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8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 PC엔진판 게임 by HUDSON


메가드라이브판을 깬 뒤, 이어서 플레이한 PC엔진판 나디아.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지루하고 작화 붕괴까지 있었던, 무인도편의 시간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라서 썩 내키진 않았다. 외전으로 만들기엔 가장 무난한 시간대이지만, CD표지 일러스트를 보니 B급 냄새가 풍겼다.


게임은 <엘렉트라의 배반>편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게임 본편에 엘렉트라나 네모 선장은 나오지 않지만, 그럼 섭하니까 이렇게라도 보여주는 것이다.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게임은 생각보다 좋았다. 성우도 원작 그대로이고, 작화 붕괴도 없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나디아 일행이 무인도에서 아틀란티스의 유적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원작 애니에는 레드노아가 등장했는데, 여기선 그린노아가 등장한다.


원작에 없던 새로운 히로인, 피시스가 등장한다. 그녀와 장이 친해지는 걸 본 마리가 엘렉트라 닮았다며 나디아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피시스는 13년 전 아틀란티스 붕괴 때 살아남은 아틀란티스 왕국 사람이며, 나디아와 네모 선장에게 엘렉트라처럼 원한(?)을 품고 있다. 그 때문에 나디아 일행을 곤경에 빠뜨린다.


그랑디스 일행과 가고일도 얼굴을 비추지만, 게임에서 메인으로 나오는 적 캐릭터는 고블린이다. 가고일처럼 가면을 쓰고 있으며, 가고일의 부하이지만, 가고일에게 반감을 품고 있다. 블루워터와 그린노아를 손에 넣어서 가고일을 넘어서려는 야망이 있다. 가고일만큼 비열하지만, 카리스마는 그에 못 미치는 것 같다. 가고일 얘기만 나오면 열폭한다.
게임 자체는 무척 쉽다. 버튼 누를 줄만 알면 누구나 두어시간만에 엔딩을 볼 수 있다. 선택기를 한 번씩 다 눌러보면 넘어가니 헤맬 일이 없다. CD 표지에도 써 있듯이 게임보다는 '디지털 코믹'으로 부르는 게 맞다. 이야기가 막 좋고 그런 건 아닌데, 원작 애니의 무인도편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원작 애니의 무인도편이 이 게임의 시나리오였다면 더 재미나지 않았을까.


지금 관점에서 보면 그래픽이나 효과가 초라하지만, PC엔진이 나오던 시절엔 이 정도 음성과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것조차 침을 흘리며 봤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높은 수준이라고 본다. 음성도 없고 애니메이션도 없는 메가드라이브판에 견주면 PC엔진판이 화려하다.

나디아팬은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엔딩 때 원작 애니 OST '내일로'의 보컬 버전인 '바이바이 블루워터'가 나올 때 감동했다.

2016-02-22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 메가드라이브판 게임 by namcot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애니를 최근에 다시 봤더니 게임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잡은 메가드라이브용 게임(1991년작).


다른 나디아 게임과 달리 겉보기엔 RPG 같지만, 사실상 어드벤처 게임에 더 가깝다. 레벨 개념이나 전투가 없고 뺑뺑이 미션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텍스트 선택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닌 일방통행 스토리다. 또, 제작비를 아끼려고 했는지 세이브 방식이 아닌 패스워드 방식이다.
게임으로선 좋은 평가를 내릴 순 없지만, 나디아 팬이라면 할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애니와 다른 놀라운 전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초반부는 원작 애니와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메가드라이브만의 독자적인 전개로 진행되는데, 그 이유는 이 게임이 원작 애니 방영이 끝나기 전에 나왔기 때문이다(애니는 1991년 4월에 방영이 끝났고 이 게임은 한창 방영중인 3월에 나왔음).
제작사 남코는 애니 제작 전의 초안을 가지고 게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애니로 다듬어지기 전의 시나리오를 게임으로 맛볼 수 있다.


나디아 애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화를 꼽으라면 <엘렉트라의 배반>편이었다. 갑자기 엘렉트라가 네모 선장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나와서 무척 놀랐다. 게임에선 그 장면이 가고일과 만나는 부분에서 나온다.


애니에선 노틸러스호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일부가 가라앉는데, 게임에선 가고일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노틸러스호의 승무원들은 전원 사망한다! 그리고 나중에 뉴노틸러스호 대신 노틸러스 2세호가 등장한다.


나디아의 오빠 네오도 등장한다. 그런데 애니와 달리 어린아이 모습으로 등장한다.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바벨탑의 폭발로 조각난 몸이 기계 몸으로 대체되었으니 성장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인 게 맞다. 네오의 죽음도 원작과는 크게 다르다. 나디아와 장을 탈출시키다가 가고일한테 들켜서 죽는다.


