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7
사가2 비보전설 GB
1편에 이어 2편 플레이. 2편은 닌텐도DS판으로 리메이크된 것도 있지만, 게임보이판을 해봤던 이들 사이에서 졸작이라는 평이 있어서 오리지널인 게임보이판을 골랐다.
닌텐도DS판은 대두 캐릭터에 어린애 취향의 색감인 게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3편도 DS용으로 리메이크되었는데, 잠깐 하다가 이질감에 그만둔 적이 있다. 추억을 파괴하는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다. 원더스완판처럼 원작의 느낌에 컬러만 입혔으면 어땠을까 싶다.
게임보이용 사가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래픽이 소박하다. 게임보이를 실기로 해본 기억이 없는 요즘 세대가 굳이 이 게임을 할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당시에는 휴대용 게임보이로 제대로 된 RPG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RPG 흉내를 낸 수준이 아니라 지금 봐도 제대로 만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흑백이고 단순한 점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것이 게임보이의 매력 아닐까.
2편은 1편이 나오고 1년 뒤인 1990년 12월 14일에 발매되었다. 전작의 요소를 그대로 살리면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1편은 주인공이나 조연들의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2편은 달랐다. 주인공과 아버지는 캐릭터가 살아 있다.
전작이 단 4개의 세계만 나온 데 반해 2편은 9개의 세계가 나온다. 플레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다채로운 세계들이 나와서 스케일이 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사람의 몸속 세계도 나오고, 일본 게임답게 에도 시대도 나온다. 하지만 에도 시대에 기계병이 나타난다든가 상점에 총이 판다든가 하는 혼돈의 세계다. 적 보스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등장한다. 비너스가 통치하는 세계는 미의 여신답게 미를 숭배한다. 못생겼거나 장애인이면 왕국에서 추방해버린다. 스토리가 흥미롭게 짜여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77개의 비보를 찾는다며 아내와 자식을 두고 떠난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 세상을 구한다든가 마왕을 무찌른다든가 그런 거창한 동기가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으로 움직인다. 학교의 동급생들도 주인공을 도와 같이 떠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고고학자의 모습으로 나온다. 그가 과거에 성배와 성괘를 지켰다는 대사를 보면 인디아나 존스를 모델로 삼은 게 확실해 보인다. 엔딩 때까지 자주 등장하며 주인공에게 오해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가 크리스탈을 찾아다녔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크리스탈은 전작에만 나왔던 아이템이기 때문에 전작의 일행 중 한 명이라는 설도 있다.
PC용 RetroArch로 하다가 3DS용 GameYob으로 엔딩까지 봤다. 치트 파일이 RetroArch용과 호환이 안 되어서 애먹었지만, 문법을 안 뒤에는 수월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전투 없음+이동 속도 2배 치트를 써서 아주 쾌적하게 했다.
1편은 다소 심심한 인상이었지만, 2편은 게임보이 RPG 중 최고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시 게임보이에서 이 정도의 RPG를 구현했다는 게 놀랍다. 사가 3편은 2편 끝내고 이어 했지만, 2편보다 딱히 스케일이 큰 것도 아니고 스토리도 정돈된 느낌이 아니라서 중도에 그만두었다. 사가 3부작 중에선 2편이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엔딩 본 날 - 2017년 7월 27일
2017-07-25
마계탑사 사가 WSC
게임보이 간판 RPG <SA·GA>의 리메이크판. 게임보이판을 잡지에서 처음 봤을 때, 그 작은 게임보이에서 RPG가 돌아간다는 게 신기해서 꼭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일본어를 못할 때라 우선순위에서 늘 밀렸다. 결국 2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에뮬로 해볼 수 있었다.
주인공이 사는 세계의 중심에는 신이 만들었다는 탑이 있다. 그 탑의 최상층에는 낙원이 있다고 한다. 많은 이가 최상층에 도전했지만, 탑 안에는 마물들도 있어서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주인공도 이 탑에 오르려는 젊은이 중 하나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싫어서 낙원을 꿈꾸는 것이다. 탑 안에는 바다만 있는 대륙, 멸망한 도쿄로 보이는 대륙 등등 여러 세계가 있다. 윗층으로 가는 문의 봉인을 풀려면 그 세계에서 크리스탈을 찾아야 한다.
북미 쪽에는 '사가'가 아니라 '파이널 판타지'란 이름을 붙여서 출시했는데, '크리스탈'의 존재 말고는 파이널 판타지와 관련된 부분이 없다. 그냥 인지도를 위해 파이널 판타지란 이름에 기댄 것이다.
