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30

막말강림전 ONI

슈퍼패미컴이 끝물이었던 1996년에 발매된 RPG. 일본 1190년대를 다룬 전작 <귀신강림전 ONI>로부터 670년 이상 흐른 일본 막부(幕府) 말기가 배경이다. 

일본의 무사 정권이 반막부(反幕府) 세력들을 치려고 만든 조직, 신센구미(新選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신센구미로 들어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역사적인 인물 사카모토 료마와 마주치기도 한다.

중반부 이후 천하오검의 영력을 빌려 오니로 변신할 수 있으며, 특이하게도 등장인물뿐 아니라 각 검도 레벨업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업(業)이라는 수치가 있어서 선행을 베풀면 올라가고 악행을 저지르면 내려간다. 참고로 타인의 집을 뒤져 아이템을 가져가는 건 업의 하락 요인이다. 업이 높을수록 신내림 기술이 강력해지고 전투 후 아이템과 돈의 입수율이 높아진다. 낮으면 그 반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전투에 랜덤으로 참여하는 NPC가 있다. 일본 곳곳에 있어서 찾는 재미가 있다. 아울러 전작보다 서브 이벤트 수가 늘었으며, 해전(海戦)이 생겨서 즐길거리가 다양해졌다.

적응이 필요했던 점은 대사창 글자가 세로쓰기라는 점이다. 일본 전통 느낌 주려고 이렇게 만든 것 같다. 대사창에 세로쓰기 도입한 RPG는 처음 봤다. 생소하지만 좀 지나니 적응할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힐 때가 종종 있었는데, 셀렉트 버튼 누르면 캐릭터가 힌트를 준다. 워프 아이템이 있지만, 파는 곳이 한정되어 있고 워프 마법은 따로 없어서 초반엔 필드를 꽤 걸어다녔다.

조사할 때 주의할 점은 A버튼만 눌러야 한다는 점이다. 방향키와 함께 A버튼을 누르면 조사가 안 된다는 점을 뒤늦게 알았다. 습관적으로 방향키와 함께 A버튼을 누르다보니 조사가 안 되어서 진행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조사 대상 앞에서 A버튼 하나만 눌러야 반응한다.

스토리는 왕도물이지만, 전작의 주인공 일행이 종종 등장해서 반가움과 함께 궁금증을 자아냈다. 전작 인물들이 왜 나오는지 활동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전작 주인공 일행의 활동 무대가 과거라는 것과 미래의 악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천하오검에 담았단 사실이 밝혀진다.

전작보다 스케일이 커져서 미국까지 건너간다. 일본 요괴뿐 아니라 서양 요괴하고도 싸우고, 끝판왕은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이다.

초반부터 에뮬에서 치트를 남발한 탓에 초반 이벤트 하나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냥 무시해도 진행이 되길래 3분의 2 정도 했는데, 결국 미국 해변에서 이벤트가 꼬이는 바람에 더 진행할 수 없었다. OTL
포기하고 유튜브로 엔딩을 확인했다. 주인공 일행은 일본에서 지명수배당해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신세고, 사카모토 료마는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마지막을 장식한다. 여운은 있지만 뒷끝이 개운치 않은 결말이다.

슈퍼패미컴 말기에 나온 RPG인 만큼, 그래픽, 음악 모두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밀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이 정도면 수작 이상의 반열에 올려도 무방한 완성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슈퍼패미컴 끝물에 나왔다는 점, 왜색이 강한 점, 난도가 높은 편인데 제대로 된 공략이 없다는 점 탓에 해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2022-01-28

그라디우스2 MSX 개선판(PSP용)

1980년대 후반, 국산 MSX1 기종인 대우 IQ1000을 보유했는데, ‘메가롬 게임’으로 일컫는 고용량 게임을 하려면, 메모리를 확장해주는 메가램팩을 MSX 슬롯에 꼽아야 했다.

엄마를 졸라서 재미나 본사에서 메가램팩을 손에 넣었고 그때 같이 받은 게임 테이프가 그라디우스2였다. 그 그라디우스2는 재미나의 해킹으로 전투기 메탈리온이 펭귄으로 바뀌어서 나오는 버전이었다. 그 탓인지 난 지금도 원래 주인공보다 펭귄이 친숙하다.

그라디우스2는 옛날에 MSX 에뮬로 깼지만, PSP용 <사라만다 포터블>에 MSX판 그라디우스2가 포함되어 있길래 다시 해봤다. 재밌게도 설정에서 MSX 롬팩 슬롯2 비기를 적용할 수 있다.

카트리지를 YUMETAIRIKU으로 설정하면 과거 MSX 슬롯 2개에 그라디우스2와 꿈 대륙 어드벤처 롬팩을 함께 꼽은 효과가 나온다. 차이점은 메탈리온이 펭귄으로 바뀌고 파워 캡슐이 생선 모양이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 내가 했던 버전이 바로 이것이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PSP 이식판의 특징인데 설정에서 리파인 버전을 선택하면, MSX 원판보다 스크롤이 부드러워지고 색상이 추가되어 약간 보기 좋아진다.

그라디우스2는 1987년에 나온 MSX판이 오락실 버전보다 반년 이상 먼저 나왔다. 설정, 스토리 모두 달라서 거의 별개의 작품이라고 보는 게 낫다. 난 그라디우스2 하면 MSX판이 떠오르는데, 나중에 패미컴판 등을 해보고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다. MSX판에선 보스 전함을 파괴한 뒤, 전함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무기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런 요소가 다른 기종판에는 사라져서 아쉬웠다.

다시 해보니 역시나 무진장 어려운 게임이었다. 적탄이 무수히 난무하는 건 둘째치고, 7스테이지까지 갔다가 다시 7스테이지부터 1스테이지까지 역순으로 진행되는 구성이라 총 14스테이지나 된다. 옛날 그라디우스2 롬팩엔 세이브 기능도 없었으니 엔딩을 보려면 상당한 근성과 체력이 요구되었으리라.

같은 스테이지를 두 번 깨야 한다는 점은 지금 해보니 지루하다. 슈팅 게임인데 굳이 어거지로 길게 만들었어야 했나 싶다.
대신 PSP 이식판은 게임 중 엑스트라 세팅을 불러내는 비기가 있다. 일시적으로 확산 레이저를 쓰거나 적을 느려지게 할 수 있어 어려운 구간에서 유용하다.

끝판왕은 베놈의 전함에 있다. 전함 안이 협소해서 세밀한 조종술이 요구된다. 투명 옵션 기체가 있는 상태이면 끝판왕을 쉽게 부술 수 있다. 아래 포대와 중심부 사이의 오목한 곳이 보스의 공격을 받지 않는 안전지대이다. 옵션 기체를 적의 중심부로 향하도록 두고 안전지대로 가서 쏘면 쉽게 클리어.

엔딩은 스태프롤 없이 그림 3장과 글 조금 나오고 소박하게 끝난다. 그리고 고전 게임답게 다시 스테이지1부터 무한 반복.
이 게임을 처음 해본 게 1988년 서울올림픽 시절이었을 것이다. 지금 해보면 반복 구성 탓에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당시엔 그때까지 즐겨왔던 MSX 저용량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음악과 그래픽을 선보여서 감동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게임.


엔딩 본 날 - 2022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