엘렉트라는 가고일이 네모 선장에게 쏜 총알을 대신 맞고 죽는다! 그리고 죽기 전에 네모 선장에게 키스해달라고 한다. 네모는 엘렉트라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려고 하는데, 엘렉트라가 나디아 앞이라며 네모 입을 손가락으로 막는다. 애니에선 절대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후, 가고일은 네모와 장을 다 쏴죽인다. 흥건한 피의 묘사... 애니보다 잔혹하다. 원래 네모를 비롯해 노틸러스호 사람들은 다 죽는 걸로 하는 게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원안이었다고 한다. 장은 원작처럼 블루워터의 힘으로 살아난다.


가장 놀라운 점은 애니에서 끝끝내 나오지 않았던 가고일의 맨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고일은 가면을 벗고 자신이 인간을 증오하게 된 이유를 내뱉는다. 가고일은 인간들과 공존하려는 친구 네모의 말을 듣고 인간 세상에 호기심이 생긴다. 그는 인간들을 살피고자 인간 세상을 여행하는데, 그만 도적의 습격을 받아 아내와 자식을 잃고 자신은 왼눈을 실명한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가고일은 인간들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가고일은 장의 아버지를 죽인 것도, 네모가 바벨탑을 폭파하게 만든 것도 다 자신의 계략이었다며 웃는다. 가고일의 과거가 궁금했는데 게임에서나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디아와 장의 확실한 키스신도 나온다. 강렬하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사랑을 고백하는 점도 신선하다.

게임 자체는 그닥이지만, 나디아팬으로선 장면장면 색다른 부분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2016-02-16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텔테일게임즈


텔테일게임즈의 <백투더퓨처>를 너무 재미나게 해서 왕좌의 게임도 했다. 원작의 세계관을 충실히 재현하면서 새로운 스토리를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이야기는 피의 결혼식 직후에서 시작된다. 스타크 가문이 몰락하면서 같은 편이었던 포레스트 가문도 몰락의 위기를 맞는다. 포레스트 가의 자손들이 가문의 붕괴를 막으려고 처절하게 분투한다는 내용. 그러나 왕좌의 게임답게 가차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마구 죽어나간다.


게임으로 분류하기엔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살아남는 자와 대사만 달라질 뿐 내용이 크게 바뀌진 않는다. 흔한 일본 게임처럼 베드엔딩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는 수준은 아니다. 그냥 마음 편히 드라마 감상한다고 보는 게 맞다. 진행이 아주 쉬워서 치트가 존재할 수가 없다. 게임성은 거의 없지만, 성우 연기, 그래픽 다 만족스러웠다.


왕좌의 게임 세계관은 굉장히 하드보일드해서 좋아한다. 쓸데없는 감정 과잉이나 감동 짜내기가 없어서 좋다. 완전히 어른 취향의 세계관이다. 스토리는 좀 빡치지만, 그래서 인상에 깊게 남는지도 모르겠다.


2016-02-10

스타 오션3 디렉터스컷


빚 좋은 개살구 스타 오션4에 실망한 뒤, 1~2편은 그냥 뛰어넘기로 했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3편은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PCSX2로 실행해봤다. 그래픽이야 4편과 견줄 수 없이 초라하고 캐릭터 모델링도 목각인형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10분 해보니 생각보다 연출이나 초반 전개가 좋아서 계속 하게 되었다.
엔딩까지 보고 결론을 말하자면 3편은 4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을 빼면 음악, 성우 연기, 시나리오, 몰입감 등 모든 면에서 나았다.


스타 오션4는 2096년(우주력 10년)의 이야기였고, 3편은 무려 762년 뒤인 2858년(우주력 772년)이 무대다(그 사이의 이야기는 1→2→5편이 메운다).
4편은 미개혹성보호조약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3편은 그 미개혹성보호조약 때문에 주인공이 행동을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4편과 큰 연관성이라면 그것 하나다.
여러 별을 전전했던 4편과 달리 3편은 유럽 중세 시대 문명 수준의 별 두 곳이 주무대다. 그래서 중반부는 일반 판타지 RPG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당시 제작자 인터뷰 보면 100% SF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팔려서 판타지 요소를 넣었다고 한다.


4편은 음악이 밋밋했지만, 3편은 훌륭하다. 주제곡 <나는 법을 잊은 작은 새>는 일본의 유명 가수 MISIA가 불렀다. 다른 배경음도 좋은 편이다. 옛날 게임이지만 와이드 비율을 지원해서 TV 화면 양옆을 꽉 채울 수 있었다.


후반부에 크나큰 반전이 있다. 모든 것이 결국 새장 속의 새라고 해야 하나... 그 반전은 스타오션 1~2편의 감동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 정도라서 2003년 당시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이런 반전을 좋아한다. 보통의 일본 RPG에선 자주 볼 수 없는 전개다. 막장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1~2편에 대한 애착이 깊어서가 아닐까 싶다. 난 1~2편을 안 해서 3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전에 한 게 시리즈 최악이었던 4편이라서 좋게 봤다.


