒤에 처음 등장한 뒤, 류를 도와주는데, 엔딩에서 류가 연인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류하고 눈 맞는 과정이 안 나왔기에 느닷없는 전개로 느껴진다. 알아서 상상하란 건가.

그리고 사신왕을 막는 데 힘을 썼던 CIA의 고위직 포스터는 엔딩에서 야심을 드러낸다. 이 포스터는 2편은 건너뛰고 3편에서야 등장해서 포스를 뽑낸다.

이 게임의 진가는 음악이다. 명곡이 즐비하다. 한 지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1편의 음악이 전설급으로 대우받는다고 한다.
액션 게임으로선 너무 어렵고 짜증나는 요소가 많지만, 패미컴 시절 기준으로 상당히 잘 만든 게임이었다. 패미컴으로 처음 했던 게임이 닌자용검전이라는 명작이어서 이후 패미컴 게임에 빠질 수 있었다. 다시 하는 동안,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추억이 서려 있는 나의 닌자용검전.


엔딩 다시 본 날 - 2022년 9월 26일

2022-09-19

드래곤 퀘스트 10 오프라인 - 눈뜨는 다섯 종족

드래곤 퀘스트 10은 온라인으로 나오는 바람에 해보지 못했는데, 2022년 9월 15일 오프라인 버전이 새로 나왔길래 바로 해봤다. PC판으로 하고 싶었지만, 빨리 구하기가 어려워서 스위치판을 Ryujinx 에뮬로 돌렸다. 두세 번쯤 중간에 튕기는 증상을 겪었고, 전투에서 가끔 랙이 걸렸지만, 엔딩까지 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원작인 온라인 버전은 캐릭터가 훤칠한 체형이었지만, 오프라인 버전은 캐릭터가 짜리몽땅 대두로 바뀌었다. 필요 이상으로 커진 머리가 귀엽지 않고 부담스럽다. 플스2로 리메이크된 로맨싱 사가 1 캐릭터에서 받은 느낌과 같았다.

이 캐릭터 디자인 탓에 저연층 게임처럼 보였다. 시작할 때 주인공 생김새를 고를 수 있는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하나도 없었다. 토리야마 아키라 디자인의 얼굴이 아니다.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니... 크흑
설정이 드래곤 퀘스트 9와 연결된다고 한다. 9편이 내겐 최악이었는데, 그때도 캐릭터 디자인 때문이었다.

그래픽은 2022년에 나온 게임치고 평범하다. 스위치판은 도트가 튀고 끊김도 있는 편이다. 마을 들어가고 나올 때 로딩이 긴 편이라 인내심이 필요했다. 전투나 이벤트 연출은 밋밋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렌다시아의 ‘에테네’라는 섬에 살고 있던 주인공은 명왕 네르겔의 습격으로 일족과 함께 목숨을 잃는다. 사망한 주인공의 혼은 미지의 신전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다른 종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선택한 종족의 마을에서 깨어난 주인공에게 현자 호로는 대륙을 돌며 엠블렘(나라를 구한 자에게 왕이 주는 훈장)을 모으라고 권유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

10개의 엠블렘을 얻는 게 이 게임(Ver. 1)의 목적이다. 방문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면 엠블렘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엠블렘 하나마다 스토리 하나씩 있다는 뜻이다. 크게 10개의 스토리가 있는데, 전반부 5개 모은 뒤엔 스토리가 다소 무거워진다. 스토리는 아주 드퀘답다. 전형적인 왕도물에서 살짝 비트는 호리이 유지 스타일이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여러 번 나왔던 전개가 되풀이되어 뻔한 느낌이다. 특히 과거 세계 나오는 건 너무 진부하다. 드퀘팬이라면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밋밋하기만 한 스토리다.

장점이라면 스트레스가 적다는 점이다. 전투는 랜덤이 아닌 심볼 인카운터라 적을 피할 수 있고, 과거 시리즈와 달리 친절해져서 헤맬 일이 거의 없었다. 누굴 만나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맵에 다 표시되어서 편하다. 던전의 미로도 전혀 복잡하지 않아서 쭉쭉 달릴 수 있었다.

처음엔 맵이 단순하길래 스케일이 작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넓은 세상이 드러났고, 등장인물들과 대사량이 엄청났다. 파고들 요소가 많고, 서브 퀘스트 수도 200개가 넘는다. 다만, 스토리와 깊게 관련된 퀘스트는 적고 단순 심부름이나 아이템 얻기에 치중되어 있어서 난 필요한 것만 조금 했다.

온라인 게임이 원작이라 그런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중 자유도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초반부 종족 선택 이후엔 원하는 순서대로 진행이 가능하다. 어느 마을에 가서 어떤 이벤트를 먼저 진행할지는 게이머 마음이다.

게임에선 중세 판타지에 일본 문화를 섞은 게 많이 보인다. 현자가 열차에서 에키벤(일본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는다든가 엘프가 기모노를 입고 일본식 전통 가옥에 산다든가 나라 사슴공원과 비슷한 곳이 나온다든가... 자국의 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겠지만, 잡탕 같아서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종족이 많이 등장하는데, PC(Political correctness)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엠블렘을 10개 모으면, 주인공 마을을 멸망시켰던 명왕 네르겔과 싸울 수 있다. 네르겔과 만나는 길은 라스트 던전인데도 전혀 복잡하지 않았다. 네르겔을 겨우 물리치니 엔딩. 엔딩 화면에 큰 여운은 없었다.

엔딩 이후에도 게임은 계속된다. 남아 있는 퀘스트들, 희귀 아이템 얻기 등을 계속 즐길 수 있다. 스토리 상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이어지는 내용이 없나 해봤는데, 여기까지 내용이 Ver. 1이고, 2023년에 Ver. 2가 나온다고 한다. 주인공의 고향 렌다시아로 가는 길이 막혀 있어서 뒷이야기를 오프라인 버전으로 즐기려면 새 DLC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실망스런 부분이 많았지만, 드퀘팬이라면 그럭저럭 즐길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스토리는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Ver. 6까지 즐긴 뒤에 다시 평가하고 싶다.


엔딩 본 날 - 2022년 9월 19일

p.s. 일본의 개그맨 콘도 하루나와 똑같이 생긴 인물이 나오길래 혹시 했는데 역시나 이 인물의 성우를 콘도 하루나가 맡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