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1

이스3 PC엔진판

이스3는 메가드라이브 보유 시절에 엔딩을 봤지만, PC엔진판이 궁금해서 해봤다. PC엔진판은 PSP로 다운로드 판매(PSN)된 적이 있어서 PSP용 롬을 구해 PPSSPP 에뮬로 돌려봤다. PSN 게임은 롬만으론 실행이 안 되기 때문에 데이터 파일을 구해서 PPSSPP가 깔린 경로의 GAME 폴더에 넣어줘야 한다. 이스3를 PC엔진 에뮬로 안 돌리고 굳이 PSP 에뮬로 돌리는 까닭은 음질과 화질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이스3를 레트로아크 PC엔진 코어로 할 때랑 PPSSPP로 할 때랑 비교해보니 쉐이더 안 먹은 기본 화면 상태에서 PPSSPP 쪽이 더 보기 좋았고, 음질도 PPSSPP 쪽이 더 좋게 들렸다. 음질 차이는 아마도 PC엔진판 롬 파일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PC엔진판 이스1-2, 4도 PPSSPP에서 돌리는 게 더 좋았다.

이스3는 게임기로는 패미컴, 슈퍼패미컴, PC엔진, 메가드라이브, 플레이스테이션2로 이식되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메가드라이브판이었다. 그 시절에 직접 해봤을 때도 잘 만들었다는 인상이 있었다. 무엇보다 마을 음악이 너무 좋았다.

PC엔진판은 알파 시스템이라는 제작사에서 이식했는데, 액션에서 메가드라이브의 그 느낌이 아니었다. 아돌 움직임이 종이인형처럼 가볍고, 타격감이 약해서 통쾌하지가 않았다. PC엔진판 1, 2편에 있었던 대화 시 캐릭터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연출도 사라졌다. 명색이 CD롬 게임인데, 그래픽 면에서 전혀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메가드라이브판보다 나은 점은 주요 캐릭터 음성이 나오고, BGM이 CD음원이라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좋게 봐줄 부분이 없었다.

게임은 짧은 편이다. 익숙해지면, 한나절이면 깰 수 있다. 마을은 딱 하나만 나오고, 던전도 몇 개 없다. 미로도 복잡하지 않아서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다만, 후반부에 나오는 보스는 어려웠다. 패턴을 알고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레벨을 최고로 올려도 깨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갈바란이 최종 보스답게 어려웠다. 메가드라이브 보유 시절에도 갈바란은 내 실력으로 못 깨고 친구가 깨는 걸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공략법은 파워링 또는 프로텍트링 장착한 뒤, 수 차례 점프 칼질하는 것. 회복 아이템 필수다. 이래도 힘들어서 PPSSPP의 강제 세이브를 이용해 간신히 깼다.

이스 시리즈 처음이자 마지막인 횡스크롤 방식의 게임이다. 너무 바뀌어서 이게 나올 당시엔 이스1, 2를 즐겼던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스가 원더보이2가 되었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볼륨 면에선 원더보이2보다도 짧은 게임이다. 나는 이스1, 2보다 이스3를 먼저 해봐서 그렇게 실망하진 않았다. 완성도 높은 메가드라이브판으로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 해보니 스토리도 액션도 굉장히 단순한 게임이었다.

PC엔진판은 허드슨이 발매하긴 했지만, 실제 이식은 알파 시스템이 했다. 이스4처럼 허드슨이 직접 이식했다면, 타격감과 그래픽 연출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이스 명성에 걸맞지 않은 이식 수준이었다.
그래도 PC엔진판이 어떤지 궁금증을 해소한 것으로 만족한다. 이스3는 되도록이면, 메가드라이브판이나 X68000판을 권한다. 더 최신 시스템을 원하면, 다른 게임으로 보일 정도로 리부트&리메이크된 <이스 페르가나의 맹세>가 있다.


엔딩 본 날 - 2020년 12월 31일

2020-12-29

이스8 라크리모사 오브 다나

2016년 PS VITA, 2017년 PS4로 나온 뒤, 2018년 PC로 이식된 작품. 초반만 잠깐 살펴본다는 게 점점 빠져들어서 엔딩까지 달렸다.

시간대는 이스5와 이스6 사이라고 한다. 이스5의 주 무대였던 산드리아 대륙에서 여객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던 아돌은 바다 괴물의 습격으로 다른 승객들과 함께 세이렌 섬으로 표류하게 된다. 무인도에서 뿔뿔이 흩어진 승객들을 찾고 생존하며 탈출을 노리는 이야기.

기존 이스 시리즈와 달리 섬 한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고, 과거 회상 빼면 섬에 마을이 없다. 아돌과 승객들이 만든 임시 거처가 섬의 유일한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낚시도 하고 요리도 하고 사냥도 하고 유유자적 무인도 생활인데, 그러면 재미없으니까 섬에 괴물이 나오고 몰락한 과거 문명이 나온다.

섬에서 아돌은 잘 때마다 꿈을 꾸는데, 그 꿈은 이 섬에 있던 옛 고대 왕국에 관한 것이었다. 그 고대 왕국에서 다나 이클루시아라는 소녀가 무녀로 추대된다. 다나에겐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서 아돌 일행의 행동을 보게 된다. 아돌의 꿈은 섬의 과거, 다나의 예지는 섬의 미래를 내다보며 서로 이어지는 것이다.