이 RPG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 주인공의 성별과 종족을 시작할 때 선택할 수 있으며 종족에 따라 능력치 올리는 방법이 다르다. 초능력자는 전투를 통해 능력치를 올리지만, 인간은 상점에서 구입한 약으로 능력치를 올리고, 몬스터는 전투 후 나오는 먹이로 모습을 바꿔간다. 레벨이 없는 특이한 시스템이다. 무기와 마법은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다. 다 쓰면 사라진다. 심지어 방패마저 그렇다.
옛날 RPG답게 힌트가 부족하고 불친절하다. 대사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고 잘 생각해야 한다. 공략 없이 하면 꽤 헤매지 않을까 싶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하드보일드하다. 주인공들이 특별히 정의감 넘치진 않는다. 최상층에 가기 위해 적을 물리칠 뿐이다. 그 와중에 몇몇 등장인물들은 죽어나간다. 성검전설1처럼 비장함이 있다.
탑 안의 세계 중에는 도쿄도 나온다. 괴물 봉황 때문인지 전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멸망한 모습이다. 아키하바라, 신주쿠, 아메요코 시장이 나온다.
난이도나 전투 인카운트율은 적당한 편이다. 레벨 올리기나 헤매는 일 제외하고 7시간 이내로 최상층 보스까지 갈 수 있다. 끝판왕의 정체는 신이었다. 심심한 신이 탑을 만들었고, 인간들이 도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겼던 것이다. 낙원을 꿈꾸며 고생 끝에 올라온 주인공들은 빡쳐서 신에게 싸움을 건다.
이 전투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때려도 신이 죽지 않는 것이다. 에뮬레이터와 롬파일을 바꿔도 마찬가지. 에디터로 능력치를 과도하게 올려서 뒤틀린 건가? 도저히 클리어가 안 되길래 포기하고 유투브에서 엔딩을 찾아서 봤다. 엔딩은 소박했다.
스토리나 캐릭터성보다는 게임성에 중점을 둔 RPG로 보인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수작인 건 틀림없다.
엔딩 본 날 - 2017년 7월 25일
2017-07-21
서풍의 광시곡 PS2판
서풍의 광시곡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한 스토리와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어서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PC판으로 도전했지만, 전투가 시간이 너무 걸려서 중도 포기했다. 그리고 몇 년 지난 뒤,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어서 시작했다. 이번엔 PC판이 아닌 플레이스테이션2 일본판으로 했다. PC 국내판의 일러스트가 훨씬 마음에 들긴 했지만, 랜덤 전투 없애는 치트 쓰려면 플스2판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일러스트는 원작이 훨씬 나아 보인다. 일본인 취향엔 어떨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원작의 일러스트가 비장해서 좋다. 플스2 일본판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바꿔버렸다. 그것 말고는 일본판이 더 좋다. 걸음 속도도 빨라졌고 시스템이 쾌적해졌다. 그래도 전투는 랜덤에 턴제로 이동하는 방식이라 시간이 너무 걸려서 치트를 썼다. 레벨99, 전투 없음으로 하니 뺑뺑이 돌리는 미션이 수월했다. 그냥 했으면 너무 짜증나서 또 중도포기했을 것 같다.
초반 스토리는 마음에 들었다. 귀족이었다가 모함으로 수용소에 갇히는 주인공.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린다. 드래곤 퀘스트5의 주인공이 생각나기도 했다. 주인공은 악마성 월하의 야상곡에 나오는 알카드와 비슷하게 생겼다. 긴 흰 머리에 검은 옷을 입으니 더욱 더 비슷하다.
흔한 RPG의 주인공과 달리 정의감이 아니라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점이 좋았다. 왕도 RPG에선 주인공이 왜 목숨을 걸고 악당들과 싸우는지 공감이 안 될 때가 많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에겐 감정이입이 되었다. 누구라도 저런 일을 겪으면 저럴 수 있다.
여주인공 메르세데스의 모습은 국내판이 청순해서 좋았다. 일본판은 귀족 느낌은 물씬 났지만, 너무 화려해서 얄미웠다. 주인공과 메르세데스가 피아노 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듣기 좋은 연주다.
동영상은 한국판이 그대로 들어갔다. 일본판인데 몇몇 동영상에 있는 한글이 그대로 보인다. 일본 게이머가 봤을 땐 어떤 느낌이었을까?