후반부에 나오는 FD세계는 과학기술이 뛰어나 모든 인간들이 노동 없이 놀고 지낸다. 그러나 무료하고 따분한 나머지 노동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 하고, 서로 일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그런 환경에선 나 같으면 기쁘게 놀기만 할 텐데 ㅎㅎㅎ


엔딩은 실제론 모든 것이 사라지는 베드엔딩인데 등장인물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해피엔딩 같은 분위기다. 이 부분은 어거지처럼 느껴졌지만, 게이머의 해석에 맡기는 것 같다. 존속한 세계는 진짜로 독립한 세계일 수도 있고, 영혼들이 만들어낸 사후세계일 수도 있다.

3편 엔딩을 보면 그 이후 시간대 이야기로는 후속작을 만들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4~5편은 3편보다 앞선 시간대 이야기다. 아래는 5편 프로듀서 슈이치의 말.


"1편에서 5편까지의 모든 스타 오션의 세계는 같은 우주입니다. 그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간대에 대해서 5편이 위치한 것은 2편과 3편 사이가 맞습니다. 최근 영국의 철학자 중 한 명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세계가 신적인 존재의 실험장 비슷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주를 계속 일정한 관점으로 보는 것은 신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사실 우리의 소통방식과 아이디어들은 조금 너무 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방식에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가상이 아닌 실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문제를 알고있기 때문에 5편에서는 사람들이 게임 안의 우주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스타 오션3가 보여준 세계관에서 느낀 건,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일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것. 그러니 너무 아둥바둥 또는 너무 심각하게 살 필요없다는 것이다.


2016-02-03

스타 오션4 XBOX360


현재 5편까지 나온 스타 오션의 4번째 이야기다. 4번째지만 시간순으론 가장 앞선 시대를 다루고 있다. 나는 이렇게 시리즈로 나온 게임은 시간순으로 하는 걸 좋아한다. 4편을 먼저 깨고 1, 2, 3편을 시간순대로 할 생각이었다.

게임을 돈 주고 사서 하면 재미없어도 끝까지 하게 된다. 이 게임이 그렇다. 슈퍼패미컴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시리즈로 나온 역사 깊은 게임이라 기대했지만, 몇 시간 해보고 실망했다. 괜찮은 점을 딱히 꼽을 수 없는 총체적 난국. 그렇지만 돈 아까워서 일단 엔딩을 봤다. 공략 보고 20시간 걸렸다.

시스템은 쾌적해서 별 불만이 없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못 봐주겠다. 그래픽은 처음엔 좋다고 느꼈지만, 광원 효과를 지나치게 써서 난잡하고 적 캐릭터들은 종류가 많지 않아서 단조롭다. 그래픽이 좋다면 좋은데 좋아할 수 없는 그래픽이라고 할까... 끌리지가 않았다.

주인공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찌질하고 현실감 없는 캐릭터다. 왜 자신과 관계 없는 사람들을 목숨까지 걸고 살리려고 애쓰나. 근본을 알 수 없는 박애주의 정신과 정의감이 넘친다. 주인공에게 인간다운 사심이나 이기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비현실적인 캐릭터라면 왜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줬음 좋겠다. 중간에 자신의 선택 때문에 번뇌하는데 그 번뇌도 어린애 같아서 공감이 안 간다. 주인공의 대사들도 하나같이 오글오글.


게임 전반에 걸쳐 '동료애'를 부각하는데, 주인공과 여주인공은 소꿉동무라 그렇다 쳐도 나머지 아군들은 만나고 얼마 안 되었는데 바로 가족 같은 동료가 된다. 뭘 얼마나 안다고 서로들 끔찍히 챙기나. 그 동료가 되는 캐릭터 중 대부분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제발 동료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 날개 달린 안경 여자는 등장할 때마다 짜증나서 헤어질 때 쾌재를 불렀는데 나중에 멋대로 동료로 들어와서 속으로 '안돼! 꺼져!' 했다. 고양이 소녀도 마찬가지. 뭐 이런 매력 없는 캐릭터를 만들었나. 그나마 여주인공과 섹시한 누님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다. 이 게임을 그나마 참고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건 단지 두 캐릭터 덕분이다.


중간중간 삽입된 동영상이 엄청 길다. 플레이 시간보다 동영상 감상한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정도다. 임팩트 있는 장면이 없어서 지루하다. 장황한 대사에 평범한 장면의 연속. 다 스킵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스토리는 좀 유치하다. 성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중학생이 보는 소년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다른 스타오션 시리즈도 이렇다면 손대고 싶지 않다.


여주인공의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끝은 봤다. 위 장면은 유일한 서비스컷. 주인공과 더 진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는데, 그 흔한 키스신조차 안 나와서 아쉬웠다.