베일에 싸인 무인도 탐험하는 게 재미난다. 그래픽은 요즘 기준으론 별로라고 하지만, 고전 RPG를 주로 했던 나에겐 괜찮아 보였다. 섬의 경관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무인도에서 처음 만나는 여성 캐릭터 락샤가 섹시해서 눈이 즐거웠다. 엉덩이 묘사에 공을 들인 것 같다. 중반 이후에 나오는 여주인공 다나도 노출이 많은 옷차림이라서 남성 게이머의 신경을 자극한다. 게임에 눈이 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오픈RPG까진 아니지만, 공략 순서에 어느 정도 자유가 있어서 좋았다. 섬 곳곳에 있는 표류자 구조, 표류자들이 주는 서브 퀘스트, 경치 좋은 곳 발견, 괴물 사냥, 낚시 등 파고들 요소가 많았다.

전투는 액션이라서 덜 지루했다. 거대 괴물들이 부드럽게 움직여서 실감 났다. 다만, 괴물의 습격을 막는 요격전은 지나치게 잦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힘들었다.

이 게임은 엔딩이 진엔딩, 노멀엔딩, 배드엔딩으로 나뉘는데, 명성치 200을 넘겨야 진엔딩을 볼 수 있다. 명성치 200을 넘기려면 다른 표류자들이 주는 의뢰와 각종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한다. 나는 주로 거주지 사수 이벤트로 명성치를 많이 벌었다. 노멀엔딩과 베드엔딩은 진엔딩에서 일부가 삭제된 느낌이라 진엔딩이 완전한 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진엔딩 루트여야 진짜 끝판왕이 나온다.

스토리는 한 고대 왕국의 진화와 종말이 얽힌 이야기다. 후반부 전개는 일본 RPG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도로 흘러간다. 한 인물의 정체가 반전이긴 했지만, 예상이 어렵지 않았다. 스토리보다는 무인도 탐험하는 재미, 캐릭터들의 매력, 다채로운 이벤트가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인도에서 살면서 가족애,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고, 여주인공 다나는 기구한 삶을 보내서 애뜻했다.

최근 이스3, 4, 5를 한 뒤, 8로 넘어왔지만, 이게 이스 시리즈라는 느낌은 거의 안 들었다. 아돌과 도기가 나올 뿐, 옛날 이스와는 시스템과 그림체가 너무 달라져서다. 스토리 상 연결점도 거의 없었다. 주인공 옷을 1, 2 시절 복장으로 바꾸면 그나마 이스 느낌이 조금 들었다. 굳이 이스가 아니어도 되었을 게임이다. 그래도 내가 해본 이스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이 8편을 꼽겠다. 27시간(치트 써서 이 정도. 보통은 60시간 이상 걸림) 동안 몰입해서 했다.


엔딩 본 날 - 2020년 12월 29일

2020-12-24

이스4 MASK OF THE SUN 한글판

이스4는 팔콤의 정식 PC판과 허드슨의 PC엔진판을 깼기 때문에 더 안 하려고 했는데, 슈퍼패미컴판을 옛날에 못 깬 것이 걸려서 결국 해봤다.

이스4가 제작되던 당시엔 팔콤이 바빠서 다른 제작사들에게 기획과 시나리오 초안만 넘기고 알아서 만들라고 했다. 그 결과, PC엔진판은 허드슨이, 슈퍼패미컴은 통킹하우스가 담당했는데, 전혀 다른 게임으로 보일 정도로 연출과 전개에서 차이가 크다.

슈퍼패미컴판을 만든 통킹하우스는 원래 게임 제작 실력이 별로다. 통킹하우스 게임을 선택해서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다. 90년대에 B급, C급 게임 다수 양산한 제작사다. 팔콤이 왜 통킹하우스에 외주를 줬는지 미스터리다. 그래픽과 음성은 슈퍼패미컴의 한계라 그렇다 쳐도 연출에서 최선의 결과물은 아니었다고 본다.

기대를 접고 해봤다. PC엔진판을 해본 뒤라 밋밋하긴 했다. 등장인물 일러스트가 안 나오고 대사에 캐릭터 묘사도 부족해서 스토리 이해엔 어려움이 있다. 비공식 한글판으로 했는데, 번역이 구글 번역 돌린 것 같은 수준이었다. 그래도 한글이 반갑긴 했다.

기대를 안 하고 하니까 게임은 그럭저럭 즐길만했다. 2D 몸통 박치기는 충실히 재현되어서 고전 이스의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음악도 친숙한 명곡들이 나와서 즐거웠다.

슈퍼패미컴판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 아돌이 말을 한다는 점이다. 상대에게 대꾸하는 장면이 많다.

PC엔진판보단 쉬운 편인데, 리리아 살리는 부분은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래전에 실기로 했을 때도 이 부분에서 막혀서 결국 포기했다. 이번엔 일본 웹 공략에 의지해서 길을 잘 찾을 수 있었다. 워프 마법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이스의 명성치곤 너무 소박하게 만들어서 PC엔진판보다 좋은 평가를 주긴 어렵지만, 지금이라도 엔딩을 봐서 속 시원했다. 이제 이스4는 모든 기종판의 엔딩을 다 봤다.


엔딩 본 날 - 2020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