전반부는 긴박하고 다음이 궁금했는데, 후반부에 심부름꾼 일로 여기저기 맴돌게 해서 늘어지는 부분이 있다. 워프 같은 아이템이 없어서 모든 곳을 일일이 걸어서 가야 하는 점도 성가셨다.
그리고 등장하는 여인들 중 셋이나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끌리게 되는 과정은 보여주지 않아서 느닷없는 감은 있었다.
이게 끝판왕이겠지 하는 부분에서 안 끝나고 계속 보스전이 이어진다. 진엔딩 루트에선 주인공이 죽고 나서도 전투가 있다. 진엔딩은 비장하고 좋았다. 그리고 최악의 엔딩이라 할 수 있는 복수귀 엔딩도 봤는데, 그건 RPG에서 보기 드문 베드엔딩이었다.
어렵고 성가신 부분이 많긴 했지만, 스토리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엔딩 본 날 - 2017년 7월 21일
2017-07-16
이스4 태양의 가면 PS2판
슈퍼패미컴판 이스4의 비공식 한글판이 나온 뒤로 문득 이스 시리즈에 관심이 갔다. 이스4는 슈퍼패미컴판과 PC엔진판을 잠깐 해봤기 때문에 이번엔 플스2판을 해보기로 했다.
이스4는 네 가지 버전으로 나왔다. 같은 원안을 가지고 네 회사가 독자 해석으로 만들다보니 배경만 비슷하고 세부 내용이 많이 다르다. 처음 나온 건 슈퍼패미컴판이었다. 제작을 맡은 톤킨하우스가 그렇게 뛰어난 곳이 아니다보니 결과물도 그리 멋지지 않았다. 난 PC엔진판 이스 1~2편을 해봤기 때문에 음성도 비주얼도 없는 슈퍼패미컴판 4편이 당시 밋밋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UFO 디스켓으로 진행했는데, 종반에 어떤 문제로 게임이 깨지는 바람에 엔딩을 못 본 기억이 난다. 지루하게 해서 그렇게 아쉽진 않았다. PC엔진판은 듀오를 가지고 있을 때 CD를 구했는데, 일본어 모르던 시절이라 동영상만 감상하고 엔딩은 못 봤다. PC엔진판 이스4편은 슈퍼패미컴판보다 한 달 늦게 나왔지만, 제작사가 허드슨이다보니 아주 잘 만들었다. PC엔진 RPG 중 베스트5 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팔콤이 준 원안에서 허드슨이 너무 많이 바꾸다보니 나중에 팔콤은 PC엔진판이 아닌, 슈퍼패미컴판을 이스의 '정사'로 인정했다.
훗날 타이토가 플스2판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팔콤 성에 안 찼는지 팔콤은 직접 '셀세타의 수해'란 제목으로 2012년 9월 PS Vita로 이스4의 리메이크판을 낸다. 결국 PS Vita판이 가장 완성도가 높고 정식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PS Vita가 없는 관계로 플스2판을 에뮬로 했다. 요즘 슈퍼패미컴 쪽 RPG를 주로 하다가 플스2 게임을 하다보니 그래픽, 음악, 시스템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플스2판 이스4의 첫 인상은 무척 좋았다. 3D 형식의 게임 플레이는 깔끔해서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게임 내의 캐릭터 일러스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팔콤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없고 B급 야겜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탓에 등장인물들에 그리 끌리지 않았다. 적 캐릭터들도 PC엔진판의 모습이 훨씬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한다. 악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인 리자와 카나에도 전혀 끌리지 않았다. PC엔진판과 슈퍼패미컴판에는 나왔던 리리아가 안 나오는 점도 치명적이었다.
여러 모로 플스2판은 슈퍼패미컴판보단 낫지만, PC엔진판에 비하면 밋밋하다.
중반쯤까지 진행하다가 막판 세이브 내려받아 끝판왕 물리치고 엔딩을 봤다. 끝판왕의 카리스마도 부족하고 엔딩 화면도 아쉽다. 빠르게 결단을 내려서 다행이다.
나중에 PC엔진판으로 다시 해봐야겠다.
이스4는 네 가지 버전으로 나왔다. 같은 원안을 가지고 네 회사가 독자 해석으로 만들다보니 배경만 비슷하고 세부 내용이 많이 다르다. 처음 나온 건 슈퍼패미컴판이었다. 제작을 맡은 톤킨하우스가 그렇게 뛰어난 곳이 아니다보니 결과물도 그리 멋지지 않았다. 난 PC엔진판 이스 1~2편을 해봤기 때문에 음성도 비주얼도 없는 슈퍼패미컴판 4편이 당시 밋밋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UFO 디스켓으로 진행했는데, 종반에 어떤 문제로 게임이 깨지는 바람에 엔딩을 못 본 기억이 난다. 지루하게 해서 그렇게 아쉽진 않았다. PC엔진판은 듀오를 가지고 있을 때 CD를 구했는데, 일본어 모르던 시절이라 동영상만 감상하고 엔딩은 못 봤다. PC엔진판 이스4편은 슈퍼패미컴판보다 한 달 늦게 나왔지만, 제작사가 허드슨이다보니 아주 잘 만들었다. PC엔진 RPG 중 베스트5 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팔콤이 준 원안에서 허드슨이 너무 많이 바꾸다보니 나중에 팔콤은 PC엔진판이 아닌, 슈퍼패미컴판을 이스의 '정사'로 인정했다.
훗날 타이토가 플스2판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팔콤 성에 안 찼는지 팔콤은 직접 '셀세타의 수해'란 제목으로 2012년 9월 PS Vita로 이스4의 리메이크판을 낸다. 결국 PS Vita판이 가장 완성도가 높고 정식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PS Vita가 없는 관계로 플스2판을 에뮬로 했다. 요즘 슈퍼패미컴 쪽 RPG를 주로 하다가 플스2 게임을 하다보니 그래픽, 음악, 시스템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플스2판 이스4의 첫 인상은 무척 좋았다. 3D 형식의 게임 플레이는 깔끔해서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게임 내의 캐릭터 일러스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팔콤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없고 B급 야겜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탓에 등장인물들에 그리 끌리지 않았다. 적 캐릭터들도 PC엔진판의 모습이 훨씬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한다. 악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인 리자와 카나에도 전혀 끌리지 않았다. PC엔진판과 슈퍼패미컴판에는 나왔던 리리아가 안 나오는 점도 치명적이었다.
여러 모로 플스2판은 슈퍼패미컴판보단 낫지만, PC엔진판에 비하면 밋밋하다.
중반쯤까지 진행하다가 막판 세이브 내려받아 끝판왕 물리치고 엔딩을 봤다. 끝판왕의 카리스마도 부족하고 엔딩 화면도 아쉽다. 빠르게 결단을 내려서 다행이다.
나중에 PC엔진판으로 다시 해봐야겠다.
2017-07-11
Angel Halo
건전하기 그지없는 콘솔 게임을 계속 하다보면, 성인만을 위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낄 때가 있다. FM-TOWNS 에뮬을 테스트하다가 이 엔젤 헤일로가 눈에 들어와서 했다. 아주 옛날에 해봤지만, 그땐 오마케로 그림만 보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놀랍게도 PC9801판과 윈도우판에 비공식 한글판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텍스트 비중이 높은 게임은 번역이 중요하다. 뜻은 잘 통했지만, 대사의 맛. 특히 야한 장면 대사가 와닿지 않았다. 직역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말의 맛을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비공식 한글화에서 거기까지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그냥 일본어판(FM-TOWNS판)으로 하기로 했다.
FM-TOWNS 에뮬인 UNZ는 내 컴에서 문제가 있었다. 가상드라이브의 CD 인식이 에뮬에서 되다 안 되다 했다. 결국 FM-TOWNS판을 포기하고 PC9801판을 하려던 찰라, FM-TOWNS판의 SETUP 파일을 윈도우즈10에서 무심코 눌러보니 윈도우판이 설치되었다! 한 CD에 FM-TOWNS판과 윈도우판이 함께 들어있는 모양이다.
PC9801판과 달리 모든 대사에 음성이 나온다. 음성이 나오고 안 나오고는 크다. 게임의 품질이 달라져 보이니까. 하지만, 성우 목소리가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았다.
이 게임에 끌린 이유는 악마로 나오는 릴리스의 매력이었다. 일러스트를 처음 봤을 때 섹시해서 끌렸다. 그러나 성우 목소리는 내가 상상했던 게 아니어서 매력이 반감되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세기말 1999년을 앞둔 어느날. 고등학생인 주인공 앞에 천사 소피아와 악마 릴리스가 전학생으로 나타난다. 소피아는 주인공이 세상을 구할 메시아라고 하고, 릴리스는 주인공이 세상을 파괴할 마왕이라고 한다. 그 둘은 주인공이 메시아 또는 마왕이 되는 데 돕겠다며 유혹한다. 누구를 믿어야 할까? 누구와 섹스하느냐에 따라 엔딩이 변한다.
주인공의 잠자리 상대는 악마와 천사만이 아니다. 소꿉친구를 포함해 여러 여성들이 나온다. 연애 경험도 없는 주인공에게 별안간 섹스할 기회가 막 생긴다. 하렘 요소가 다분하다. 게임에서 진짜로 주인공을 좋아하는 여자는 소꿉친구 마리모뿐이다. 다른 여자들은 주인공을 이용하거나 어쩔 수 없이 안길 뿐.
엔딩은 다섯 종류가 있는데, 해피엔딩은 하나도 없다. 분기는 고작 두세 가지 질문에 따라 확 바뀔 정도로 단순하다. 그만큼 쉽게 엔딩 볼 수 있어서 게임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의 고뇌라든가 감정 교류 등이 잘 나오지 않아서 감정이입하긴 좀 어려웠다. 주제에 비해 내용이 그리 깊진 않다. 다만 그림체는 내 취향이라서 만족했다.
엔딩 본 날 - 2017년 7월 11일
2017-07-08
히어로 전기 - 프로젝트 올림푸스
윙키소프트가 개발해서 1992년 11월 20일에 발매한 슈퍼패미컴용 게임.
건담이나 특촬 작품들을 크로스오버해서 SD 형태로 만든 게임을 콤파치(Compatibility의 일본식 줄임말)라고 하는데, <히어로 전기>는 이 계열 최초의 RPG다.
건담, 가면라이더, 울트라맨의 등장인물들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그것을 막기 위한 부대 'ZEUS'가 결성된다. ZEUS의 구성원은 아무로 레이(건담), 미나미 코타로(가면라이더 블랙), 모로보시 단(울트라맨 세븐), 길리엄(반프레스토 오리지널).
이들이 힘을 합쳐 테러 집단과 맞선다.
이런 크로스오버 게임은 내용이 어수선하고 유치한 게 많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았다. 캐릭터나 설정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서로 잘 어울린다. 슈퍼로봇대전 같은 경우는 너무 많은 작품이 크로스오버되다보니 복잡하지만, 히어로 전기는 크게 네 작품뿐이고 같은 그림체라 깔끔하다.
플레이면에서도 쾌적했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은 버튼 하나로 가능하게끔 되어 있어서 다른 RPG처럼 필드에서 적을 만나지 않는다. 전투는 옛날 파이널 판타지처럼 옆에서 보는 방식이다. 나름 움직이는 모션도 있고 그래픽이 깔끔해서 보기 좋다.
크로스오버 작품답게 건담, 가면라이더, 울트라맨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건담 쪽은 친숙해서 뭘 패러디하고 있는지 금방 알았지만(카뮤와 제리드의 싸움이라든가), 가면라이더나 울트라맨 쪽은 어린 시절 영상으로 본 적이 없어서 생소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이들 이외에 슈퍼로봇대전의 캐릭터들도 나온다. 길리엄 예거(게슈펜스트), 마사키 안도(사이버스타), 슈우 시라카와(그랑존)이다. 길리엄의 경우는 처음에 아군이었다가 끝판왕이 되는 등 비중이 매우 높다. 마사키와 슈우는 스토리에 큰 영향을 안 주는 조연 수준. 후반부에서 그 둘 중 하나를 정식 동료로 할 수 있는 비기가 있다. 나는 슈우 그랑존 선택.
스토리가 난해하진 않았다. 요즘 RPG에 비해 내용이 단순해서 알기 쉬웠다. 피식 웃게 하는 개그도 나온다. 그러면서도 어떤 에피소드는 전설의 고향처럼 으스스하다. 당시 그 에피소드를 보고 공포를 느낀 어린이도 있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론 가볍고 밝은 느낌인데, 게임의 주제는 가볍지 않았다. 적의 보스 길리엄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서 세상의 암울한 미래를 본다. 그래서 그 미래를 바꾸고자 선택한 방법이 기존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세상을 처음부터 새로 만들자는 것이다(왜 그런 결론이... -_-;).
마지막에 그 방법을 선택한 이유에 어떤 반전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묘한 대사만 남긴다.
끝마무리가 개인적으론 아쉬웠지만, 크로스오버 게임치고는 잘 만든 RPG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여러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걸 단 하나만 따르라고 강요한다면 뭘 위해서 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게임 속 아무로 레이의 대사
엔딩 본 날 - 2017년 7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